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들이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필독서로 받아들이며 읽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후반에 그랬다. 쿤의 주장은 간단하다. 과학이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방식이 아니라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치며 혁명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현재 통용되는 패러다임을 쿤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과학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기존의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실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늘어나면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한 정상과학의 대응은 보수적이다. 새로 발견된 사실들이 의미없는 예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거나 기존 패러다임의 틀에 끼워 억지로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은 억지에 순응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나타나면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이런 도전이 일으키는 균열이 축적되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새로운 이론이 기존의 이론을 힘으로 누르고 일어선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전환은 기존의 낡은 상식과 이론을 완전히 갈아엎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정립하기 때문에 혁명적이다. 새롭게 권좌를 차지한 패러다임은 정상과학의 위치를 점하고 자기 몸안에 새로운 혁명의 씨앗을 잉태한다.
이러한 힘겨루기는 순전히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다분히 변증법적이며 정치에 대한 함의가 적지 않다. 쿤이 설명한 것과 동일한 변증법적 과정으로 인류의 역사발전을 설명하는 이론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과학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점은 테크놀로지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베를린에서 열린 스칼라데이즈(Scala Days) 2016 행사에서 제이미 돕슨(Jamie Dobson)은 자본주의 체제 이후를 이야기하는 포스트캐피털리즘(Postcapitalism)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특정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 컨퍼런스에서 만나기 어려운 주제다. 한국사회는 기괴한 샤머니즘 국가로 퇴행하고 말아서 자본주의 이후를 말하기 민망하지만,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경청할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제이미 돕슨은 소프트웨어 인프라스트럭처와 관련된 컨설팅을 주업무로 하는 컨테이너 솔루션이라는 회사의 CEO다. 그가 강연에서 언급한 내용은 많은 부분이 폴 메이슨이라는 사람이 쓴 같은 제목의 책 포스트캐피털리즘(Postcapitalism)에서 나왔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메이슨의 통찰은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보수지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질리언 테트는 물론 진보매체인 가디언의 데이비드 런시먼도 극찬을 했다. 런시먼의 경우에는 통찰의 날카로움이라는 의미에서 메이슨을 21세기의 마르크스로 칭하기도 했다.
메이슨은 자본주의 체제가 혁명적인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뜻이다. 이 혁명의 중심에는 정보기술, 테크놀로지가 놓여있는데 핵심은 상품가격의 종말이다. 혹은 제프리 러스킨이 이야기하는 한계비용의 종말이다. 예를 들어서 태양에너지는 에너지 비용을 무료로 만들고, 3D 프린팅 기술은 제조업(manufacturing) 비용을 무료로 만들고,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비용을 무료로 만든다. 이런 비용의 소멸은 기업, 노동, 임금, 시장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제이미 돕슨은 기조연설에서 태양발전이 독일 에너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비중이 해마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의 경우는 이미 미래에 도달했다. 몇 년 전부터 태양발전에 많은 투자를 한 칠레는 올해 에너지 가격이 실제로 0에 도달했고, 남아도는 에너지를 다른 나라에 무료로 나눠줄 지경이 되었다. 태양발전 설비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마치 인터넷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처럼 수익모델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난 10월 28일에 일론 머스크가 발표한 태양광지붕(solar roof)은 이런 대세를 고려하면 소박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태양광지붕을 '예쁘게'만들어서 상품으로 판매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태양에너지의 대중화라는 바다에 합류하는 작은 강물이다.
3D 프린터가 몰고오는 시장의 변화는 더욱 파격적이다.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이 변화는 특히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사는 주택을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일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런 변화가 집을 짓는 과정에 투입되던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는건 어렵지 않다. 일자리의 증발이다. 노동없는 제조업(laborless manufacturing)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D 프린터는 로봇을 활용한 생산자동화의 새로운 단계다. 이건 미국같은 선진국의 블루칼라에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도나 중국으로 떠났던 미국의 공장은 오프쇼어(off-shore)의 반대인 리쇼어링(reshoring)을 통해 속속 미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 덕분에 성장하던 나라의 노동자조차 빠른 속도로 일감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국으로 돌아온 공장은 자기 나라의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다. 3D 프린터나 로봇을 활용한 제조업의 혁신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는 저성장 경제, 일자리 없는 성장, 빈부격차의 심화, 기업이익의 감소, 우리나라에서 특히 체감되는 비정규직과 알바의 급증 그리고 청년실업은 이런 변화의 징후다.
일자리를 잃은 블루칼라 노동자를 재교육해서 IT 현장에 투입하는 노력도 있지만,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소프트웨어 제작을 중심으로 하는 IT 산업 역시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나는 '저물어가는 프로그래밍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키보드를 두드려서 화면에 코드를 적어내려가는 형태의 노동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내일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코딩의 자동화라는 흐름은 다양한 형태로 감지되고 있다.
제이미 돕슨은 기조연설에서 하쉬코프(Harshicorp)의 테라폼(Teraform), 미소스(Mesos), 일라스틱서치(Elasticsearch) 등을 이용해서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했을 때, 사람의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클라우드 환경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경험하면서 프로그래머 시대의 종말을 예감했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오래 견딜 수 있는 직업은 아마 이발사와 데이터과학자 정도일 거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관련기사
- 엿 먹어라 스타트업 세상아2016.10.31
- 리액티브 개발 패러다임에 담긴 메시지2016.10.31
- 개발자의 컨퍼런스 참여는 회사의 축복2016.10.31
- 이름없는 개발자를 위하여2016.10.31
이런 변화가 일으키는 균열이 축적되어 마침내 한계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 노동과 임금의 교환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로 자본주의 이후의 시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네덜란드 같은 유럽의 몇 나라는 전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는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정책을 시험하고 있다. 임금만으로는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시대가 왔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정도로 입에 거품을 무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변화가 사업의 기회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실존적인 고통일 것이다. 우리가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일본이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우리가 봉건사회에 머물렀을 때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 누군가 포스트자본주의로 진입하는 동안 우리가 별다른 생각없이 자본주의 체제에 머무르면, 비슷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나라 전체가 힘을 모아 이미 다가온 미래에 대비해도 어찌될지 모르는 엄중한 상황이다. 하물며 샤머니즘이라니. 꿈이었으면 좋겠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