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괴롭힌 근육위축증, 왜 '루게릭 병'인가

루 게릭은 1920년대 야구선수…추모 의미에서 이름 붙여

과학입력 :2018/03/14 15:35    수정: 2018/03/14 15:4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평생 괴롭힌 것은 근위축성 측생 경화증(ALS) 이었다. 근육을 위축시키는 이 병은 아직도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 병은 흔히 ‘루 게릭병’으로 불린다.

호킹과 똑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위대한 야구 선수 루 게릭의 이름을 딴 병이다. 루 게릭이 어떤 인물이기에 아직도 불치의 병으로 남아 있는 근육위축증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 걸까?

루 게릭 병으로 사망한 스티븐 호킹. (사진=스티븐 호킹 공식 사이트)

■ 루 게릭, 베이브 루스와 함께 뉴욕 양키스 전성기 이끌어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야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루 게릭이 고색창연한 흑백 필름 시대인 1920년대 미국 프로야구의 한 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뉴욕 양키스는 당대 뿐 아니라 역사상 최고 야구팀으로 꼽힌다. 특히 베이브 루스가 사상 처음으로 ‘60홈런’을 때려냈던 1927년 팀은 ‘살인타선’으로 불렸다.

1920년대는 야구 기자들 사이에서 ‘데드볼 시대’로 불리던 시절이다. ‘투고타저’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뉴욕 양키스 팀은 엄청난 파괴력으로 상대팀을 압도했다. 특히 4번타자였던 베이브 루스는 홈런을 펑펑 터뜨리면서 메이저리그 야구 인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당시 뉴욕 양키스 팀엔 베이브 루스 못지 않은 뛰어난 스타가 있었다. ‘철인’으로 통하는 루 게릭이 그 주인공이다.

루 게릭은 1925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2천130 경기를 연속 출장하면서 ‘철마(The Iron Horse)’란 별명을 얻었다. 이 기록은 이후 56년 동안 불멸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1928년 뉴욕 양키스 팀의 살인 타선 주역들. 왼쪽부터 루 게릭, 트리스 스피커, 타이콥, 그리고 홈런왕 베이브 루스.

루 게릭은 또 12년 연속 3할 타율과 5번의 40홈런 이상 시즌을 만들어내면서 야구사에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이처럼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루 게릭은 늘 베이브 루스의 그늘에 가렸다. 1920년대 양키스를 얘기할 땐 늘 베이브 루스가 먼저였다.

루스와 달리 성실한 생활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루 게릭은 다소 엉뚱한 분야에서 자기 이름을 남겼다. 말년에 찾아온 근위축성 측생 경화증(ALS) 때문이다.

선수 시절 내내 꾸준한 성적을 보여줬던 루 게릭은 1930년대 후반 갑작스럽게 기량이 쇠퇴했다. 특히 1938 시즌엔 13년 만에 타율이 2할대로 떨어졌다.

이후 눈에 띄게 쇠약해진 루 게릭은 이듬해인 1939년 6월19일 ALS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루 게릭의 서른여섯번째 생일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6월21일. 뉴욕 양키스 구단은 루 게릭의 은퇴를 공식 선언한다.

192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계를 호령했던 루 게릭. (사진=위키피디아)

■ 야구 선수 루 게릭 추모 의미로 ALS를 '루 게릭병'으로 불러

그 무렵 루 게릭은 이미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꺼져가고 있었다. 구단이 은퇴를 선언한 지 보름 뒤인 그 해 7월4일 양키스타디움에선 위대했던 야구 선수 루 게릭의 은퇴식이 열렸다.

이날 루 게릭이 했던 연설은 '야구계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불리고 있다. 그만큼 감동적인 연설이었다.

루 게릭은 ALS에 걸린 사실을 언급한 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짧았던 그의 연설은 “고통스러웠지만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투병생활을 하던 루 게릭은 1941년 6월2일 세사을 떠났다. 향년 37세 아까운 나이였다. 루 게릭의 퇴장과 함께 ‘데드볼 시대’의 위대했던 팀 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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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게릭의 미망인인 엘리너 게릭은 남편의 생명을 앗아간 ALS 연구를 지원하는데 남은 생애를 바쳤다.

이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은 ‘루 게릭병’이란 친근한 이름을 갖게 됐다. 위대했던 야구 선수 루 게릭의 짧지만 강력했던 삶을 영원히 추모하려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