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사업자를 방송과 통신 등과 함께 규제의 틀 안에 넣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법적으로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는 포털은 규제의 울타리에서 제외돼 있다. 하지만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미디어 기능, 공정경쟁에 대한 논란 등으로 인해 규제 패러다임의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때문에 이용자 보호조치를 포함한 포괄적인 규제의 틀을 만드는 방향으로 정부정책 방향이 조정되는 움직임과 함께 국회에서도 입법 논의가 시작됐다.
■ 플랫폼 중립성 규제 체계 도입해야
5일 신경민 의원과 녹색소비자연대가 개최한 ‘소비자 주권 확립을 위한 ICT 법제도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소비자 권한 강화와 규제 형평성 확보, 미디어 독점 해소를 위한 플랫폼 다양성과 건전성 확보를 위해 ICT 시장참여자를 포괄하는 법제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수 교수는 또 “현재 네트워크는 공유재로 이를 어떻게 잘 쓸 것인가 문제를 따지고 있는데 포털도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가 조화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와 학계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는 플랫폼 중립성 얘기다. 인터넷 플랫폼의 기능 확대에 따라 과거 망 중립성을 중심으로 한 논의가 기술적 중립성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기술적 중립성이란 법과 규제가 기술 진보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일반 원칙으로 단순히 인터넷 접속 서비스 사업자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간 망 중립성 논의에 그치지 않는다. 포털과 같은 특정 플랫폼 보유자가 사실상 표준화를 통해 플랫폼을 독점하는 현상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실제 정부에서도 플랫폼 중립성 규제를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금지 행위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며, 미래창조과학부는 플랫폼의 금지 행위 해석 지침이 될 가이드라인 개정을 검토 중이다.
이는 통신과 방송에만 집중된 전통적 법규제 체계가 인터넷 플랫폼의 영향력이 확대된 새로운 시장 환경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 시작되는 논의다.
규제 최소화를 위해 자율규제가 가능하다면 최선일 수 있겠지만, 공적 가치를 지닌 방송과 통신 못지 않게 인터넷 플랫폼도 이용자 보호 등의 규제 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인터넷의 공적 가치 제고해야”
윤상필 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통신사들은 매년 6조원 안팎의 거금을 투자해 국내 CPND 생태계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면서 “새 정부의 통신비 절감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통사 노력만으로는 소비자들의 통신비 인하에 도움을 주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통신비는 단말기는 물론 플랫폼과 콘텐츠에도 연계돼 있다”면서 “인터넷 동영상을 볼 때 15초 광고는 이용자 입장에서 LTE 데이터 차감이 되는데 연간으로 환산하면 9만원 정도 되는 통신비를 플랫폼사업자가 이용자에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통사에만 집중된 통신비 인하 책임을 단말 제조사는 물론 콘텐츠와 플랫폼사업자들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소비자 단체도 플랫폼 중립성 규제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인터넷의 공적 가치를 따져보자고 제안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ICT 환경에서 융합적인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플랫폼의 법적 지위를 명확하게 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 규제 형평성이 빠르게 정리되고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수 강원대 교수는 “포털은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보면 고객이 개인 이용자와 광고주로 이뤄진 양면시장 사업자다”며 “이용자들이 검색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는 것 같지만 광고 단가를 올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의 경우를 보면 구글이 기금을 마련해 사회적 환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같은 글로벌 추세만 따져보더라도 포털 사업자,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책임과 이용자를 위한 측면에서 적정한 수준의 법이나 제도가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인터넷 업계, 자율규제로만 남겨야
인터넷 사업자를 대변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측은 플랫폼 중립성 도입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
우선 통신사나 방송사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경쟁상황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쟁상황평가는 규제 체계를 마련하기 이전에 시장에서의 영향력이나 경쟁 시장 획정 등을 따지는 조사다. 플랫폼 중립성을 도입할 경우 인터넷 사업자도 경쟁상황 평가 대상이 된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경쟁상황평가 대상 확대와 관련해 기간통신사업자(통신 3사)는 공공적 필수재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은 사업자들의 자유경쟁 왜곡 방지가 목적이다”며 “방송, 통신 등 인허가와 주파수 할당을 받는 진입규제가 있는 시장과 인터넷 사업자의 시장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어 “공정경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정경쟁은 체급이 비슷한 사람과 비교해야 한다”며 “KT의 작년 매출은 22조원이지만, 네이버는 이제 4조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같은 잣대를 두고 경쟁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업자와 역차별의 문제가 있다는 점도 문제를 삼았다.
차재필 실장은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를 한다고 했을 때 해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징수할 근거나 집행력이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 든다”며 “공정한 경쟁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독박을 쓰는 것은 국내 사업자 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신중한 규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규제 틀을 마련하는 내용인 만큼 신중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종관 전문위원은 “변화된 ICT 환경에서 규제체계 재정립을 위한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지금의 논의는 시장에서는 포털을 규제하는지 문제이지만, 정책체계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가 적정한지의 문제가 논의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점으로 볼 때 상당부분 동의할 수 밖에 없다”면서 “포털은 미디어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고 동영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한다고 하는 페이스북은 (기존 방송사와 같은) 이미 미디어 안에 들어와있다”고 강조했다.
포털이 단순히 검색서비스와 광고에 머무르지 않고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공공성, 공정성 등 기존 방송사와 같은 미디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규제로 모든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시각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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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관 위원은 “포털 등 인터넷에 대한 규제 정당성을 갖추려면 준거가 있어야 하고 국제 규범과도 조화돼야 한다”면서 “특정 사업자의 표적을 둔 규제는 온당치 않고, 인터넷 생태계를 명확히 보고 규제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 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공공성 제고로 볼 수 있는데 통신 분야에서는 이용자의 요금으로 시작됐고, 인터넷 사업 분야는 포털의 공적 가치 관점에서 시작됐다”며 “가급적이면 자율규제 형태로 촉진시켜야 하지만, 최소한의 개입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