網중립성 논쟁 두 화두...슬라이싱&제로레이팅

"공정경쟁 환경 저해" vs "규제 완화가 글로벌 추세"

방송/통신입력 :2018/07/19 17:16    수정: 2018/07/19 17:18

5G 상용화를 앞두고 망 중립성 원칙을 둘러싼 콘텐츠 업계와 통신업계 간의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제로레이팅이 화두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물리적으로 한 개 네트워크를 논리적으로 분리된 여러 개의 가상화된 네트워크로 만든 뒤 다양한 서비스에 특화된 전용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제로레이팅은 콘텐츠 공급 사업자(CP)와 통신사 간 제휴를 통해 특정 콘텐츠에 대해서는 데이터 과금을 면제해주는 것을 뜻한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시대 망 중립성의 미래' 토론회에서는 이를 둘러싼 각 세력 간에 뜨거운 공방전이 펼쳐졌다.

콘텐츠 업계는 망 사용료 상승 가능성과 통신사의 강력한 자본이 업계 경쟁 체제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해 네트워크 슬라이싱, 제로레이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그러나 통신업계는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이라는 5G 특성을 충족하는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제로레이팅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망 중립성 관련 정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측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면서도 사전 규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전 입장을 유지했다.

■CP "전세계 최고 수준 망 사용료 더 비싸질 것"

인터넷 기업 측은 이미 통신사들이 CP, 이용자 모두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요금을 부과하고 있고, 망 중립성의 완화가 중소 CP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은 "국내 CP는 세계 최고 수준의 망 사용로를 내고 있다"며 "국내 CP들은 서버에서 인터넷망까지 접속하기 위해 전용 망 서비스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는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고 역설했다.

글로벌 CDN 기업 클라우드플레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 타이페이의 전용망 요금이 유럽, 북미 등에 비해 15배 가량 높다.

클라우드플레어의 네트워크 비용 조사 결과.

망 중립성이 완화될 경우 네트워크 슬라이싱 적용 등 망 품질에 차등이 생기면 중소 CP는 부족한 자본력 때문에 초고속 망을 이용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반면 대형 CP는 이를 이용해 경쟁력을 높이면서 결과적으로는 "CP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비용 정책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며 "필요한 경우 ISP는 이용자보다 CP의 망 사용료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로레이팅에 대해서도 "서비스 자체 품질이 아닌 경제적 차별을 두겠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제로레이팅이 이용자 선택권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ISP "미국·유럽 등 글로벌 추세 고려할 시점"

류용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팀장은 미국, 유럽 등에서 망 중립성을 완화하는 글로벌 추세에 맞춰 그 동안의 소모적 논쟁을 지양할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류용 팀장은 "미국은 지난해 말 망 중립성 규칙을 개정해 ISP에 부과하던 망 차단 금지, 지연 금지, 대가에 의한 우선처리 금지 의무를 삭제했다"며 "망 중립성 규제가 ISP뿐만 아니라 CP의 투자도 감소시켰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도 단일통신시장 법률을 제정하는 등 통신사업자가 투자를 확대하도록 유연한 규제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일환으로 5G 상용화 이후 미래 혁신의 촉진을 위해 네트워크 차등과 제로레이팅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류 팀장은 국내도 마찬가지로 5G 상용화 이후 통신사 인프라가 혁신 서비스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을 감안, 망 중립성 완화 기조에 따라 네트워크 슬라이싱의 도입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류용 KTOA 팀장은 "서비스 별로 요구되는 망 품질이 다르고, 그에 드는 비용도 차이가 나는데 이를 전체 서비스에 다 제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통상적인 인터넷 서비스의 품질 요구 수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네트워크 차등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5G 시대에 급증하는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제로레이팅을 도입해야 하고, 이는 결국 CP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용자가 더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하면서 전체 산업의 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것.

류용 팀장은 일례로 "미국 3위 통신사 T모바일은 중소 CP 100여개와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명수 강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통신사 자회사 서비스 관련 제로레이팅에 대해 "제로레이팅은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 부담을 CP가 대신하는 구조라 그 주체가 통신사가 된 것일 뿐"이라며 "통신사가 CP의 제로레이팅 요청에 대해 부당하게 제한을 두거나 거절하지 않는 이상 특별한 문제가 없어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명수 교수는 "해외는 제로레이팅에 대해 전면적으로 허용하거나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하고 있다"며 "국내도 제로레이팅에 대해 사후규제가 합리적일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정부 "5G 서비스 사전 규제는 지양"

김정렬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정부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면서도 "통신사의 망 투자는 전체 생태계를 위해서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어 "네트워크 슬라이싱의 경우 정부가 신기술 도입에 대해 막을 권리는 없다"며 "많은 것이 얽혀 있는 문제이지만, 제로레이팅은 사후 규제가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곽진희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궁극적으로는 인터넷의 자유로운 유통과 이용자 가치 상승 등에 집중해서 미래 정책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며 "제로레이팅의 경우 통신비 절감 차원에서 활성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곽진희 과장은 지난 2월 출범한 '인터넷상생협의체'에서의 망 중립성 논의 현황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관련기사

곽 과장은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 5G 관련 기술을 도입하면서 원격 의료 등 생명이나 안전에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우선적인 네트워크 지원이 필요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며 "CP들은 이통사의 경쟁 배제로 CP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 난이도 상승과 중소 CP의 고사를 우려하며 더 나아가 망 중립성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말까지 관련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