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등 주요 경쟁국이 4차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손꼽히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매진하는 가운데, '반도체 강국' 한국은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반도체는 아직 정확한 정의와 표준기술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빅데이터 기반 딥러닝 등 인공지능 알고리즘 구현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의미한다.
AI 스피커·자율주행차·로봇 등 AI 기술을 접목한 제품들이 실생활에 침투하면서, 두뇌 역할을 맡는 AI 반도체의 수요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AI 기능 구현에 필요한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는데 성능과 전력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AI 반도체 개발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위상에 안주해서 미래 먹거리 발굴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론이 제기된다.
■ 국내 반도체 산업, 메모리 편중 '심각'
현재 국내 반도체 산업은 슈퍼호황을 맞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에 크게 편중됐다는 점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스템반도체로 나뉜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70%는 시스템반도체, 30%는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은 58%에 달하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시장점유율이 3%대에 머무를 정도로 편차가 큰 상황이다. AI 반도체는 시스템반도체로 분류된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도 메모리반도체 호황에 따른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시스템반도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그나마도 팹리스 업체로부터 설계도면을 받아 수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콤파스인텔리전스가 지난 26일 발표한 글로벌 AI 칩셋 분야 평가에서 국내 기업은 10위권 안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최근 지능형 이미지 처리 기술을 가미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9810'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가 11위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
특히 상위 10개 업체 중 8곳이 엔비디아·인텔·IBM 등 미국 기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은 70%에 이른다.
■ 중국도 AI 칩 내 놓는데…우리는 아직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 AI 칩을 내놓기 시작한 것도 한국에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 반도체 스타트업 캠브리콘(한우지)은 국책 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CAS)과 공동 개발한 클라우드 AI칩 'MLU100'을 3일 발표했다. 순수 중국 기술로 제작된 제품이다.
캠브리콘 측은 MLU100의 연산 성능이 최대 166.4테라플롭스에 달한다고 밝혔다. 초당 166.4조회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중국 화웨이가 선보인 모바일 AP '기린970'에도 캠브리콘의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사용된 바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 알리바바도 최근 자국 반도체 제조업체 중톈웨이를 인수하는 등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 국내 기업이 상용화한 AI 칩으로는 반도체 후공정업체 네패스의 'NM500'이 독보적이다. 그러나 NM500에 사용된 원천기술은 미국 제너럴비전에서 들여온 것으로, 네패스는 생산 및 판매를 맡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네패스 관계자는 "AI 칩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로, 중국이 아직 앞서있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중국이 그만큼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전했다.
■국내 빅데이터 수집 환경 악조건...전망 '먹구름'
업계는 한국이 AI 반도체 분야에서 뒤처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미래 산업의 핵심부품으로 자리 잡을 AI 반도체의 수입의존도가 높아지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도 밝지 않다. AI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이 악조건으로 꼽힌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국내 AI 반도체 기술은 경쟁국보다 많이 뒤처진 것이 맞다"면서 "AI 반도체가 성공하려면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더불어 제일 중요한 데이터를 갖춰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규제가 많아 빅데이터를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데이터를 갖춘 플랫폼 회사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뛰어난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활용할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당연히 추진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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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마존·페이스북·구글 등 대형 IT 업체들은 그간 엔비디아와 인텔, IBM과 같은 AI 반도체 선두주자들의 주요 수요처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AI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향후 10년간 총 2조5천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국책 과제를 진행하겠다고 지난해 발표하고 추진 중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