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中 말고 국내 투자"…반·디 업계 고민

백운규 산업부 장관 제언에 기업들 난감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7/09/19 15:14    수정: 2017/09/19 15:14

중국 광저우와 시안에 각각 공장을 신설·증설하려던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의 계획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중국 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서 열린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에서 "중국 진출을 재검토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취지로 말했다.

백 장관은 본격적인 간담회에 앞서 1시간 여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자리에서 이 같이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날 간담회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국내 반·디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했다.

18일 산업부-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에 참석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장관 왼쪽) 등. (사진제공=뉴스1)

■ 중국 투자 확대하려는 삼성·SK·LG 제동

백 장관은 권 부회장 등에게 "중국은 대규모 투자로 액정표시장치(LCD)에서 한국을 따라잡은 전력이 있어 (업계들이 중국으로 진출할 경우) 기술 유출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중국에 시설투자하는 규모 이상으로 국내에 시설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백 장관은 "국내 기업들이 현재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고,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역시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다"면서 "중국 등 경쟁국의 기술, 인력 유출 시도에 각별히 신경써달라"고 강조했다.

백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3사가 중국에 부품 공장을 세우거나 확대하려는 계획에 정부가 제동을 거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시안에 자사 낸드플래시 공장을 증설하겠다고 지난달에 공시했다. 3년 간 총 70억 달러(약 7조8천억원)을 투입해 3D 낸드플래시 제2기 공장을 짓겠다는 목표다. 중장기 낸드플래시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다.

삼성과 함께 국내 반도체 업계를 이끌고 있는 SK하이닉스 또한 지난해 12월 중국 우시에 위치한 D램 공장을 확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 미세화에 따른 공정수 증가와 장비 대형화에 따라 우시에 위치한 팹(fab·웨이퍼 제조 시설)에 클린룸(반도체 제조에 이용되는 청정실)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내년 말까지 중국 공장 증설에 약 1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C2) 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 발등에 불 떨어진 LGD "中 합작법인 승인돼야 하는데…"

가장 큰 고민에 빠진 기업은 다음 달 초 중국 합작법인의 정부 승인을 앞둔 LG디스플레이다.

정부가 기술 유출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합작법인 승인을 거부할 경우, 최악의 경우 LG디스플레이의 중국 투자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생산키 위해 중국 광저우시 정부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이 합작법인에 1조8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OLED는 산업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다. 따라서 이 기술을 가진 업체가 해외에 관련 공장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합작 법인 설립에 대한 정부의 승인 기한은 다음달 초로 예정됐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별 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LG디스플레이로서는 OLED 중국 투자가 수포로 돌아갈 경우 LCD→OLED 공정 전환 역시 늦어져 향후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 업계 "기업하기 힘든 나라…반·디 기술 유출 가능성엔 '의문'"

이 날 백 장관의 발언은 국내 산업 활성화와 혹시 있을 지 모를 국외 기술 유출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이 국내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우선돼야 하는 규제완화 문제에 대해서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는 미봉책을 내놨다"며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대책도 현재로선 미비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우려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의 국외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며 "사드 등 정치적인 문제가 산업계로 확산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최근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에서 "자체 보안시스템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어 기술유출 우려가 없고, LCD 기술도 아직까지 유출된 사례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등 반·디 업체들은 현재 정부의 바람대로 국내로 투자를 늘리는 플랜B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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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진출이 축소되거나, 무산될 경우 삼성전자는 향후 평택 공장의 D램, 낸드플래시 시설 투자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결정내릴 것으로 보인다"며 "또 SK하이닉스는 청주 신규 생산라인(M15)을 D램과 낸드 공용팹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투자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LG디스플레이는 향후 파주 P10 공장의 시설투자를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며 "8세대 LCD TV 패널 생산라인을 장차 OLED TV 패널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