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ICO는 사기일 수도 있다

[이균성 칼럼] ICO 금지 논란에 부쳐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11 15:02    수정: 2018/11/16 11:19

비즈니스는 곧 사업이다. 네이버 어학사전을 보니 ‘어떤 일을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짜임새 있게 지속적으로 경영함’이라고 정의돼 있다. 대개 ‘일정한 목적’은 ‘이윤’일 터이나 그렇게만 한정해놓지는 않았다.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중에 ‘꿈’이라는 걸 넣어보면 어떨까. 좀 추상적이지만, 인간이 머리를 써 고안해내는 어떤 것, 또는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란 의미로서.

비즈니스는 그러므로 출발지가 인간의 머릿속이다. 머릿속 그림을 밖으로 토해내 현실로 구현하는 행위가 곧 비즈니스인 것이다. 구현 과정은 난해하고 지난하다. ‘없던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가능하면 좋은 사업이 되는 것이고, 불가능하면 헛된 꿈으로만 남게 된다.

‘사업과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이와 같은 비즈니스의 속성을 촌철살인으로 통찰한 것이다. 사기죄로 수갑을 찬 사람들 가운데에는 작정하고 그런 이도 적지 않으나,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어찌하다보니 그리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후자의 경우, 꿈을 잘 못 꾸었거나, 좋은 꿈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한 결과일 터인데, 현실 세계에서는 그 또한 죄가 된다. 피해자가 생겼을 테니까.

비트코인 채굴이 사실상 끝나는 시점은 2032년으로 예상된다.

꿈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는 크게 사람과 돈이 필요하다. 사람은 주체다. 자본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돈은, 그 주체가 행위를 하기 위해 필요한 물적 토대다. 사기와 관련돼 문제가 되는 건 돈이다. 주체는 누군가에게 꿈을 설명하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빌리게 되는데 꿈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경우 그 돈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있던 돈이 사라지면 사기와 관련된 분쟁이 일어난다.

‘투자는 본인의 책임’이라는 격언은 사업과 사기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에 대한 경구다. 꿈의 실패가 작은 단위로 일어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당사자들 사이의 분쟁일 뿐이고, 둘 사이에 합의하거나 합의가 안 되면 법정서 다투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 단위가 커지고 범위가 넓어질 때다. 그 때는 사회 문제가 된다. 피해자가 너무 많고, 그것이 경제 전체에 적잖은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사업인지, 사기인지, 결과가 나온 뒤에는 누구나 다 안다. 문제는 그것이 아직 주체의 머릿속에 들어 있을 때다. 그 때 그걸 판단하는 건 좋은 사업을 일으키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암호화폐공개(ICO)를 놓고 우리 사회가 찬반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혹시 모를 피해를 우려하는 정부는 반대 쪽이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로 새로운 꿈을 꾸어야한다는 업계는 당연히 찬성하는 쪽이다.

규제를 혁신하겠다는 정부가 유독 ICO에 대해서만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 까닭은 암호화폐 공개를 통한 자금조달 방식의 위험성(한편으론 창의성) 때문이다. 과거 비즈니스의 자금 조달방식은 은행에서 돈을 꾸거나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는 게 대표적이다. 비즈니스 초기 참여 자본 외에 대부분의 투자는 기업의 사업 내용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뒤에 그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 과정도 법률에 따라 엄격하게 감독하고 관리된다. ICO는 사업 내용이 현실화하기 전 머릿속에 있는 꿈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과거 방식으로 따지면 사실상 기업 설립 전 초기 투자 자본에 해당된다. 그러면서도 기업 지분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다만 해당 화폐의 생태계가 커질 때 그로 인한 자산가치 증식을 기대할 수 있다. 소유 화폐의 가치가 커지는 것.

과거의 경우 대개 초기 투자는 해당 사업에 대한 고도의 전문가들이 하게 된다.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머릿속 꿈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투자업계의 속설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여기서 ‘하이 리스크’라는 건 ‘해당 사업이 어찌될지 모르는 단계’를 의미한다. 그 아이디어가 사업 주체의 머릿속에서 막 나오려 할 때가 ‘절정의 리스크’다.

오너가 유독 큰 과실을 가져가는 게 용납되는 까닭도 그 리스크를 온몸으로 껴안기 때문이다. ICO는 이를 대중의 영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좋게 보면 대중에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문제는 전문 투자가가 아니라 대중이 하기에는 실패할 확률이 지나치게 높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 미국에서 의미심장한 조사 자료가 나왔다.

보스턴 칼리지가 마무리된 ICO 2천390건을 조사했더니 ICO로 자금을 모금하고 나서 4개월 이후에도 생존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44.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절반 이상이 4개월을 못 버텼다는 뜻이다. 보스턴 칼리지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ICO 때 코인을 손에 넣은 뒤 첫날 판매하는 게 가장 안전한 투자 전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점잖은 말이지만 사실은 ICO에 대한 극단의 조롱에 가깝다.

현재 상황이 이렇지만 ICO에 대한 열기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글로벌 통화 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돈이 넘쳐나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새로운 금광(金鑛)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광을 찾아 서부로 가는 마차 행렬처럼, 10배 그리고 100배 튀겨줄 백서(암호화폐 생태계 확장 계획)를 찾아 돈을 싸들고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사기(詐欺)가 범람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ICO를 무조건 금지하는 정책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다. 밤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면 골치 아프니 통행금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작심한 사기꾼들이 나올까봐 건설적으로 꿈꾸는 사람의 꿈까지 방해하는 셈이다. 상책(上策)은 좋은 관리(管理)다. 나이트클럽이 잘 되기 위해서 ‘물 관리’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ICO 금지 잘못을 관리(官吏)한테만 몰아 부치는 것도 옳지 않다. 관리의 기본 속성은 ‘모험’보다 ‘안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관리한테 지나치게 모험 부담을 지우다보면 사회는 급속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모험은 혁신가의 몫이다. 혁신가의 몫은 관리가 관리(管理)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될 수 있다. 혁신하려는 꿈으로 관리를 잘 설득해야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관리가 진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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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 사기를 줄이고 블록체인 생태계를 키우려면 관리와 혁신가가 더 많이 만나 더 많이 토론하는 길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특히 혁신가가 중요하다. ICO에 대한 전지적 관점에서 한량없이 겸손한 태도로 관리와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ICO 허용을 주장하는 혁신가 그룹 속에서 그럴 인재가 별로 안 보인다는 점이다.

관리가 듣기에 맹탕 같은 소리만 넘쳐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