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 내용이 포함됐는지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삼성이 정부에 요청한 가운데, 반도체 정보공개 논란이 정부부처간 묘한 신경전으로 번지고 있어 주목된다.
국가 핵심기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고서 제3자 공개를 주장하며 강경 모드에 들어간 고용노동부 내부에서 상반된 기류가 흐른다. 이에 삼성으로부터 일단 공을 넘겨받은 산업부의 향후 판단에 관심이 집중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 내부에선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산업부 전문가위원회가 보고서를 공개할 지 안 할 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서 내용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지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맡게된 이상 기술정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며 "같은 정부부처로서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대놓고 반기를 들 수도 없지 않느냐는 생각도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친노동자 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정책과 상반될 수도 있어 이같은 문제는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며 "다만 국가 경제를 떠 받치고 있는 반도체 생산공정의 기밀이 외부로 유출되면 파장이 클 것이므로 우선 핵심기술 포함 여부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고용부의 내부 분위기는 매우 강경하다. 고용부는 9일 "삼성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내용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다시 한 번 보고서 공개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이날은 산업부가 전문가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힌 날이어서 파장은 컸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9일 오후 급히 브리핑을 열고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영업비밀로 볼 만한 정보가 없다는 게 법원과 전문가들의 판단"이라며 "법원은 설비·기종·생산능력 정보·공정·화학물질 종류 등이 영업비밀이라 하더라도 산재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고용부 내부의 목소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 내용은 산재 피해 입증에 꼭 필요한 자료"라며 "산재 피해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삼성의 결단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에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이는 고용부와 산업부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잘 아는대로 고용부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산업부는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 생산공정에 대한 기밀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전문가위원회에서 해당 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됐다고 판단하더라도, 고용부가 뜻을 굽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경우엔 양 부처간 건의에 따라 정보공개 주무 부처인 행안부가 중재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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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날까지 산업부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전문가위원회의 소집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는 이번 주 중 해당 일정을 공개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산업부가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하루 빨리 국가 핵심기술 판단을 결정짓는 동시에, 고용부와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이 산업부로 넘어간 이상, 고용부와의 의견 조율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