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부산행, 베테랑. 모두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에는 관객 수 이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음향기술'이다.
이 영화들은 기존 5.1채널 입체음향 이외에 최대 32채널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입체음향 기술이 투입되어 있다. 총알이 날아 다니는 순간,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오던 차가 충돌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현장감 있는 소리가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 음향 기술은 돌비나 엑스페리(DTS)가 아닌 국내 기업, 소닉티어가 개발했다. 2011년 설립된 소닉티어는 스크린 뒤에 총 15개의 스피커를 설치해 입체음향을 만들어내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 보다 정확한 위치에서 소리를 들려주어 몰입감을 높인다.
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전국 20여개 영화관에 소닉티어의 32채널 입체음향 기술을 적용한 영화관은 현재 총 20여 개다.
11일 서울 강남구 소닉티어 본사에서 만난 박준서 대표는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입체 음향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조차도 세로 축을 활용한 현장감은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영상과 음향의 부조화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 돌비 애트모스와 '동점', 3년 안에 결판 난다
소닉티어는 2014년, 전국에 있는 영화관 중 10%인 250개 영화관에 3년간 다채널 입체음향 기술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소닉티어 기술이 적용된 영화관은 전국에 약 20여 개 수준이다. 목표의 10%에 불과하다.
박준서 대표에게 이유를 묻자 두 가지 원인을 답했다. 첫째는 영화관들이 여전히 시설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영화관은 5.1채널 음향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음향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장 점유율을 보면 현재 돌비 애트모스도 20개. 소닉티어도 20여개로 동점입니다."
그러나 박준서 대표는 이런 상황이 2019년부터 크게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 소비자들이 UHD 방송이나 스마트폰 음향 기술을 통해 몰입감 있는 음향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5.1채널 음향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3년 안에 상황은 바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성장통이다. "회사의 발전 방향을 두고 내부에서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는 과정에서 정체를 겪었습니다. 현재는 내부에서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는 중이죠."
■ "강사료만 받고 인력 키우겠다고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국내 UHD 지상파 방송은 최대 12채널로 소리를 들려 주는 음향 기술을 표준으로 지정했다. 소닉티어도 UHD 지상파 방송이 본 궤도에 오르는 2019년 이후를 대비해 전문 인력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기술을 마케팅하는 최상의 방법은 교육입니다. 교육을 통해 길러진 인력들이 방송국이나 영화사, 혹은 스튜디오에서 우리 제품을 써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국내는 음향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 "심지어 어느 영화관은 음향 전문가가 없어서 전기 자격증을 지닌 이들이 음향을 다루는 기형적인 구조입니다. 12채널 음향으로 구현된 UHD 방송이 궤도에 오르면 통신사, IPTV, 스트리밍 등 모든 분야에서 음향 전문가 구인난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육 시설을 하루 아침에 만들기는 어렵다. 박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의 미온적인 태도에도 서운함을 드러났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시절 각 국장들을 3개월간 찾아 가서 '경기도에 있는 교육장, 미디어 센터를 열어 주시면 소프트웨어도 제공하고 강사료만 받고 교육을 진행하겠다. 대신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을 매칭해 달라'고 했는데 결국 잘 안됐습니다."
■ "모바일 앱과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우리 기술 알리겠다"
일반인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와 필모그래피, '별점'으로 대표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음향이나 영상 기술, 혹은 시설 때문에 일부러 특정 작품이나 영화관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소닉티어도 일반인들에게 자사 기술을 알리기 위해 고민중이다. 지난 3월 안드로이드용 음향 저작도구인 STA UHD 크리에이터, 재생용 앱인 STA UHD 플레이어를 구글플레이에 출시했다.
스마트폰에 저장한 동영상을 불러와 소리가 맺히는 위치를 조절하고 저장하면 이어폰이나 헤드폰에서도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영상이 만들어진다. UHD 표준인 12채널 음향과도 호환된다.
박 대표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유명 크리에이터와 협업할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대부분 영상 편집때 어도비 프리미어를 씁니다. 어도비 프리미어에 플러그인 형식으로 추가되는 저작도구를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중입니다"
올 상반기 인기를 끌었던 게임인 배틀그라운드, 혹은 자동차 경주 게임인 니드포스피드 등 게임 분야에도 소닉티어 기술이 파고들 여지는 남아 있다. 눈 앞의 화면이 주는 시각적 정보 못지 않게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들려 오는 음향 정보도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 "전세계 6대 권역 나눠 돌비와 맞대결"
소닉티어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도 고려중이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산실인 헐리우드가 있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6대 권역으로 나눠서 돌비와 맞대결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4대 배급사는 물론 감독들과 엔지니어들이 우리 기술을 몰라서 못 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튜디오는 물론 쇼룸과 이를 지원할 사무실이 함께 있어야 효과적입니다."
미국을 포함해 6개 권역 별로 조인트벤처를 세우겠다는 박 대표의 글로벌 구상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현지 조인트벤처에 더 큰 지분을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영학도였던 박 대표의 '자본주의 실패론'도 한 몫 한다.
"자본주의는 결국 자기 자신만 이득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일자리 문제 역시 이런 자본주의의 실패라고 볼 수 있죠. 상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인트벤처는 단순한 지사나 자회사가 아닌 '형제 회사' 개념입니다. 자기 회사라는 인식이 있어야 목숨 걸고 싸울 것이고 형제 회사가 돈을 벌어야 우리도 돈을 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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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정부가 음향 기술에도 관심을 가지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으로 3년 안에 전 세계 입체 음향 기술의 트렌드가 바뀌고 막대한 기회가 열립니다. 기술료는 물론 인력 공급을 통해 취업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계를 바꾸는 일을 기업 힘으로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소닉티어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줄 의사만 있다면, 저는 CEO 자리에도 미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