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비판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누구든 완벽한 존재가 아니어서 반드시 허점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빈 구석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뛰어난 비평가들이 아주 많다. 문제는 비판의 경우 자칫하면 비난으로 폭주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토론이라기에 너무 창피한 시정잡배 수준의 말싸움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우리 정치가 그러했었다.
#사람, 특히 경쟁자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승부의 속성 탓이다. 상대의 장점보다 단점부터 후벼 파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특히 그러하다. 선거 때마다 난무하는 흑색선전을 보라. 하지만 이런 승부는 이긴다 해도 남는 게 없다. 결과적으로 경쟁자를 더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제학 용어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깊이 고민한 듯하다. 절제되지 못한 비판의 부작용을 잘 알고 ‘승자의 저주’를 벗어날 대안을 오래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선거 기간 중 네거티브 공격보다 정책을 알리려 노력하고 당선 이후 소통과 통합에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인정되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추모제에 임기동안에는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밝힌 점이 대표적인 통합 행보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문 대통령에 대한 팬덤 현상을 분석하겠지만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문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보다 수도자(修道者)에 더 가깝다. 하기 쉽지만 해(害)가 되는 일은 철저히 자제하고 하기 어렵지만 좋은 일은 꼭 하는 인간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진실한 수도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체취다. 정치인한테서 이런 점을 발견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수도자가 아니라 현실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 그래서 그의 행동 방식은 종교적으로 이해되기보다 리더십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문희상 의원이 최근 쓴 책 ‘대통령’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혼자서 개념을 세워보건대 '三鼎 리더십'이라 불러보는 게 어떨까한다. 다리 셋을 세운 솥처럼 균형이 잡혀 안정감을 극대화한 리더십을 그렇게 불러보고자 하는 거다.
#머리 가슴 배 이 세 가지가 골고루 잘 발단된 사람이 대통령감이라고 문 의원은 그의 책에서 주장한다. 조금 각색해보자. 머리는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이성, 가슴은 진정한 마음, 배는 용기를 의미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셋 다, 타고 나기도 하고, 끊임없이 단련도 해야 하는 덕목들이다. 이중 어느 하나가 강한 리더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셋을 골고루 다 단련시킨 사람은 흔치 않다.
#여러 자료를 대하며 혼자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은 태어날 때부터 이 셋 중 특히 좋은 가슴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나 아닌 다른 이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슴이 좋은 가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에게 그건 민주주의라는 대의(大義)로 완성될 것이다. 타고난 가슴에 비해 머리와 배는 사회 속에서 세게 단련된 측면이 크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에.
#그의 정치는 사실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사회적 요구로 소환된 ‘운명’ 같은 것이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고 그해 말 대선에 출마한 것은 그의 머리와 배가 아니라 가슴이 시킨 일이다. 노 대통령이 그렇게 서거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정치 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의 머리와 배는 가슴에 비해 덜 단련됐다고 할 수 있다.
#머리와 배를 본격적으로 단련시킨 건 2012년 대선 패배 이후다. 그의 패배가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다. 문 대통령은 이때부터 달라진다. 패권주의라는 부당한 지적을 당하면서도 분당을 각오하고 당 대표에 출마하고 당 혁신을 주도한다.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싸워야 할 때는 물러서지 않는다. 개혁과 통합을 위해 머리와 배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제대로 배운 거다.
#그도 사람이므로 많은 한계를 갖고 있을 것이다. 또 현실 정치인이므로 적잖은 오류도 낳을 것이다. 비판 받아야 할 소지가 적잖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다소 찬사 위주의 칼럼을 쓰기로 한 것은 실적과 결과가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세 문제를 논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비판은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타산지석이라도 해야 할 처지에 좋은 자세를 본 받아 나쁠 게 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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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특히 이 '三鼎 리더십'을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대통령의 가슴과 머리와 배가 국민을 향한다면, CEO는 회사 임직원과 소비자를 향하는 점만이 다르지 않겠는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좇는 대통령의 끝이 좋지 않듯, 임직원과 소비자가 아니라 돈만 좇는 기업의 끝도 좋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정규직 전환에 애쓴 SK브로드밴드는 그 점에서 변화의 출발일 수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에 “정치인은 4류, 관료행정은 3류, 기업은 2류급”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당시로선 참으로 냉철한 지적이었다. 그런데 촛불 정국을 지난 지금도 이 지적은 여전히 유효할까. 일류 국민이 4류 정치인을 집단적으로 제어하는 시대가 됐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라고들 한다. 그런 국민에 정치가 반응하기 시작했듯이 기업도 기업가 정신으로 더 무장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