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이 결정된 지 2시간이 지난 후 삼성그룹은 17일 오전 "법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짤막한 공식 입장을 냈다. '구속이 곧 유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향후 삼성 측이 법무팀을 중심으로 이 부회장의 무죄 입증을 위해 치밀한 법리 마련과 재판 준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해 두 번씩이나 영장을 청구하고 기어이 구속을 시킨 특검 수사에 억울해 하고 있다. 공식 입장은 짧았지만 하고픈 말은 오만가지다.
1938년 창립 79년 만에 그룹 총수가 정치적 풍파에 휘말려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으니 왜 하고픈 말이 없겠는가. 삼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그동안 "대가를 바라고 돈을 건네 적이 결코 없다"고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정권에 부정한 특혜 지원을 청탁하거나 묵시적 동의하에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최순실-정유라 모녀에게 승마훈련을 명목으로 지원한 것은 박 대통령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하게 된 일이고 이 같은 일이 추후에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지원을 중단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시간 흐름으로 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가 합병을 결의한 것은 2015년 5월 26일이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Associates, L.P.)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를 선언한 것은 이로부터 8일 뒤인 6월 4일이다. 당시 엘리엇의 출현은 삼성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합병이 결정된 것은 같은 해 7월 17일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한 시점은 일주일 정도 지난 같은 달 25일이다.
삼성은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미리 돈을 주고 특혜를 받아야 하는데 합병이 다 끝난 이후 지원을 한 것이 어떻게 뇌물이냐며 대가성이 없다는 논리를 펴 왔다. 또 엘리엇의 출현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2014년부터 로비를 해 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 합병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최고 권력자의 강압과 최씨 무리들의 국정농단에 못 이겨 돈을 준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지난달 1차 영장청구 당시 법원도 이 부분에 대한 특검의 소명이 부족했다며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그러자 특검은 이번엔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에도 해결해야 할 민원이 많았을 것이라고 다시 틀을 짰다. 합병 뿐만 아니라 경영권 승계 전반으로 확대한 것이다. 특검은 청와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외압을 행사해 합병 후 삼성SDI가 순환출자 규제에 따라 팔아야할 삼성물산 지분을 1천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줬다고 혐의를 추가했다. 또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에 메모된 내용을 근거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유가증권 상장도 특혜라고 봤다.
특검은 또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차명 휴대폰으로 570차례 통화한 기록을 확보했다며 결국 두 사람이 경제 공동체라고 법원에 소명했다. 따라서 삼성이 최씨에게 돈을 건네 것은 곧 대통령에게 돈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취지다.
그러나 삼성은 삼성SDI의 물산 지분 처분은 안 팔아도 되는 것을 (합병)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자발적으로 한 일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은 원래 나스닥에 가려다가 국내 투자자들의 요청으로 국내 증시를 선택한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삼성 측은 "(정부가)알아서 해줬는지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며 "특검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기업 중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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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우니 정경유착의 폐해를 덮으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특검이 추론이나 짜 맞추기식이 아닌 합리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갖고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삼성 관계자는 "사실 관계가 달라진 것은 없다. 특검이 내세운 것은 무리한 전제와 추론 뿐이다"라며 "법원에서 진실을 가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