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다른 말로 하면 법과 제도를 가리킵니다. 법과 제도는 무엇인가를 진흥하는 역할도 하지만 대개는 뭔가를 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것이 많습니다. 사회를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기 위해서 최소한 이런 것만은 서로 하지 말자는 약속인 거죠. 지금 우리 사회는 그 기준을 어떻게 새롭게 마련하느냐를 두고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규제 혁신에 관한 백가쟁명의 논란이 거칠게 분출되고 있지요.
규제는 구체적으로 사람이 만드는 법과 제도인 만큼 시대와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게 무엇이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합니다. 인간 사회는 이해가 충돌하는 집단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합의를 한다는 것은 양쪽에서 얼마간의 양보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절충점을 찾아가는 것을 정치라 하겠지요.
과거와 현재의 법과 제도는 그 과정의 성숙도와 상관없이 형식적으로 볼 때 이미 합의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규제를 혁신한다는 건 이미 한 과거의 합의를 새롭게 바꿔보자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이미 합의한 걸 왜 바꿔야 하는 걸까요.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기 때문 아닐까요. 그걸 ‘새로운 시대정신’이라 할 겁니다. 문제는 뭐든 바꾸면 되레 불편하거나 손해 보는 쪽이 꼭 있다는 점입니다.
그쪽을 대개는 기득권이라 부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역사적 반동(反動) 세력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막는 쪽이니까요. 문제는 그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혁신이 아니라 혁명(革命)이겠죠. 그래서 규제를 성숙하게 혁신하려면 그들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반대급부를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 또한 정치라 할 수 있지요.
결국 정치네요. 따라서 지금 규제 혁신이 잘 안 된다면, 거기엔 정치의 책임이 클 겁니다. 정치가 미숙한 거죠. 정치가 미숙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래 5가지 요인도 중요한 원인일 겁니다. 그걸 ‘규제 혁신의 五賊’이라 불러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가 ‘무지(無知)’입니다. 그 무지는 시대정신에 관한 겁니다. 세상이 바뀌는 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규제 혁신의 필요도 못 느끼는 것이죠.
논란이 있지만,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면, 그 길을 앞서 본 세력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들은 거기에 맞춰 규제 혁신을 주장할 테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세력은 헛소리라고 치부할 겁니다. 시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토론도 무의미할 거고, 당연히 합의에 이를 순 없겠지요. 테이블에 앉을 생각도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일은 규제 혁신의 적이라고 해도 되잖을까요.
둘째는 ‘도그마’입니다. 한 번 정해진 규칙이나 혹은 새로 생긴 믿음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키려는 자나 바꾸려는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반드시 상처받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노사(勞使)의 문제든, 신구(新舊) 세력 사이의 갈등이든, 모든 걸 얻거나 모든 걸 잃는 방식은 요즘의 시대정신에 반합니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해야만 하죠.
셋째는 ‘폭력’입니다. 도그마가 세력이 되면 폭력으로 비화합니다. 물리적 폭력이나 권력이 동원된 숨겨진 폭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이 아니라 파괴가 될 뿐이며, 같이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같이 죽는 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배가 침몰하든 말든 우리 편이 키만 쥐면 된다는 심보입니다. 각종 이해 관계자 뿐만 아니라 이를 중재해야 할 정치 영역에도 숱하게 보고 있는 장면이 그것이죠.
넷째와 다섯째는 ‘유착’과 ‘무관심’입니다. 위의 세 가지가 주로 이해 당사자의 문제라면 이 두 가지는 이들을 중재할 심판의 문제입니다. 사적 이익을 바라고 일방적으로 한 쪽 편을 옹호한다거나 양측의 중재를 머리 아픈 일로 생각하는 심판이 그들입니다. 결과를 낸다 해도, 한 쪽의 극단적인 불만을 가져오게 하거나, 애정 없는 중재로 타협의 실마리를 전혀 제시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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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현실은 이 五賊이 뒤엉켜 갈래를 타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꼬입니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적잖은 성과를 낸 현 정부가 주로 경제 문제와 관련된 국내 규제 이슈와 관해서는 꼬인 실타래를 잘 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크게 덩어리를 짓고 갈래를 탄 뒤 제(諸) 세력 사이의 대타협을 이끌어야 하지만, 개별 이익으로 파편화된 집단들을 갈래 짓기가 그리 쉽지 않은 까닭인 거죠.
제(諸) 세력과 그 지도자가 ‘양보와 공생’이란 비전을 갖고 대승적 결단에 동참할 줄 알아야만 문제가 풀릴 것입니다. ‘양보와 공생’은 포용 그리고 혁신 성장과 공정 경쟁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