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왜 애플 '실용특허 침해' 상고 안했을까

[삼성, 애플 소송 대법원 상고신청서 분석-하]

홈&모바일입력 :2015/12/18 10:36    수정: 2015/12/18 13:2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애플과 특허 소송 중인 삼성이 디자인 특허 부분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 신청을 했다. 삼성이 이번에 대법원에 접수한 문건은 총 215쪽 분량이다. 이 중 상고 신청 관련 부분은 총 39쪽이다. 지디넷은 앞으로 3회에 걸쳐 삼성의 상고 신청 문건을 분석한다. (편집자)

삼성이 대법원 상고신청서에서 제기한 논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디자인 특허는 ‘장식적 부분’만 보호하도록 돼 있다. 기능이나 추상적 개념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 지침에 이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2. 하급법원은 삼성의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디자인 특허 침해 배상금을 산정했다. 일부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을 때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배상하는 것이 합당한가?

3. 따라서 대법원이 이런 상황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

철저하게 디자인 특허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2012년 1심 배심원들은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 특허 뿐 아니라 실용특허와 트레이드 드레스를 침해한 것으로 평결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

■ 핀치투줌-탭투 줌 등, 연이어 무효 판결

1심에서 삼성이 부과받은 배상금은 9억3천만 달러였다. 구체적으로는 디자인 특허권 세 개 침해로 3억9천900만 달러,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로 3억8천200만 달러 배상금을 부과받았다. 나머지 1억4천900만 달러는 핀치 투 줌을 비롯한 실용 특허 침해와 관련된 것이다.

이 중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는 항소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이 나왔다. 덕분에 삼성 배상금은 5억4천8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건은 삼성 입장에선 상고 대상이 아니다. 이 사안은 애플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1심이 열렸던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으로 파기환송됐다.

문제는 실용 특허 침해 부분이다. 이번 재판에서 삼성은 애플의 바운스 백(특허번호 381), 탭 투 줌(특허번호 163), 그리고 핀치 투 줌(특허번호 915)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평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디자인 특허나 트레이드 드레스에 비해 배상금 규모가 적진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다.

삼성은 이번 상고 때 애플 실용특허 부분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사진은 애플 핀치 투 줌 특허 개념도.

게다가 애플의 특허권들은 연이어 무효 판결을 받았다. 특히 바운스 백 특허는 삼성이 지난 2013년 말 별도 소송을 요구했을 정도로 지위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삼성은 대법원에 신청서를 접수하면서 실용 특허 관련 부분은 상고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삼성 문건에도 그 부분에 대해선 “상고 대상이 아니다”고 짤막하게만 언급돼 있을 뿐이다. 삼성 입장에선 상고 대상도 아닌 부분에 대해 굳이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플 탭 투 줌 특허 개념도. (사진=미국 특허청)

■ 디자인 특허 집중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

그렇다면 삼성은 왜 실용 특허 부분에 대해선 상고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삼성이 밝히지 않는 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추론을 해 볼 순 있다. 소송 전략 측면에서 이것 저것 다 건드리는 것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한번 따져보자. 미국 대법원은 상고 허가 비율이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이 1년에 상고 신청을 받아들이는 건수는 75건 내외다. 반면 한해에 접수되는 상고신청은 1만 건에 이른다.

최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은 규모 면에선 이번 소송에 필적했던 오라클과 구글 간의 자바 저작권 공방도 상고를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웬만한 소송은 항소심이 사실상 최종심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 대법원 법정에 서기 위해선 둘 중 하나는 증명해야 한다. 하급법원의 법률 적용에 중대한 하자가 있거나, 새로운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삼성 입장에선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춰서 대법원의 시선을 끌 필요가 있다.

삼성과 애플간 1차 특허 소송 법정 스케치. (사진=씨넷)

디자인 특허 침해 부분은 배상금 규모나 소송 진행 과정 측면에서 대법원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이다. 일단 122년 동안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 관련 부분을 다룬 적이 없다.

게다가 디자인 특허 보호범위와 배상금 규모 등을규정한 특허법 289조가 21세기 최신 정보통신 시대와는 조금 상충되는 측면도 있다. 대법원이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핀치 투 줌을 비롯한 실용 특허 쪽은 사안이 조금 다르다. 패소한 삼성이나 특허권을 주장하는 애플에겐 중요한 사안이지만 대법원 입장에선 ‘그렇고 그런 소송’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 '0.7% 확률' 뚫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 필요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2, 3년 뒤에 무효 판결받을 가능성이 많은 특허 침해했다고 배상하라는 게 말이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률적인 측면에선 판단 기준이 다르다. 현재 유효인 특허를 나중에 ‘무효 처리될 개연성’만 갖고 무시할 수도 없다.

만약 삼성이 “무효 공방 중인 실용 특허로 배상 판결 받는 게 억울하다”고 주장할 경우 대법원은 어떻게 반응할까? 경우에 따라선 “애플 특허가 최종 무효 판결이 난 뒤 반환 소송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다.

두 회사간의 단순한 의견 차이만으론 대법원의 관심을 끌어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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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상고신청서 곳곳에서 “하급법원은 애플 특허의 장식적 디자인을 보호받지 못하는 개념적, 기능적 측면과 구분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런 부분들 때문에 삼성은 실용 특허 부분을 상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훨씬 더 논점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