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J 인수합병의 비본질적인 3개 변수

[이균성 칼럼]미래수석·분식회계·통합방송법

방송/통신입력 :2016/06/09 10:48    수정: 2016/06/09 13:43

스티브 잡스가 뛰어난 경영자였던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복잡한 것을 명쾌하게 정리해내는 능력이다. 애플 제품이 명성을 얻는 것은 소비자 직관에 철저하게 소구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술과 그 기술들의 다양한 쓰임새를 연구하되 최선의 조합을 통해 단순화하면서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본질과 비본질을 가려내는 선구안이 중요하다.

위기에 빠진 기업한테 부족한 것이 그 점이다.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그로 인해 세상은 급변하는데 과거의 경쟁력(비본질)에 함몰돼 미래의 방향(본질)을 덜 중시하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덜 중시한다기보다는 미래 세력이 과거 세력에 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겠다. 기업 내에 존재하는 기득권이 혁신을 막는 셈이다. 혁신은 결국 미래의 방향성으로서의 본질을 찾아 집중하는 거다.

나라 정책도 기업 경영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 부채를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까지 부동산을 띄우려는 정부 정책이 본질을 잃고 비본질에 매몰된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다를 바 없다. 그보다 더 나쁜 건 이것저것 눈치만 보다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면서 과거는 약해지고 미래는 커지지 않는 최악이 된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 합병에 악재로 최근 부각됐다는 세 변수와 관련해 우려가 크다. 이들 변수 모두 합병 심사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본질적인 요소라기보다는 비본질적인 것이다. 합병 심사의 본질은 경쟁제한성(주로 공정위 역할), 방송의 공공성(주로 방통위 역할), 이 둘을 고려한 종합평가(주로 미래부 역할) 등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법과 현장이고 판단의 주체는 해당 공무원이다.

CJ헬로비전이 26일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 계약을 안건으로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세 변수는 심사와 관련해 지엽말단적인 것이다. 어떤 건 심사에 영향을 줄 경우 되레 후폭풍이 우려되기 때문에 자제돼야 할 요소다. 평소 합병 반대 소신을 가진 분이 청와대 미래수석으로 임명된 게 여기에 해당된다. M&A 심사는 법적 기준에 따라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해 담당 공무 조직이 소신껏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외부의 부당한 힘과 입김이 작용하는 걸 막아야한다.

항간에 공정위가 심사를 다 끝내놓고도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는 풍문이 팽배하고 관련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청와대와 새로 임명된 미래수석은 알아야한다. 이참에 이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공무원의 소신 있는 판단을 주문해야 한다. 그게 실질적인 규제 완화다. 법을 완화하는 것 못지않게 권력자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게 더 문제다.

법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줘야 정책 예측 가능성이 커지고 그래야 비로소 기업은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사실 청와대가 지금 일개 기업의 M&A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만큼 한가할 때인가. 미래수석만 해도 얼마나 할 일이 많겠는가.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고 그에 맞춰 국가 경제의 기본 틀을 바꿀 걸 고민해야 할 때지 미시적인 기업 간 이해다툼에 말려들 상황이 아니다.

CJ헬로비전이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도 합병 심사의 곁다리에 불과하다. 이게 경쟁제한성이나 방송의 공공성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한편에서는 KT와 LGU+의 직원이 CJ 주주라며 합병 과정에서 CJ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고 합병 주총 무효 소송을 냈는데 이 팩트는 되레 이들의 주장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니 위법한 게 있다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면 그만인 일이다.

통합방송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간 것도 변수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 합병 심사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이 정리해준 바 있다. 최양희 장관은 지난달 26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통합방송법 통과 이후 심사 주장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며 “향후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해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람의 태도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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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장관 논리에 대체 무슨 하자가 있나. 언제 통과될지 모를 법을 기다리며 해당 기업에는 촌각을 다투는 문제를 외면하는 게 산업 관련 행정가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지금 형국은 본질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어쩌면 더 이상 토론할 그 무엇이 없고, 본질과 먼 곁다리가 변수인 양 불거진 꼴이다. 기업이해에 휘둘린 청와대나 규제기관 그리고 전문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 언론도 자유롭지않다.

찬반 입장을 떠나 지금의 논란 양상은 국민한테 호되게 두드려 맞은 3류 정치인들의 행동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