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두뇌' 미전실, 개혁 앞에 서다

이재용式 미래경영 가늠하는 방향키 될 듯

디지털경제입력 :2016/12/14 09:27    수정: 2016/12/16 13:53

"삼성의 관심은 항상 미래로 향해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공언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할 것 같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개혁의 시작을 시사하는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동안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이재용식(式) 개혁의 빗장이 풀렸다는 데 방점을 찍는 해석이다.

시발점은 그룹의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뜻밖(?)에 튀어나온 이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 공언은 비록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촉발됐지만 변화된 시대상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 놓인 삼성의 미래상을 함의한 발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의 두뇌' 미전실, 개혁 앞에 서다

'삼성의 두뇌' 217명이 모여 있는 미래전략실은 해체라는 개혁의 회오리 앞에 서게 됐다.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성 내부에서도 탁월한 업무능력과 기획력을 인정받는 집단으로 통한다. 잘 알려진 대로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컨트롤타워로서 그룹 전반의 중장기 경영과 대규모 투자 전략을 세워 전략 사업을 육성한다. 또 각 계열사의 사업을 조율하고 이들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지원하는 핵심 조직이다. 그룹 인사와 채용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대외 환경이 불안할 때는 선제적 구조조정도 진두지휘한다.

삼성 서초 사옥(사진=지디넷코리아)

그런 만큼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그룹 총수의 개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삼성 초고속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명예와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따금 대외 위기관리와 정보수집이라는 비공식적 업무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미래전략실이 정권의 치부로 드러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각종 의혹에 연루된 것도 이 같은 대외 리스크 관리가 몇몇 인사들에 의해 폐쇄적으로 이뤄진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적지 않다. 초고속 성장시대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한 신속한 의사결정은 글로벌 삼성의 신경영과 개혁에 큰 도움이 됐다. 선대 회장들은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을 거쳐 이어진 미래전략실을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도모하고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왔다.

미래전략실은 총수의 경영철학을 널리 전파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해왔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출퇴근 혁신 7·4제'나 '성과위주의 인센티브 도입', '협력업체와의 공존공영 체제'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다른 타 그룹들의 벤치마킹 대상이기도 하다.

삼성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이 그룹 컨트롤타워로서 큰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방대한 기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이름은 달라도 어느 기업이든 이같은 조직은 다 있다"며 "가령, 전문 경영인은 자신의 치부를 덮거나 조직의 병폐를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 임기 내 실적 방어를 위해 경쟁력이 떨어진 사양 산업을 계속 안고 간다든지, 꼭 필요한 사업에는 대응이 늦는다든지 그런 것들을 각 계열사 안에 맡겨 놓으면 잘 돌아가겠느냐"고 했다.

미래전략실이 신속한 사업 구조조정과 경영 리스크에 대응하고 과감한 직언을 해 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뜻이다.

삼성그룹은 5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해외까지 포함하면 2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너가 이같은 방대한 조직을 일일이 챙겨서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우려도 미래전략실의 존재 이유가 돼왔었다.

■상명하복식 일방 통행 보다 자율과 책임 경영 중시

이처럼 미래전략실 해체와 관련해 삼성 내부 기류는 '어떤 식으로든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한 조직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현재의 미래전략실이 담당해 온 기업 본연의 기능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공언을 한 만큼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만큼 어떤 그림이 그려질 지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왼쪽)과 래리 페이지 구글 CEO 등 삼성·구글 경영진들이 지난해 4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오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스1)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인력에 대한 재배치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에 (미래전략실을)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체되더라도 대체 역할을 할 조직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삼성은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와 관련 특검 수사를 앞두고 있어 지금 당장 미래전략실 해체라는 액션을 취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다.

이에 향후 제기되는 시나리오는 인수 합병(M&A) 등 주요 전략기능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으로 이관하고, 기업 본연의 인사나 채용, 글로벌 경영지원 등 필수 업무는 남겨 두는 방안이 제기된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전자 계열사를, 삼성생명은 금융 계열사를 관리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룹의 컨트롤타워를 계열사 조직 안에 두는 것도 어색하고 어정쩡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대가 변하고 글로벌 경쟁의 틀이 디지털 경영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각 계열사의 자율과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미래전략실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간판만 바꿔 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시대적 담론이자 향후 장기적 관점에서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단계라는 주장이다. 이는 최근 공식화된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그림과 맞물려 있다. 이 경우 지주사 전환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미래전략실이 기능 분산 등 과도기를 거쳐 없어질 지, 아니면 지주사로 기능이 모두 흡수될 것인지가 관건인 셈이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이 부회장이 앞으로 보여줄 경영체제 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은 지난 20년에 거친 3세 경영체제 수립 과정에서 숱한 잡음과 국민적 질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 역시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자신 이후의 경영체제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은 이 부회장이 20세기 오너 중심의 상명하복식 경영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선진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란 추정이다.

또한 사회와 시장이 변화하는 만큼 만약 삼성이 4세 경영체제로 간다면 더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이런 관점에서 미래 모범적인 소유와 경영 구도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서 자신보다 훌륭한 전문경영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길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회사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은 지분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사회와 고객사, 직원들로부터 경영자로 인정받아야 올라가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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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관점에서 세대 교체와 과거 유산의 발전적 승계를 이뤄야 할 이 부회장 입장에서 미래전략실 해체는 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개혁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실용주의는 실천이 따라야 빛을 발할 수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가 조직의 모순을 뜯어 고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글로벌 빅뱅 속에서 갑작스런 몰락에 대비할 수 있는 발전적 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