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號 2년…실용주의 ‘뉴 삼성’ 연착륙

이건희 회장 와병 2년째…사업구조 재편

디지털경제입력 :2016/05/09 18:15    수정: 2016/05/10 13:18

정현정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상에 누운 지 만 2년이 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10일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 회장의 부재로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리더를 맡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년 동안 ‘실용주의’를 모토로 과감한 계열사 인수합병(M&A)과 매각, 지배구조 재편, 구조조정 등을 숨가쁘게 진행하며 삼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꿨다. 회장 승진 등 공식적인 대관식은 없었지만 실질적인 ‘이재용 체제’가 연착륙 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재용호 삼성은 외형 확장 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주력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내실 키우기에 방점을 찍었다.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고 이를 타개할 성장동력이 줄어들면서 각 기업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는 가운데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스트 스마트폰 찾기’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지난 분기 스마트폰과 반도체, 가전 사업에서 고루 선전하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해 시장 우려를 잠재웠다.

지난해 6월 메르스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지디넷코리아)

■쪼개고 합치고 팔고…연이은 ‘빅딜’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現 제일모직)은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014년 6월 상장 추진을 공식화했다. 지난해 9월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면서 사실상의 지주회사가 됐다. 삼성SDS도 그 해 11월 국내 증시에 상장했다.

같은 달 삼성은 한화그룹에 화학 및 방산계열사 4곳을 매각하는 '빅딜'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나머지 화학 계열사 3곳을 롯데 그룹에 넘겼다. 광고계열사 제일기획은 현재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비주력 계열사들을 정리하면서 잘할 수 있는 사업에만 집중한다는 복안이다. 전열을 재정비한 이후에는 전자, 금융, 바이오를 3대 축으로 미래 신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0년 이건희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의 하나로 꼽은 ‘바이오’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1공장과 제2공장에 이어 지난해 제3공장 건립을 시작했다. 2018년 제3공장이 본격 가동을 시작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능력 기준 세계 1위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전문기업(CMO)이 된다. 연내 코스피 상장도 추진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자동차용 부품 사업도 점차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 삼성SDI는 자동차 배터리 위주로 사업을 재편해 BMW와 크라이슬러 등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연말 정기 조직개편을 통해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며 전장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향후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계열사들과 시너지도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국내외 금융권 수장들과 잇달아 회동을 가지며 그룹의 또 다른 축인 금융부문 리더십도 강화하고 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 등 핀테크 사업 분야에서도 금융사들과 시너지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묵은 난제 해결 리더십도 '주목'

지난 1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문제 관련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 2014년 5월 권오현 부회장이 전격 사과에 나선지 20개월 만이다. 지난해 9월부터는 주요 협상 의제 중 하나였던 피해 보상도 원활히 진행했다.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황 씨의 부친인 황상기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를 신청하면서 본격화된 이후 9년을 끌어왔던 문제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자본잠식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 회생 과정에서 사재를 출연하며 ‘책임경영’에 나섰다. 유상증자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미청약 발생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지난해 6월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수백명의 취재진 앞에 나서 육성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투병 이후 줄곧 관심을 모았던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아버지로부터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으면서 ‘상징적 승계’를 이뤘다. 또 지난해 9월 탄생한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그룹 지배를 위한 기반을 갖췄다.

■의전 없애고 조직문화 스타트업처럼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실용주의 모토에 걸맞는 조직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불필요한 의전이나 허례허식도 최소화됐다. 이 부회장은 민항기를 이용해 수행원 없이 홀로 캐리어를 끌고 해외출장길에 오르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지난해에는 회사 소유의 전용기 3대와 헬기 6대를 모두 대한항공에 매각했다. 매년 초 신라호텔에서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열렸던 신년하례식은 이 부회장이 직접 각 계열사들을 돌며 새해 경영계획을 보고 받는 것으로 대체했다.

지난 3월에는 수원디지털시티에서 ‘스타트업 삼성 컬쳐혁신 선포식’을 통해 아예 조직문화를 확 바꾸기로 했다. 임직원들의 의식과 일하는 문화를 스타트업처럼 바꿔 지속적인 혁신을 도모하자는 의미에서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비효율적인 회의와 보고문화를 개선해 업무 생산성도 제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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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력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가상현실(VR), 헬스케어, 사물인터넷(IoT), 소프트웨어(SW)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인수한 '스마트싱스'와 '루프페이'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투자와 별개로 사내벤처 창업도 장려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를 통해 스핀오프(분사)한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리적인 변화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8년 동안의 서초동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구 우면동 서울 R&D 캠퍼스와 수원사업장으로 직원들이 이동했다. 삼성전자 본사는 경기도 수원이지만 2008년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가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서초사옥으로 옮긴 뒤부터 실질적인 본사 역할을 해왔다. 삼성전자가 떠난 서초사옥에는 하반기 중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들이 입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