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정기수기자)사실 국내 자동차시장 소비자들은 업체들의 옵션 장사에 길들여진 측면이 많다. 소위 '옵션질'이라는 비속어가 공공연하게 통용될 만큼, 엔트리 트림에 원하는 옵션을 추가하다 보면 어느새 상위 트림 가격에 육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호도가 높은 옵션을 선택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차량 등급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각각의 옵션에 대한 세금까지 고스란히 고객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엔트리 트림은 '깡통차'로 전락하고 실제 구매자는 거의 없는 업체들의 상술로 치부되기도 한다.
한국GM의 준중형세단 '올 뉴 크루즈'는 이런 점에서 크게 반길 만한 차량이다. 전 모델에 신형 1.4ℓ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과 3세대 6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됐다. 랙타입 전자식 차속 감응 파워스티어링(R-EPS) 시스템과 스탑 앤 스타트(Stop&Start) 기능도 기본으로 들어간다.
한국GM 황지나 홍보 부문 부사장은 "현대차 아반떼가 낮은 엔트리 가격과 화려한 옵션으로 가격에 민감한 준중형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신형 크루즈는 1.6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으로 짜여진 준중형세단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신형 크루즈의 사전계약은 이달 7일 기준 2천대를 돌파했다. 지난달 17일 사전계약에 돌입한 이후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수 기준 14일 만에 거둔 실적이다. 일평균 약 143대 꼴로 계약이 이뤄진 셈이다. 판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회사 내부적으로 잡은 월간 목표치 3천대에는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 아반떼의 판매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반떼는 지난해 월평균 7천800여대가 팔려나갔고, 지난달에도 5천대 이상이 판매됐다.
황 부사장은 "단 1종류의 파워트레인과 다소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 실구매고객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며 "향후 판매에 가속도가 붙으면 준중형 시장 1위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형 크루즈의 시승은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에서 경기 양평 중미산 천문대를 왕복하는 142km 구간에서 이뤄졌다. 시승차는 최상위 트림인 LTZ 디럭스에 풀옵션을 적용한 모델(2천848만원)이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점은 커지고 가벼워진 차체다. 타사의 경쟁 차종보다 길이는 늘어났고 무게는 줄었다. 크루즈의 전장은 4천666mm로 기존 모델보다 25mm 길어졌다. 아반떼(4천570mm), K3(4천560mm), SM3(4천620mm) 등 동급 모델과 비교하면 최대 100mm 이상 크다. 실내 공간을 결정짓는 척도인 휠베이스(축거) 역시 2천700mm로 이전보다 15mm 커졌다. 전 모델의 단점으로 꼽히던 뒷좌석 레그룸도 22mm 늘어났다. 아반떼보다 40mm 크다. 키 177cm의 기자가 앉아도 여유롭다.
차체는 커졌지만 무게는 오히려 이전 모델보다 110kg 감소했다. 또 차체의 74.6%에 이르는 부위에 초고장력 및 고장력 강판을 적용해 강성을 27% 증가시키고, 첨단 소부경화강(PHS) 적용 비율을 21%까지 확대해 주행 안전성과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더 단단하고 가벼워졌으니 잘 달리는 건 당연한 결과다. 상당한 비용 투자가 불가피했겠지만 얻어낸 결실은 크다.
디자인도 이전 모델 대비 큰 폭으로 변화됐다. 쉐보레가 지향하는 낮고 넓은 디자인 컨셉트에 맞춰 전장은 늘었지만 전고는 10mm 낮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느낌을 준다.
전면부는 말리부 등에 적용된 패밀리룩인 듀얼 포트 라디에이터그릴과 LED 주간주행등이 내장된 헤드램프가 적용됐으며 그릴 상단에 엠블럼을 배치해 날렵한 인상을 갖췄다. 여기에 보닛이 짧고 실내공간 비율이 높은 '캡포워드 스타일'이 심화, 적용됐고 측면 캐릭터라인을 비롯한 면과 선은 입체적으로 구성해 볼륨감을 더했다.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자 버킷 타입 가죽 시트가 몸을 편안하게 감싸안는다. 실내에는 쉐보레 듀얼 콕핏 인테리어가 반영돼 스티어링 휠, 계기반, 기능 스위치 버튼이 깔끔하고 편의성 높게 재배치됐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잡은 8인치 고해상도 풀 컬러 스크린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 지원은 물론, 쉐보레 마이링크도 적용됐다. 애플 카플레이를 통해 통화, 문자, 음악 감상 등 다양한 컨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대화형 클라우드 서비스인 시리 음성 명령 기능을 통한 조작도 가능하다. 9개의 스피커와 대용량 앰프로 구성된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제공하는 사운드 역시 차급 이상이다.
시승 구간은 혼잡한 도심은 물론 고속도로와 와인딩 구간이 골고루 분포돼 차량의 성능을 테스트 하기에 충분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서울춘천고속도로에 들어서 가속 페달에 힘을 넣자 100km/h까지 순식간에 치고 올라갔다. 신형 크루즈의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초대 후반이다. 살짝만 힘을 줘도 순발력 있게 반응한다. 앞 차를 추월할 때도 머뭇거림이 없다.
신형 크루즈에는 신형 1.4리터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이 탑재됐다. 최고출력 153마력과 최대토크 24.5kg·m의 힘을 발휘한다. 이전보다 최고출력은 13마력, 최대토크는 4.1kg·m가 높다. 경쟁 모델인 현대차 아반떼 1.6 GDi는 최고출력 132마력, 최대토크 16.4kgm의 성능을 지녔다.
보령공장에서 생산되는 3세대 6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재빨리 최적의 기어 단수를 찾아 옮겨가 변속 충격도 거의 없다. 수동 변속을 즐기는 운전자가 의외로 많아 국내에서 원성을 샀던 토글시프트 문제도 개선했다. 신형 크루즈는 팁트로닉 타입을 적용, 수동 변속을 원할 때 레버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된다.
차선이탈 경고(LDWS) 및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LKAS) 등 동급 최초로 적용된 안전사양도 눈에 띈다. 시승 도중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자 스티어링휠이 무거워지며 위험을 알려준다. 앞 차량과 접촉이 예상될 경우에는 전방충돌 경고시스템(FCA)이 작동된다. 다만 경쟁모델에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이 옵션에서도 제외된 점은 아쉽다.
스티어링휠의 조향 성능은 "더할 나위 없다"는 표현이 적합할듯 하다. 고속으로 접어들수록 묵직해지며 큰 유격 없이 조작하는 만큼 정확히 차량을 움직여 전륜구동 차량임에도 탁월한 안정감과 운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심지어 한적한 직선 구간에서 잠시 운전대에서 손을 뗏지만 차는 기울어짐 없이 똑바로 나아간다.
신형 크루즈에 탑재된 R-EPS는 조향에 힘을 더해주는 전기모터가 실내에 붙어있는 저가형과 달리, 엔진 아래에 있는 스티어링휠과 직접 연결된 축에 달려 있다. 구조도 복잡해지고 비용도 꽤 들지만 부드럽고 민첩한 조향 감각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반응도 빠르다.
중미산 와인딩 구간에서도 R-EPS의 성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고속의 직선 주로에서 무게감을 잃지 않았던 스티어링휠은 연속되는 고속의 회전 구간에 들어서면서 쏠리지 않고 부드럽게 차를 선회시키며 안정감 있게 차체를 유지해 준다.
탄탄한 하체도 인상적이다. 고속으로 질주할수록 차체는 낮게 깔렸고 회전 구간에서도 단단한 접지력으로 날카롭게 코스를 탄다. 실내 정숙도 역시 만족스럽다. 이날 시승 내내 거센 바람이 불었지만 고속 주행에서도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18인치 타이어를 신은 신형 크루즈의 복합연비는 12.8㎞/ℓ다. 이날 시승 후 실연비는 13.5㎞/ℓ가 나왔다. 성능 테스트를 위해 과속과 급제동을 거듭하며 차량을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공인 연비를 상회했다. 70~80km/h의 정속 주행을 할 경우 15km/ℓ 이상의 연비도 가능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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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크루즈의 판매 가격은 LS 1천890만원, LT 2천134만원, LT 디럭스 2천286만원, LTZ 2천437만원, LTZ 디럭스 2천478만원이다. 엔트리 트림이 지닌 성능은 차이가 있지만 가격만 놓고 단순 비교하면 경쟁차종보다 최대 400만원가량 비싸다. 디자인을 바꾸고 달리기 성능을 보강한 데다 편의사양까지 더한 대가다. 상위 트림으로 갈수록 격차는 줄어든다.
신형 크루즈는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는 보이지 않는 쪽에 공을 더 많이 들인 차다. 선택은 고객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