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 절차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도시바는 15일 우선협상대상자 업체를 선정하고 최종 협상을 진행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SK하이닉스가 포함된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이 일본 정부가 이끄는 '미일(美日)연합'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렇게 된 이상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인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일연합을 비롯한 각 진영은 모두 강점과 약한 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선정일 직전까지 후보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日정부 비호받는 미일연합 급부상…SK하이닉스엔 이득?
일본 정부계 자금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정책투자은행(DBJ) 등 재무적투자자(FI)를 주축으로 하는 미일연합은 일본 정부로부터 우회적으로 지원을 받는다. 인수 자금을 확충키 위해 미국의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최근 참여 의사를 밝혔다.
여기엔 중국 등 해외에 자국의 반도체 기술이 유출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일본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지난달 28일엔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놓고 도시바와 갈등을 빚어온 웨스턴디지털(WD)이 미일연합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일연합은 도시바메모리의 강력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미국의 브로드컴이 또 다시 유력한 인수후보로 부상하면서 도시바 인수전은 또 다시 미궁에 빠졌다.
브로드컴이 본입찰에서 미국의 사모펀드 실버레이크파트너스와 손잡고 최대 금액인 약 2조2천억 엔(약 22조6천500억원)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6일 이 소식을 접한 일본 아사히신문 등은 우선협상대상자 후보로 미국의 브로드컴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자본 잠식 상태에 놓인 도시바가 브로드컴의 러브콜을 쉽게 지나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비해 미일 연합은 약 2조 엔(약 20조6천억원) 안팎의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어 브로드컴 컨소시엄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미일 연합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약 6일 앞두고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다. 9일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이 KKR과 함께 미일연합 컨소시엄에 재무적투자자로서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베인캐피털은 지난달 도시바 반도체 매각 본입찰에 SK하이닉스와 컨소시엄을 꾸려 참여했다.
앞서 베인캐피털은 SK하이닉스와 함께 경영자매수(MBO) 방식으로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별도의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도시바메모리의 지분 51%를 인수하고, 49%의 지분은 도시바가 보유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자신만만했던 베인캐피털도 브로드컴의 급부상에 놀란 듯 하다"며 "인수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판단해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미일연합에 합류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의 합류로 미일연합은 최대 약점이었던 자금력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면서 "SK하이닉스를 비롯, 컨소시엄에 소속된 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져갈 지는 미지수이지만 낸드플래시 업계 경쟁자인 도시바 메모리와 사업적 시너지를 모색해 볼 수 있단 점에서 일단은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도시바-WD 갈등 해결이 우선…독점금지법 심사 문턱도 높아
베인캐피털의 합류로 한층 강해진 미일연합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랜 기간 도시바와 협력했지만 최근 사이가 틀어진 웨스턴디지털(WD)과의 협상 문제가 남아있다. 입찰에 참가한 각 진영에도 도시바와 WD의 대립 해소는 중요한 과제다.
WD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도시바에 의한 일방적인 사업 매각이 양사간 합작 계약을 위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국제중재법원(ICA)에 반도체 사업 매각에 의한 지분 이전의 철회 등을 금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며칠 앞두고 미일연합에 합류한다는 목표로 도시바에 '양보안'을 제시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 안에는 ▲WD가 자사의 직접 출자액을 당초 1조9천억 엔에서 2조 엔 전후로 증액한 것 ▲WD가 경영권을 쥐는 데 반대하는 도시바의 뜻에 따라 지분취득 대신 회사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갈등의 골이 깊어진 도시바는 WD 측에 "당초의 출자비율을 낮춰도 장래에 경영권을 쥐려 할 것"이라며 양보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에 WD는 "도시바의 지적을 근거로 한 제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곧 새로운 제안을 다시 보낼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WD이 미일연합에 안착한다고 해도, 독점금지법 심사라는 높은 문턱이 남아있다. WD은 글로벌 플래시메모리 시장서 15%의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WD을 도시바메모리와 동종 기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독점금지 심사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독점금지법 문제에 한해선 SK하이닉스 역시 자유롭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글로벌 낸드 시장서 5위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3위인 도시바와 같이 낸드플래시를 만든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세계 각국의 독점금지법 심사 통과까지 적잖은 진통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 독점법서 자유로운 홍하이, 최대 인수금액 및 애플 등의 합류가 변수 될 듯
한편,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 회사가 이끄는 컨소시엄에 미국 주요 IT 기업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홍하이가 인수전 막판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3일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현지 언론은 홍하이가 이끄는 컨소시엄에 애플과 델이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도시바 인수 의지가 높은 궈타이밍 홍하이 회장은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승인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보도에 따르면 궈타이밍 회장은 "향후 (홍하이 컨소시엄에) 아마존이 합류할 가능성도 있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시스코시스템즈와도 협의 중"이라면서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자국 내 공장 유치를 원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훙하이는 도시바 인수전에 자사가 지난해 인수한 샤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궈타이밍 회장은 "폭스콘이 도시바를 인수하게 될 경우, 일본 샤프가 도시바 메모리 지분의 최대 40%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며 샤프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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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WD과 달리 독점금지법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홍하이의 큰 장점이다. 또 후보 진영 가운데 가장 높은 인수금액인 3조 엔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현재 유력한 인수후보인 브로드컴이 제시한 금액을 크게 상회한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홍하이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중국을 경계하고 있어 인수 후보자로 낙점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그러나 반도체 사업을 하루 빨리 매각해 최대한의 자금을 받아내야 하는 도시바로선 현재 일본 정부와 실익을 둘러싸고 매우 갈등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