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애플펜슬 지원 기능을 추가한 새 아이패드를 내놨다. 이제 더 이상 애플펜슬은 비싼 아이패드 프로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애플 태블릿이 지원하는 보편적인 기능이 됐다. 반면 애플펜슬을 내세워 차별화를 꾀했던 아이패드 프로의 입지는 조금 더 애매해졌다.
■ 아이패드에 드리운 '짝수의 징크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출시된 아이패드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바로 짝수 세대에 나온 제품이 항상 무언가 더 나았다는 사실이다.
초대 아이패드(2010년)에 비해 2세대 아이패드는 상상을 뛰어 넘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4세대 아이패드(2011년)도 성능과 배터리 지속시간 면에서 불과 몇 개월 전 출시된 3세대 제품보다 앞선다.
6세대 제품 역시 무게나 두께 등 숫자로 드러나는 외관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프로세서가 아이폰7과 동일한 A10 퓨전으로 바뀌었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애플펜슬 지원이 있다. 지난 해 아이패드 5세대를 구입한 사람이라면 특히 애플펜슬 때문에 속이 쓰렸을 법하다.
웹서핑이나 앱 실행 등 일상적인 작업에서는 아이패드 프로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PC에 이어 모바일에서 화제가 된 배틀그라운드도 최고사양 옵션으로 제법 매끄럽게 돌아간다. 다만 메모리가 아이패드 프로의 절반인 2GB다. 프로크리에이트나 어도비 라이트룸 모바일 등에서 여러 레이어를 올리는 등 무거운 작업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버겁다.
애플이 얇고 가벼운 디자인을 아이패드 프로 라인업에 몰아 주다 보니 두께와 무게에서는 손해를 본다. 특히 아이패드 에어2를 쓰다 아이패드 6세대로 넘어가려는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도 있다. 케이스 등 기존 액세서리는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갭리스 디스플레이에 익숙해진 눈에는 붕 떠 보이는 화면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당신을 기다리는 애플펜슬
2015년 처음 등장한 애플펜슬의 성능이나 응답 속도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이제 없다. 복잡한 설정 없이 라이트닝 단자에 꽂으면 바로 페어링되고 정말로 연필을 쓰듯이 화면에 가져다 대면 그 순간 모든 터치가 무시된다. 팜 리젝션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
메모 앱을 열어서 몇 번 선을 그어 보면 누구나 간단히 무언가를 그린다. 그만큼 직관적이다. 다만 아이패드나 아이폰 라이트닝 단자에 꽂아서 충전해야 하는 기묘한 구조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 충전 중 누군가가 툭 쳐서 단자가 부러지면 애플펜슬과 아이패드 모두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제는 애플펜슬을 활용할 수 있는 앱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몇 년간 아이패드용으로 나온 생산성 앱 중 애플펜슬을 지원하지 않는 앱은 거의 없다. 페이지, 키노트 등 애플 앱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파워포인트, 원노트 등 외부 앱도 애플펜슬을 곧잘 지원한다.
일단 애플펜슬을 제대로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두 가지 앱을 깔아서 써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그림그리기용 앱인 프로크리에이트다. 다양한 브러시와 효과를 갖췄고 애플펜슬의 필압 감지 기능도 제대로 지원하기 때문에 그림 좀 그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 수 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유튜브에 공개된 밥 로스의 강좌를 보면서 이것 저것 따라해 보는 것은 상당히 즐겁다. 풍경 사진을 불러와 레이어로 띄우고 이를 따라 그리는 로토스코핑도 제법 재미있다.
특히 아이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이라면 사진 편집용 앱인 픽셀메이터를 강력 추천한다. 굳이 PC를 켜지 않아도 아이클라우드 사진보관함에 담은 사진을 불러와 여러 보정이 가능하다. 압권은 '배경에서 사람 지우기 놀이' 다. 풍경 사진에 끼어든 다른 사람을 애플펜슬로 선택하면 주위 사물을 이용해 감쪽같이 덮어준다.
■ 더 애매해진 아이패드 프로 10.5인치의 입지
사실 아이패드 6세대는 발표 현장을 학교로 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용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다. 그리고 실제로 교육기관 혜택을 받으면 정가보다 3만원 싸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창의적인 욕구를 아이패드 프로의 무지막지한(?) 가격 때문에 억누르고 있었던 어른들이 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애플펜슬 지원이 아이패드 라인업 중 최하위에 있는 6세대까지 내려오며 보편적인 기능이 됐다. 처음에는 태블릿처럼 쓰다가 아이를 위해서, 혹은 자신의 내면에 숨은 '어른아이'를 위해서 애플펜슬만 구입하면 스케치북처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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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동안 애플펜슬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았던 아이패드 프로다. '광활한 캔버스'를 내세운 12.9인치 제품은 오히려 상황이 낫다. 아이패드 6세대와 외형상 큰 차이가 없는 10.5인치 제품의 포지션이 문제다.
색상을 가능한 한 실제에 가깝게 보여준다는 트루톤 디스플레이와 4GB나 되는 메모리만 가지고는 더 이상 소비자를 아이패드 프로로 끌어들이기 힘들어졌다. 태블릿을 한 번 사면 3년 이상 버티는 긴 교체 주기, 여기에 태블릿에 더 이상 환호하지 않는 소비자의 성향도 여기에 한 몫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