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다'는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거짓으로 꾸며 낸 변명이나 가식이 아니라면 그것은 힘에 의한 굴복의 의미로 읽힌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맞서기 두려운 상대의 뜻을 들어주거나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상식적 이해이다. 절대적 힘에 의한 폭압적 권력이 지배하던 봉건 시대나 근대 사회, 그리고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안에서 횡행하던 일이다. 몰상식적이고 비문명적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인간적인 비애감마저 느껴진다.
민주 시민사회에서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권력이나 그 권력을 등에 업은 무리가 정상적인 통치 시스템을 우회해 이런 폭력을 휘둘렀다면 심각한 권력 남용이자 헌법 훼손이다. 추후 권력의 강압에 따랐던 이를 벌하거나 매도하는 일 또한 비정하고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대통령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의 사적 자치 영역에 간섭한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하여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엄중히 꾸짖지 않았는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7일 결심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삼성 측이 건네거나 주기로 약속한 433억여원을 국정 최고 권력과 경제계 실세간 독대 자리에서 오간 부정한 이권 청탁으로 본 것이다. 특검은 최후 논고를 통해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인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삼성 계열사에 대한 안정적 지배력 확보가 시급했고 이것이 최순실이 요청한 재단 설립이나 정유라의 승마 훈련, 영재센터 운영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자금 지원의 필요와 결합되어 정경유착의 고리가 다른 재벌보다 앞서서, 강하게 형성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52차례에 걸친 공판 과정 내내 특검은 이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지주회사' 등 단어가 적힌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과 청와대 말씀 자료 등 간접 증거나 정황 증거 뿐이다. 특검의 공소사실이 직접 증거보다는 추론과 예단에 의존해 있다는 것이다.
삼성 측 변호인단이 특검이 증거도 없이 '승계 작업'이라는 가공의 틀로 견강부회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이유다.
삼성 변호인단은 "이재용의 승계 작업이라는 사실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부정한 청탁이라는 대가성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승계 작업이라는 자체가 특검이 만들어낸 '가공이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또한 삼성 역시 미르-K 재단에 돈을 댄 다른 기업들과 다를 바 없는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을 통해 "사익 추구를 위해 대통령에게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서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특검의 주장에 대해서도 "너무나 심한 오해"라며 "정말 억울하다.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는다면 (앞으로)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며 이 오해만은 꼭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최순실의 공갈과 강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이지 뇌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오는 25일 오후 2시 30분, 1심 재판부의 최종 선고에 달렸다.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은 새로운 대한민국이 출범하게 된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 쟁점이라는 점에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그만큼 이재용 재판은 정치, 경제적으로 변곡점에 서 있는 우리 사회와 경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이자 판결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편향성이나 나의 주장만을 주먹구구식으로 내짖는 그런 시대를 끝내야 함은 물론이다. 이재용 공판 내내 재판정 밖에서 일어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반올림-세월호 인사들간의 충돌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극한 대립을 잘 보여준다. 기업인이 정치 진영의 대리전에 내몰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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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것이다. 판결에 따른 후폭풍이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뇌물 혐의의 직접 증거가 없다보니 판사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은 엄중하고 공정해야 한다. 민주국가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법관이다. 정권이 바뀌때마다 권력이나 정치적 편향성을 좇는 좌우의 여론을 살펴 판결을 내리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혁명의 시대, 인민재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로지 증거와 법리만을 갖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