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해 보려는 개발자 혹은 스타트업들을 후원하고 사용권을 받는 ICO가 국내에서 전면 금지됐다.
ICO를 사칭한 사기꾼들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철저하게 대응해 엄벌해야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 생태계에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같은 역할을 하는 정상적인 ICO까지 모두 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부상한 블록체인을 다양한 형태로 실험해보겠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정부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 쪽을 택했다.
29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재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는 ICO를 앞세워 투자를 유도하는 유사수신행위, 투기수요 증가로 인한 시장과열과 소비자 피해 확대 등을 이유로 "기술이나 용어에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ICO, 후원형 크라우드펀딩과 닮은 꼴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은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 중인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받고, 그 대신 투자자들에게 해당 상품을 먼저 혹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ICO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만들 때 필요한 개발비를 지원 받는 대신 투자한 이들에게 일종의 사용권을 제공한다. 개발비를 현금 대신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로 받는다는 점만 다르다.
상품이 출시되기 전 일종의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 블록체인 생태계, 이미 돌아가고 있는데…
국내서는 이미 기업, 공공기관에서도 블록체인을 다양한 형태로 활용해보려는 아이디어가 테스트 중이다.
삼성SDS는 금융, 물류, 제조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플랫폼인 '넥스레저'를 고안했다. 올해 초 삼성카드 회원신청서를 전자문서로 변환할 때 위변조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자문서원본확인 서비스에 이러한 기술을 도입해 상용화했다. 그 덕에 글로벌 핀테크 컨퍼런스인 머니20/20 유럽에서 홍원표 삼성SDS 솔루션사업부문 사장이 기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한국전력공사는 스마트그리드 환경에서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해 모은 전기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직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이웃 간 전력거래'를 블록체인을 활용해 시범사업하는 중이다.
■ ICO, 아이디어 있지만 자금 부족한 스타트업에 '단비'
그 사이 아이디어는 있지만 개발비가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ICO를 진행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들의 서비스에 참여할 사용자들을 모은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근간이 될 수 있는 ICO에 대해 정부는 세세한 내역을 따지지 않고 자본시장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지난 4일 ICO를 전면 금지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불법자금이 실체가 없는 ICO에 대거 투자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서는 XX코인에 대한 투자금 명목으로 현금을 편취하거나 비트코인으로 마약거래를 한 일, 가상통화 판매 명목으로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은 다단계 업체들이 적발됐다.
그러나 사기꾼들이 나왔다고 해서 블록체인으로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으려는 개발자, 스타트업, 중소 규모 기업의 ICO를 모두 범죄자 취급하는 것을 두고 관련 업계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 ICO 전면 금지는 중국과 한국 뿐…미국 등은 조건부 허용
비트코인을 넘어 가장 성공한 암호화폐이자 블록체인 응용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이더리움 역시 ICO를 진행했다.
이더리움은 중개 기관 없이도 안전하고 투명하게 원하는 조건에 맞춰 온라인에서 계약서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스마트계약서(Smart Contract)'라는 개념을 내세워 ICO를 시작한지 12시간만에 지지자들로부터 3천700 비트코인의 후원금을 받았다.
가깝게는 블록체인 기반 분산 스토리지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한 파일코인이 ICO를 통해 2억5천만달러를 모금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미국 당국이 면밀히 불법 여부를 검증한 뒤에 ICO를 진행토록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ICO에 참여해 파일코인이 서비스하는 데이터스토리지 사용권을 받았다.
지난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ICO에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모든 블록체인 토큰이 증권으로 규정될 필요는 없고, 사안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전면 금지가 오히려 잠재력이 높은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나올 길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5일 서울 이더리움 밋업 참석 차 방한한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블록체인은 단순히 투자수단만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투기적 관심과 에너지가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이나 응용성으로 확장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들쭉날쭉한 비트코인, 이더리움의 변동성을 노려 시세차익을 얻거나 ICO로 수익을 얻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블록체인이 신재생에너지 거래, 전자투표, 분산 스토리지, 전자문서확인 등 수많은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한다는 뜻이다.
■ 사기꾼과 아이디어 가진 스타트업이 동급?
본래 의미에서 ICO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대한 일종의 후원에 가깝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칭) 김진화 공동대표는 "ICO를 통해 발급된 토큰은 지분을 주는 것도 아니고 채권이라고 보기도 힘들다"며 "때문에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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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들이 그럴듯한 백서를 만들어 ICO를 사칭해 투자금 대비 얼마의 수익을 보장해 주겠다는 등 사기를 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금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엄벌해야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블록체인 관련 업계나 ICO를 준비 중인 개발자, 스타트업들도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후원자(혹은 투자자)들도 좋은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보는 눈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복잡하고, 잘 모르겠으니 말 나오지 않게 일단 막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이전 정부 시절 핀테크 업계가 여러가지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로 휘청거렸던 것과 같은 부작용을 나을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