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이균성 칼럼] 4차산업혁명 점령군

데스크 칼럼입력 :2017/11/15 17:43    수정: 2018/11/16 11:25

최근 옛 동료였던 경제지 부장 L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L은 ‘대통령과 페이스북’에 대한 칼럼을 쓸까하고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뉴스가 될 만한 소재를 페이스북에 적는 게 옳은 것이냐는 문제의식이었지요. 소재가 민감한 만큼 정교한 팩트와 논리가 필요해 망설이는 모양이었습니다. L의 생각을 이 칼럼의 소재로 쓰는 게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 마디 거들고 싶어졌습니다.

페이스북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우니까요. 무슨 말이냐구요? 모두에게 편리하고 유용한 서비스가 왜 무섭냐구요? 그래요. 그게 사실이지요. 참 편하고 유용한 서비스입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뉴스 소재를 여기에 적고 수많은 정치인들도 똑같이 행동하겠습니까. 정치인뿐만이 아니지요. 선진적인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둘러보는 게 기자의 일상이 됐을 정도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사진=씨넷)

모두 다 일상적으로 쓰면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두렵습니다. 진짜로 무서운데 그 이유를 간명하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 더욱 더 두렵습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무섭다고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거의 아무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으니 두렵고 두려울 뿐입니다. 그게 ‘4차산업혁명軍’의 점령 방식인 모양입니다. 총성 없이 평화롭게 그리고 슬그머니 영토를 빼앗는 것이죠.

많은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가 석유와 같은 막강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국내 인공지능(AI) 업체인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의 경우 빅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AI 업체는 5년내 90%가 사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데이터를 누가 더 많이 모으느냐가 이 시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관건이라는 뜻이지요. 이 소리 없는 전쟁을 생각하니 두려울 따름인 거죠.

‘데이터가 곧 석유다’라는 명제가 크게 틀리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조금씩 페이스북에 넘겨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훗날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나 둔감한 것입니다. 지금 누리는 편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당대에 편하자고 미래의 자산과 영토를 조금씩 내주는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죠. 이런 웃음 가득한 ‘평화적 착취’보다 두려운 게 과연 있을까요.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더러 ‘페북질’ 그만 하시라고 권유하기도 참 우스운 일입니다. 그렇게 권유하면 좀스럽고 한심한 짓이겠지요. 다만 지금 하는 그 일이 우리 사이버 영토를 조금씩 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뉴스메이커의 페북 생활로 인해 잘려나가는 사이버 영토의 크기는 범부의 행위에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죠.

더 큰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외세 점령군’이 비단 페이스북 뿐만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플의 앱 생태계, 유튜브의 동영상 플랫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운영체제(OS)......모두 다 가만히 앉아서 미래의 우리 자산으로서의 빅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빅브라더’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론 편리함 때문에 때론 효율성 때문에 자발적으로 점령군에 귀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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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니 이렇게 두려운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IMF 환란 위기 이후 꽃핀 인터넷 열풍 속에서 살아남아 그나마 영토를 지키고 있는 분야는 네이버의 검색과 온라인 게임 뿐인 것 같습니다. 모바일 시대에 건진 영토는 카카오의 메신저 하나인 것 같구요. 그런데 지난 20년보다 최근 들어 ‘외세 빅브라더’의 위세는 더 부드러우면서도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는 것처럼 판단됩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그게 어디 정치인 ‘페북질’ 탓이기만 하겠습니까. 아주 복합적이겠지요. 기업가들의 무너진 벤처정신, 기득권자들의 회유와 압박에 휘둘려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던 법제도, 글로벌 환경을 보지 못하고 국내 기업만 닦달하는 규제기관,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근시안적인 언론......다만 지금부터라도 진짜 두려운 게 무엇인지를 서로 같이 조금씩 공유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