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삼성 운명 가른 美 대법 독특한 원칙

허가제…"개별분쟁 조정은 2심으로 충분"

홈&모바일입력 :2016/05/10 14:07    수정: 2016/05/10 16:5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 대법원에서 거절당한 구글이 힘겨운 마지막 승부를 펼칩니다. 9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법원에서 시작된 오라클과의 자바 저작권 소송 얘기입니다.

6년째 계속된 자바 전쟁의 최종 승부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구글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자바 API 저작권 침해했다는 판결은 이미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이번 소송에선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면서 자바API 패키지 37개를 사용한 것이 저작권법상의 '공정이용(fair use)' 개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입니다. 미국 저작권법 107조가 구글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생명줄인 셈입니다. (물론 공정 이용이란 판결을 받게 되면 구글은 배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작권 침해 혐의도 벗을 수 있구요. 이 때는 학술 논문 같은 곳에서 인용한 것과 같은 차원의 활용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 대통령 출신 윌리엄 태프트 대법원장 때 명문화

재판 초반만 해도 구글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지난 2012년 1심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기세를 올렸지요. 그런데 항소심에서 역전패하면서 구글의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승부수였던 대법원 상고 신청마저 지난 해초에 기각된 때문입니다.

이번 소송이 다시 1심 재판부에서 열리는 건 그 때문입니다. 대법원이 구글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실상 분위기는 오라클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항소법원이 1심 판결을 기각하면서 “공정 이용에 해당되는지에 대해선 다시 논의해보라”고 한 부분만 공방 대상입니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궁금증이 뒤따릅니다. 1심과 2심의 의견이 확연하게 엇갈린 사안인데도 대법원은 왜 심리조차 하지 않기로 했을까요? 최근 대법원이 삼성과 애플 간의 1차 특허 소송에 대한 상고를 받아준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행보이기 때문입니다.

상고허가제를 처음 도입하던 1925년 당시의 미국 대법원 법관들. 앞줄 가운데가 윌리엄 태프트 대법원장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미국 대법원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법원장이 재직하던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윌리엄 태프트란 인물이 생소한가요? 이 분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과 대법원장 자리를 다 거쳤던 분입니다.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 인물이지요. 혹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란 걸 아시나요?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는 대신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해주기로 한 협약입니다. 그 협약의 미국 쪽 당사자가 바로 윌리엄 태프트였습니다. 물론 저 협약을 맺을 당시엔 태프트는 루즈벨트 대통령 특사였습니다.

태프트는 대법원장 재직 당시인 1925년 ‘법원조직법(Judiciary Act of 1925)’란 걸 만드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이 법에서 새롭게 도입된 원칙 중 하나가 바로 대법원의 상고허가제입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법원은 상고 신청을 한 모든 사건에 대한 심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대법원은 ‘심리할 가치가 있는 사건’만 맡아서 상고심을 열게 됩니다.

■ 상고 허가 받으려면 대법관 4명 찬성 받아야

태프트 대법원장은 상고허가제 도입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린다 그린하우스가 쓴 ‘The U. S Supreme Court: A Very Short Introduction’에서 그대로 옮겨봅니다.

“대법원은 특정 소송 당사자의 잘못을 고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할 땐 원칙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당시 태프트 대법원장은 상고심 대상이 될 사건 유형도 구체적으로 명기했습니다. 이를테면 연방헌법과 관련된 사건, 연방과 각 주 사이의 분쟁, 개인의 헌법상 권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연방헌법 해석과 관련된 이슈 같은 것들이 상고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명기했습니다.

미국 대법원의 대법관 회의실. (사진=미국 대법원)

태프트 대법원장은 또 “개인 간 분쟁에서 정의를 세우는 데는 두 번의 재판으로 충분하다. 세번째 재판, 즉 상고심은 좀 더 높은 차원의 문제가 관련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명언도 남겼습니다.

상고 허가를 받으려면 대법관 9명 중 네 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이를 미국에선 ‘룰 오브 포(Rule of 4)’라고 부릅니다. 과반수는 아닌 셈입니다.

여기에도 흥미로운 숫자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4명의 대법관이 상고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때 대법관들은 기존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선 한 명이 더 찬성해야 합니다. 재판에선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린하우스의 책에 따르면 “가끔씩은 4명의 대법관들이 또 다른 한 명을 설득할 자신이 없을 경우엔 차라리 상고신청을 기각하는 쪽으로 결정하기도 한다”고 돼 있습니다.

생각과 다른 판례를 만드느니 차라리 상고심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상고 신청은 만장일치로 기각된다고 합니다. 미국 대법원이 접수된 상고 신청을 수용하는 비율은 1%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삼성-애플은 디자인 특허 배상 원칙 재정립 필요

이 기준을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과 구글-오라클 간 자바 저작권 소송에 한번 적용해 볼까요?

삼성과 애플 간의 디자인 특허 소송은 단순히 두 회사간 분쟁을 넘어선 이슈를 담고 있습니다. 125년 동안 방치해뒀던 디자인 특허 배상 범위에 대한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익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미국 특허법 289조가 첨단 IT시대엔 맞지 않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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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구글과 오라클 간 자바 소송은 조금 다릅니다. 이건 자바 API도 저작권의 대상이냐는 법 적용과 관련된 공방입니다. 두 회사에겐 한 치 양보 없는 다툼거리이지만 대법원이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려줄 사안은 아니란 겁니다.

구글이 상고신청을 하면서 ‘자바 소송’이 두 회사 뿐 아니라 공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게 패착이라면 패착이겠지요. 구글에겐 제 아무리 심각한 사안이어도 공적 가치가 없다면 대법원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