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민 장관 후보자와 SW

기자수첩입력 :2017/06/29 06:18    수정: 2017/06/29 08:58

세계최대 바이오 행사인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 2017'이 지난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막을 내렸다. 바이오 행사임에도 주인공은 바이오가 아닌 소프트웨어(SW)였다. "구글이 5년후 제약회사가 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라는 말이 내내 화제였다.

행사에 참가한 디지털헬스케어 업체들은 "앞으로 SW가 제약 시장을 위협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 제약회사 대표는 "직원이 수천명인 글로벌 제약사가 수조원을 쏟아 부어도 임상에 실패하는데 직원이 4명뿐인 우리는 SW를 활용해 단돈 5만달러(약 5700만원)에 임상시험에 성공했다"며 "앞으로 제약사도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차고에서 소규모로 창업하는 시대가 올 것"라고 내다봤다. 구글 같은 데이터와 플랫폼을 장악한 업체들이 제약과 바이오 산업을 장악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 견해였다.

바이오 뿐 아니다. 다른 산업도 'SW태풍'에 자유롭지 못하다. 지멘스 등 세계적 제조업체들은 오래전에 SW기업으로 변신했다. 제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세계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IT회사로 변신, 한때 600명이던 주식 매매 트레이더들을 SW로 대부분 대체했다. 기존 은행 지점의 70~80%가 IT발전으로 10년안에 사라질 것라는 전망도 나온다.

'SW가 세상을 삼킨다'는 소리가 미국에서 나온게 6년전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인공지능(AI)은 여기 저기서 위력을 떨치며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AI가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소설을 써 상도 받는다. 얼마전에는 AI시집도 중국에서 선보였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AI기자와 AI 변호사가 등장한 건 일년도 넘는다. AI바둑은 인간 적수가 없어 은퇴를 선언했다. AI가 삼키는 세상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AI는 SW의 총아다. 올해들어 애플, 구글 등 미국 SW기업은 미국 시가총액 1~5위를 싹쓸이, 전통 기업을 놀라게 했다.

'유니콘' 기업이라는 게 있다. 시장가치가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을 말한다. 세계에 180개가 넘는다. 대부분 SW와 IT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세상을 바꾸고 있는 기업들이다. 우리는 이중 3곳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SW가 산업이라는 옷을 입은 지 30년이 넘는다. 정부는 매년 3조원 이상을 공공 정보화 사업에 쏟는다. 그동안 수십조원이 공공 정보화에 투입됐다. 그럼에도 세계에 내놓을만한 SW기업이 없다. 'SW생산국'이기 보다 'SW수요국'이기 때문이다. SW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2.5%에 불과하다. 미국(4.7%), 독일(4.0%), 일본(3.4%), 중국(9,3%)에 한참 뒤진다. 5조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세계 시스템통합(SI) 시장에는 도전할 엄두도 못낸다.

SW강국 코리아가 절실한 지금, 미래부 장관에 처음으로 개발자 출신이 내정, 청문을 앞두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을 지낸 유영민 후보자는 국내 대기업의 첫 정보기술임원(CIO)이다. 한때 SW개발에 푹 빠져 지냈다. 10여년전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지금도 생각난다.

"회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습니다. 그런데 SW개발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잦은 야근에도 시간가는 줄 몰랐죠. 잠자리에 들면 천정의 사각형이 마치 개발 로직 처럼 보였고, 천정에 버그가 어른거려 잡곤 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인데 개발을 빨리 하고 싶어 통금 해제가 왜 이리 더니냐며 안달하곤 했습니다".

SW에 애착이 많았던 유 후보자는 다음달 4일 열리는 청문 심사를 먼저 통과해야 그의 뜻을 펼칠 수 있다. 자녀의 LG계열사 취업 등 여러 의혹이 불거져 있다. 이에 대해 유 후보자는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잘못된 점은 반성하고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SW를 잘 아는 장관 한명이 왔다고 'SW강국'이 갑자기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토대는 마련할 수 있다. 엊그제 페이스북에는 '내가 아는 유영민 선배님'이라는 글이 올라와 널리 회자됐다. 그에게 업무를 배운 전 외국 IT업체 최고경영자가 쓴 글로 유 후보의 면모를 엿볼수 있는 에피소드가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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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은 유 후보자가 "뭐든 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느때보다 SW강국 코리아에 업계가 기대를 갖는 이유다. 어차피 청문회는 전문성과 정책보다 불거진 의혹이 더 조명 받을 것이다.

우리는 SW를 기반으로한 4차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 국가경제를 한단계 점프해야 하는 시대적 소임을 안고 있다. SW가 세상을 삼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 후보자가 청문에 당당히 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