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지난 해 하반기부터 계속해 외부 칩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주로 경쟁사 AMD에서 일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가장 치열한 경쟁 제품인 라이젠 프로세서를 개발한 짐 켈러의 이적이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이 설계한 새 프로세서는 일러야 2020년 이후 출시될 예정이다.
■ AMD 이끈 수장들, 인텔 지붕 아래 한 자리에
인텔이 지난 해 11월 영입한 인물은 25년 경력의 그래픽 전문가, 라자 쿠드리다. 그는 애플에 재직하며 맥북프로와 맥북 등 모든 노트북 컴퓨터 라인업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도입했고 AMD에서는 그래픽칩셋은 물론 APU 등 관련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
인텔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26일 프로세서 업계의 거장인 짐 켈러까지 영입했다. 그는 AMD 애슬론 64 프로세서와 함께 현재 PC는 물론 서버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x86-64(AMD64) 명령어, AMD 라이젠 프로세서를 만든 장본인이다. 애플에 재직하며 ARM 아키텍처 기반 애플 A4·A5 칩 개발에도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명 개발자나 엔지니어, CEO가 이직하는 일은 미국 메이저리그나 유럽 프리미어리그에서 운동선수들이 팀을 옮겨 다니는 일만큼 일상적이다. 그러나 인텔이 불과 반 년도 안되어 외부 인사, 특히 경쟁사인 AMD와 관련이 있는 인사들만 데려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인텔의 이유있는 스카우트
흥미로운 것은 라자 쿠드리와 짐 켈러의 커리어가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프로세서'다. 짐 켈러는 2012년부터 3년간 AMD에서 일하며 젠(Zen) 아키텍처 기반 새로운 프로세서인 라이젠을 개발하고 테슬라로 이직했다. 라자 쿠드리 역시 CPU와 그래픽칩셋을 융합한 APU 등 그래픽 분야 전문가다.
이런 스카우트는 최근 스펙터·멜트다운 문제로 몸살을 앓는 인텔이 놓인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1월 불거진 스펙터·멜트다운 문제는 윈도 운영체제 보안패치나 바이오스 업데이트가 아닌 프로세서 내부 구조 변경이 필요하다.
인텔은 지난 3월 가장 기초적인 실리콘 수준에서 완전히 문제를 해결한 새 프로세서를 이르면 올해 말 내놓겠다고 밝혔다. 또 RSA 2018 기간동안 프로세서 내장 그래픽칩셋으로 메모리 악성코드를 수시 검색하는 가속 메모리 스캔 기술을 발표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 AMD·인텔 위기, 원인은 모두 "사람 탓"
AMD는 2011년 인텔 2세대 코어 프로세서(샌디브리지)에 맞불을 놓을 제품인 AMD FX 프로세서(불도저)를 출시했었다. 당시 AMD 홍보 담당자는 "모래성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겠다"며 호기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제품 출시 후 벤치마크 결과는 숫자로 나타나는 점수와 소비전력 등 어느 것도 2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넘어서지 못했다. 짐 켈러 등 애슬론64 프로세서를 만든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AMD를 떠난 상황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 설계로 제품을 개발하다 보니 최적화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결국 이런 상황은 짐 켈러가 10여년 만에 다시 AMD에 구원 투수로 등판해서야 해결되었다. 문제는 8년 전 AMD가 걸었던 길을 인텔이 똑같이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인텔 역시 2016년 프로세서 관련 연구개발 인력을 대거 내보낸 바 있다. 위기를 겪던 두 회사에 짐 켈러가 등장한 것까지 판박이다.
■ 새 프로세서 '오션코브', 2020년 이후나 등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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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텔은 개발명 '오션코브'(Ocean Cove)라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개발중이다. 이 이름은 인텔이 직접 올린 구인공고를 통해 드러났지만 뒤늦게 이를 발견한 인텔이 관련된 문구를 삭제하며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그러나 짐 켈러의 손을 거친 새로운 프로세서는 일러야 2020년 이후에나 등장할 전망이다. AMD가 짐 켈러를 다시 영입한 이후로 라이젠 프로세서 실제 출시까지 5년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인텔은 이 기간동안 기존 코어 프로세서로 버텨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