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포스트-트루스, 그리고 '순실의 시대'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11/17 14:49    수정: 2016/11/17 14:5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포스트-트루스 정치 시대’란 사설을 게재했다. 그 무렵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포스트-트루스 시대’로 규정한 건 브렉시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막말과 엉터리 주장 등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트럼프 돌풍의 충격이 더 컸다. 이 사설은 트럼프 진술의 70% 가량이 거짓에 가깝다는 폴리티팩트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사설 바로가기)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포스트-트루스 시대'란 칼럼을 게재했다.

우리말로 ‘탈진실’ 정도로 번역됨직한 ‘포스트-트루스(post-truth)’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온 옥스퍼드 사전은 ‘브렉시터(브렉시트 옹호자)’ ‘알트-라이트’(대안적 우파) 같은 단어를 제치고 ‘포스트-트루스’를 낙점했다. (☞옥스퍼드사전 바로가기)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포스트-트루스는 사실보다는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 캠페인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됐던 말이다. 특히 선동가들이 때론 진실과 상반된 내용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널리 사용됐다.

트럼프 돌풍 이후 미국 유력 매체들이 유독 이 단어에 주목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포스트-트루스’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옥스퍼드사전은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이후 사용량이 20배 늘었다”고 밝혔다. 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7월엔 위키피디아에 ‘포스트-트루스 정치’란 항목이 생기기도 했다.

진실과 허언이 뒤섞인 상실의 시대

‘포스트-트루스’는 미국 레이건 정부의 부도덕한 니카라과 반군 지원 현상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온갖 부정을 저질러 놓고도 감언이설로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로 사용됐다.

이 단어를 처음 쓴 세르비아계 미국 극작가 스티브 테쉬흐는 “자유민인 우리는, 포스트-트루스 시대에 살고 싶다는 결정을 자유의지로 했다”고 꼬집었다.

옥스퍼드사전은 ‘포스트-트루스’를 “객관적 진실이 감정과 개인의 신념에 호소하는 것에 비해 공중 의견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은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개념 정의하고 있다.

‘포스트-트루스’란 말을 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브렉시트나 트럼프 현상 못지 않기 때문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이 '포스트-트루스'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JTBC의 손석희 앵커는 지난 10월 말 작금의 우리 상황을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란 말로 표현했다. 당시 그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문도 모를 상처를 입어야 했고 그 상처가 다시금 긁혀나가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겨버린...상실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수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현상으로 촉발된 ‘포스트-트루스’보다 더 큰 상실감에 빠져 있다.

명확한 진실을 외면하는 수 많은 말의 성찬들은 우리를 또 다른 수렁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칫하면 ‘포스트-트루스’가 아니라 ‘토털-언트루스’한 상황으로 빠져버릴 우려도 있다.

■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일까

앞에서 소개한 뉴욕타임스 사설은 포퓰리스트 운동과 소셜 미디어가 결합되면서 ‘포스트-트루스 시대’를 만들어냈다고 규정했다. 개인들이 자기 성향에 맞는 미디어 콘텐츠를 집중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T 혁명이 ‘미디어 민주화’란 긍정적인 부분만 가져온 게 아니라 ‘미디어 조작’이란 또 다른 위험까지 선사한 셈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포스트-트루스’보다 더 무서운 건 ‘토털-언트루스(total-untruth)’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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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일수록 진실을 바로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디어 생산자나 수용자 모두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 혼돈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은 과연 어디인가”(손석희 앵커 브리핑 중)란 질문을 끊임 없이 던져야 할 것 같다.

그게 ‘포스트-트루스’ 시대, 아니 ‘토털-언트루스’ 시대를 살아내는 지혜일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