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탓에 오늘도 짐 싸야하는 스타트업

[기자수첩] '나쁜 규제’ 진짜 없애야

기자수첩입력 :2018/06/21 11:03    수정: 2018/06/21 16:42

“시대에 맞지 않은 많은 규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길에 아주 큰 걸림돌입니다. 새 정부는 나쁜 규제를 더하지 않고 나쁜 규제를 없애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신산업분야부터 시작해 네거티브 규제체제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 하면 신명나게 일해 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2017년 4월14일 디지털경제협의회 초청포럼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발언이다.

카풀앱 스타트업 풀러스가 ‘출퇴근시간 선택제’를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한지 1년 만에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무릎을 꿇게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신명나게 달릴 것 같았던 회사는 급제동이 걸려 휘청 하는 모습이다.

회사를 이끌던 대표는 사임했고, 70%에 가까운 직원들은 새 직장을 알아봐야할 처지가 됐다.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택시업계의 반대와, 미온적인 정부 대응에 꿈 많은 젊은 직원들이 하루라도 빨리 짐 싸라는 통보를 받았다.

카풀앱 시장을 개척했던 풀러스.

문재인 정부는 수차례 규제 혁파와 네거티브 규제를 약속했다. 창업 생태계를 개선하고, 창업가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청사진도 여러 차례 제시했다. 신명나는 창업 분위기에 기대감을 품게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꾸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책을 세우고,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는 데 힘을 더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창업 생태계를 저해하는 나쁜 규제는 여전히 많고, 규제보다 더 나쁜 행정지도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 게 현실이다.

풀러스에 대한 택시 업계 반발은 날이 갈 수록 거세졌고, 국회에선 택시업계 편을 들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출퇴근 시간을 법으로 규정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풀러스의 위기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꿈꾸는 스타트업 업계에 깊은 절망감을 안기는 결과를 낳았다. 여전히 기득권의 힘은 강하고, 규제의 벽은 높다는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 하게 보여줬다. 야심차게 출범한 4차혁명위는 여러 차례 택시단체와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했지만 결국 대화의 물꼬도 트지 못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풀러스 경영진의 잘못도 없었던 건 아니다. 출퇴근 시간에 한해 허용해주는 카풀 예외규정을 무리하게 확대해석, 아침 저녁(오전 5~11시, 오후 5~익일 오전 2시)으로만 제한했던 운영시간을 급히 늘리려 했기 때문이다.

풀러스는 낡은 여객운수사업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에 출퇴근 시간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고, 유연근무제와 주말근무 등 변화된 출퇴근 패턴을 고려한 서비스라는 논리였지만, 냉정히 말하면 이는 ‘홈그라운드용’에 불과했다.

안전장치로 운전자가 일주일 중 총 5일까지만 본인의 출퇴근 요일을 지정하도록 하고, 사용 가능시간 범위를 제한했지만 승객은 평일 주말, 하루 24시간 이용이 가능해 택시 업계의 반감을 살 만 했다. 택시의 영역을 침범할 우려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란 뜻이다.

출퇴근시간 선택제에 대한 택시 업계 반발 우려는 1년 전 간담회 때에도 지적됐다.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우버 사태 때처럼 택시 업계가 들고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풀러스는 법에 저촉되지 않고, 기존 대중교통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풀러스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출퇴근시간 패턴이 변했다며 이에 맞는 카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어진 달라진 현대인들의 출퇴근 시간, 카풀 서비스가 가져다주는 교통난 해소와 환경 개선에 주는 효과 등을 내세웠다. 이용자 편의와 혁신이라는 명분, 그리고 사업 확장에 집중하다 보니 충분히 예견된 택시 단체의 반대를 과소평가한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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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시장 자체가 어려워지자 결국 경쟁사는 저평가를 받고 카카오에 회사를 매각했다. 풀러스의 ‘과속’은 결국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카풀 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어려운 경쟁 환경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용자 반응이 뜨거웠고 성공 가능성이 높았던 풀러스가 속도를 높이지 못하게 된 핵심 문제는 말로만 반복되는 규제 혁파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데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스타트업에 있고, 여기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거란 사실을 알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여전히 게으르고 겁 많은 정부 탓이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