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핑계 금융기득권 장막 걷어내야

[인터넷전문은행시대 下]특례법 통과시켜야

방송/통신입력 :2017/04/03 16:02

김태진, 송주영 기자

24년만에 등장한 새로운 시중은행 케이뱅크가 3일 서비스에 들어간 데 이어 카카오뱅크도 본인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이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금융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은산분리 규제를 정의한 은행법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은산분리 제도는 총수가 있는 재벌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은행법에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보유를 최대 4%로 제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막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국내 핀테크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범이 되고 있다. 핀테큰 산업이 발전해 금융시장에 혁신을 불러오려면 ICT 기반 기업이 새로운 기술로 시장에 마음껏 뛰어들어 기존 시장의 주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하는 이 법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만 하더라도 이 법에 발목이 잡혀 새로운 금융기법을 위해 자본을 투자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중국이나 일본 등 경쟁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 10년 전 IPTV 산업과 닮은 꼴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과 법제도 논의 과정 등을 살펴보면, 2008년 서비스를 개시한 IPTV(인터넷 멀티미디어 서비스) 산업과 매우 유사하다.

IPTV는 당시 유료방송시장에서 기득권을 지닌 케이블TV업계 등 기득권을 지닌 방송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출범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핀테크(fintech)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ic)의 융합 산업으로 낡은 규제의 잣대를 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같은 시기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맞춰 방송통신위원회가 설립되는 까닭에 진통이 더 크기도 했지만 IPTV를 기존 유료방송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IT 신산업으로 봐야 할 것인가를 놓고 방송통신사업자 간 치열한 논리 대결 및 헤게모니 싸움이란 이유가 더 컸다.

또 여기에는 케이블TV사업자와 비교할 수 없는 거대 통신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올 경우 지배력 전이가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한 몫 했다.

하지만 결론은 특별법인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을 만들어 IPTV를 기존 유료방송과 다른 융합서비스로 규정하고 육성정책을 폈다. 그 결과 1천474만명에 불과했던 유료방송(위성방송 제외)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케이블TV 1천450만명, IPTV 1천356만명 등 총 2천808만명으로 확대됐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위성방송을 제외하면 지역독점인 케이블TV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서비스 선택권이 케이블TV와 IPTV 3사로 넓어졌고, 디지털화에 따른 품질경쟁, T커머스를 비롯한 다양한 융합서비스와 결합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비슷한 시기였던 2008년 금융권이 은산분리란 은행법 개정과 은행건전성 악화란 이유로 빗장을 걸어놨던 것과 대비된 결과다.

또 이와 유사한 시기 주요 선진국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진흥정책과 규제철폐를 했던 것과 비교된다.

업계 한 전문가는 “1990~2000년대 초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후 제자리를 잡은 미국과 일본, 유럽과 달리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우리나라 금융 산업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며 “예대마진에 의존하는 기존 은행권의 기득권 논리가 지속된 탓에 소비자의 편익도 결과적으로는 줄어든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일본 금융업계에 시장을 내준 대출 분야처럼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 인터넷전문은행들에게 미래 시장마저 내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IPTV와 같이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시급히 진흥, 육성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경쟁력 갖춘 ICT 대신 금융이 주도해야 하나”

은산분리 제도는 한국의 ‘재벌’ 사회에서 발생 할 수 있는 폐해를 사전 방지하고,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핀테크, ICT 융합 시대의 인터넷전문은행은 글로벌 트렌드에 따른 새로운 융합 비즈니스로, ‘은산분리’체제의 적용 대상이 아닌 4차 금융 산업 혁명의 진흥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증가 자동차를 상용화했지만 3km 속도 제한과 운행 시 기수가 붉은 깃발을 흔들어야 한다는 과도한 규제로 산업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에 빼앗겼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영국이나 일본을 봐야 한다”며 “영국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런던 테크시티를 핀테크 중심으로 키우는 클러스터로 육성해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송금과 결제서비스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국이 인터넷은행 후발주자로 빠르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기존 금융 규제를 넘어 신규 산업의 진흥 차원에서의 접근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 정태욱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우리나라 ICT 기술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금융은 세계적인 것이 없다”며 “ICT는 발을 묶고 금융에게 인터넷전문은행을 주도하라는 것이 맞는 말이냐”고 묻기도 했다.

■일본·중국 등에 비해 출범 늦어

해외에는 이미 각 업종의 ‘역량 있는’ 기업이 인터넷은행을 주도해 기존 금융 시장을 혁신할 수 있도록, 새로운 비즈니스 진흥 관점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이 비교적 잘 자리 잡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일본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대주주들이 특화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중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금융과 ICT 혁신을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문종진 교수는 “해외 사례와 우리의 제도 장치를 견줘보면 남들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만 불안하다고 기차를 고집하는 상황처럼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2월 국회 정무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관련 법률 재개정에 관한 공청회'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 법안은 총 5개다.

자유한국당 강석진, 김용태 의원은 은행법 개정안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국민의당 김관영, 바른정당 유의동 의원은 특례법을 통해 은산분리를 완화하자고 발의했다.

산업자본의 지분율을 34~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고 대신 은행의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와 대주주가 발행한 주식의 취득을 막아 은행의 자본이 대주주에게 흘러가는 것을 규제하는 형태로 돼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특별법 형태로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례법은 은행법 개정안과 달리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정도가 덜하다. 주식 취득 제한을 50%까지 늘린 것과 비교해 34% 수준으로 낮다. 특별법 취지도 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아닌, 인터넷전문은행을 ICT 융합의 특별한 사례로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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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훈 케이뱅크 행장은 “발의된 특례법 등은 기존 은행법보다 대주주와의 거래에 더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다”며 “”특례법안의 신용공여와 대주주 주식 전면 취득 금지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분 규제 한도를 50%까지 높여주면 감사하지만 34% 정도면 경영권을 가질 정도로 증자를 할 수 있다”며 “자본금 2천500억원으로 출발해 ICT 개발과 직원을 뽑다보니 비용을 많이 소진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