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들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관련, "청와대의 요청을 기업 입장에서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사실상 강제 모금에 따라 지원이 이뤄졌음을 시인했다.
다만 출연에 대가성은 없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총수들은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이같이 밝혔다.
이날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 총 9명의 총수가 출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회장은 "미르·K스포츠 재단은 여러 가지 세세한 부분을 청와대가 많이 관여했다"면서 "청와대의 (출연) 지시와 요청을 기업 입장에서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재단 출연이 강요와 뇌물에 해당하느냐는 질의에 "그 당시 청와대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구본무 회장 역시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모금이 강제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에 대해 시인한 셈이다.
최태원 회장은 "전경련 회장이 말한대로 기업별로 할당을 받아, 그 액수만큼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청와대가 구체적인 할당액까지 정해줬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정몽구 회장은 "다각적이었다"고 말을 아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기꺼이 했다"고 답했다.
이날 정몽구 회장은 위원들의 질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동행한 최창묵 변호사가 대신 답변하기도 했다.
이날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2014년 11월 27일 안가에서 정몽구 회장과 김용환 부회장, 박근헤 대통령, 안종범 청와대 전 수석이 만난 사실이 있냐"고 묻자 최 변호인은 "김용환 부회장도 그렇게 알고 있고, 회사 관계자들로부터도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다.
최 변호인은 또 김 의원이 "박 대통령이 임석해 있는 자리에서 안 전 수석이 KD 코퍼레이션의(제품을)현대·기아차가 채택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했고 박 대통령이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고 하는 데 맞느냐"고 묻자 "공소장에는 그렇게 써 있고 안 전 수석이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박 대통령이 임석한 자리에서 안 전 수석이 KD 코퍼레이션과 현대차의 얘기를 한 것이 맞냐"고 재차 묻자 최 변호인은 "자리에 배석하지 않아 구체적인 과정은 모르지만 그렇게 들었다"고 전했다. 최 변호인은 다만 "정몽구 회장은 안가 면담 말미에 회사 얘기를 잠깐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들 총수들은 재단 출연에 대해 민원 해결이나 총수 사면 등 대가성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단 출연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와 경영권 확보를 위한 대가성 의혹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은)단 한 번도 무엇을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 의원과 비슷한 다른 의원들의 질의에도 "모든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고 재차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또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사실과 관련,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두 차례 독대한 일이 있다"면서 "30~40분간의 독대에서(박 대통령이)문화 융성과 스포츠 발전을 위해 기업들도 열심히 지원해주는 게 좋은 일이니 아낌없이 지원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활동을 더 열심히 해달라면서(부친인)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와 휴대폰 사업, 국내 투자 현황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박 대통령이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과)안가에서 독대할 때는 이미 주주총회가 끝나고 합병이 된 뒤여서 합병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합병 당시 국민연금 홍완성 당시 본부장과의 만남을 가진 데 대해서는 "개인 이해 당사자로서 국민연금 실무자를 만난 것"이라며 "개인을 향한 채찍질은 받겠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제일 큰 투자자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직원들이 불철주야 열심히 뛰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냐"는 질의에는 "이번 불미스런 일로 저 자신을 비롯해서 경솔했던 일들이 많았다"며 "앞으로 어떤 강요든 압력이든 제가 철저히 좋은 회사의 모습을 만들도록 성심성의껏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신동빈 회장도 K스포츠재단에 대한 70억원 추가 지원 결정이 서울 면세점 추가 입찰과 '형제의 난' 수사와 관련 대가성을 노린 로비가 아니냐는 의혹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롯데는 올 5월 K스포츠재단의 하남 엘리트 체육 시설 건립 계획에 7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 하루 전인 6월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에 걸쳐 돌려받았다.
최태원 회장 역시 "대가를 바라고 출연한 적은 없었다"면서 "당시 결정은 그룹 내 사회공헌위원회에서 하고 이 결정에 관여하지 않아 할말이 없다"고 답했다.
SK그룹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낸 111억원의 자금을 놓고 최 회장의 사면과 관련한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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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출연 요구에 대해 "한류나 스포츠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면 경제에 도움된다고 말씀하셔서 정부가 뭔가 추진하는데 민간차원에서 협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손경식 회장은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고 모두 하니까 우리도 했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도 "대표이사가 전경련 통해 요청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기업들이 하면(지원)하라고 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