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열풍에 역행하는 한국정부의 악수

[데스크칼럼]전기차 생태계 정책 지원 시급

데스크 칼럼입력 :2016/04/08 10:16    수정: 2016/04/12 06:56

정기수 기자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 열풍이 뜨겁다. 보급형 세단 '모델3'를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예약 주문이 32만대를 넘어섰다. 자고 일어나면 하룻밤 새 예약 구매자는 수만명 씩 불어난다. 최종 사전계약 대수는 약 50만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 세계 49개국 전시장에는 아이폰 구매 현장을 방불케 하는 사전계약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전시장이 없는 국내에서도 이찬진 전 드림위즈 대표 등 얼리어답터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이 온라인 예약에 동참하고 있다.

모델3의 제로백(정지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은 6초로 여느 스포츠카 못지 않다. 1회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는 346km에 달한다. 기존 테슬라가 선보였던 고급 전기차 가격의 절반 수준인 4천만원대 가격도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 2천만원대라는 실구매 가격은 더 매력적이다.

테슬라 전기차 '모델3'(사진=테슬라)

모델3의 생산 시점은 2017년 말로 예정돼 있어 국내에는 이르면 2018년께나 수입될 전망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2~3년 뒤에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미래'를 사는 데 주저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실체 없이도 기존과는 전혀 다른 흥미롭고 재미있는 자동차를 만든다는 기대감을 팔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업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광풍(狂風)을 만든 테슬라의 묘수(妙手)다.

전 세계 시장에서 테슬라 바람이 거세지고 있지만, 국내 전기차 시장의 모습은 살풍경(殺風景) 하다. 해외와 달리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는 국내 전기차 시장을 육성해야 하는 정부 정책은 오히려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환경부는 지금까지 무료였던 전기차 급속 충전을 오는 11일부터 유료화한다. 그동안은 30분 내에 직접 충전하는 방식인 급속충전소 이용에 대해서는 요금을 부과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1kWh당 313.1원을 내야 한다. 정부는 이 가격이 기존 내연기관차량과 비교할 때 가솔린차 대비 44%, 디젤차 대비 62% 수준으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 상황을 감안하면 전기차 충전요금은 사실상 디젤 차량과 크게 체감할 만한 차이가 없다. 여기에 적은 충전소를 찾아다니고 차량 충전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전기차에 대한 구매 매력도는 현저히 희석된다. 공짜로 쓰던 요금을 돈을 내고 사용하라고 소비자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전기차 보급이 일반화된 미국보다도 훨씬 비싸게 책정된 가격이다. 미국의 전기차 충전 요금은 1kWh당 평균 12센트(약 138원) 정도다. 여기에 테슬라, 닛산 등이 자체 충전시설과 지원금을 통해 무료 충전을 지원한다.

전기차 급속충전소 이용 요금을 유료화한 이유가 민간업자들의 충전소 인프라 사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환경부의 설명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아닐 수 없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확대는 먼저 차량에 대한 고객 수요가 뒷받침돼야 한다.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차량을 위해 충전소를 세운다는 건 앞뒤가 뒤바뀐 얘기다. LPG 자동차도 과거 고유가 바람을 타고 차량 판매가 늘기 시작한 이후부터 충전소가 많아졌다는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의 푸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미국의 전기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기준 6만5천848대다. 전국에 1만2천880개의 충전소가 있고 충전기는 3만1천792개다. 전기차 두 대가 한 개의 충전기를 같이 사용하는 셈이다. 판매량이 많은 만큼, 미국은 충전소의 90%를 민간이 운영한다.

국내 전기차 급속 충전소는 현재 337개에 불과하다. 제주가 49곳으로 제일 많고 서울(42곳), 경기(57곳) 등의 순이다. 작년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는 5천767대다. 평균 17대의 전기차가 한 개의 충전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설치 비용이 대당 수억원에 달하는 충전기 시장에 민간 사업자가 진입할 요인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 보다 많은 충전소가 필요해지면 구태여 유도하지 않아도 사업성을 보고 뛰어드는 민간 사업자의 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전기차 판매가 활발히 이뤄질 경우 완성차업체가 급속충전 시설을 설치에 적극 나설 수도 있다. 실제 테슬라는 자사 급속충전 스테이션 '슈퍼차저'를 통해 테슬라 고객에게 무료로 전기를 제공한다. 테슬라는 지난해 기준 미국 내 409곳에 2천247개 급속 충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BMW코리아와 현대차가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팔리지 않는 차량을 위해 기업에게 대규모 투자에 나서라는 우격다짐도 한계가 있다.

차종별로 제각각인 충전방식의 통일도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차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DC차데모, AC3상, DC콤보 등 3종의 상이한 충전방식만 통일해도 인프라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재 주어지고 있는 보조금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내연기관차 대비 비용을 비슷하게 맞추려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그나마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원 규모를 8천대로 늘렸지만 대당 지원금은 지난해 1천500만원에서 오히려 1천200만원으로 줄였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 밀어닥친 역풍은 벌써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올 1분기(1~3월) 국내 시장에서 팔린 국산 전기차는 120대다. 전년동기(220대) 대비 거의 반토막이 났다.

국내에서 그나마 전기차 인프라가 갖춰진 제주도의 공모 실적도 올해 목표에 턱없이 못 미친다. 제주도는 올해 국내 전기차 보급물량의 절반인 4천대 보급을 목표로 공모를 진행했지만, 2차 공모 마감 결과 총 1천527대에 그쳤다. 나머지 다른 지자체들의 경우도 공모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모델3가 현재 국내 판매되고 있는 전기차 모델보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갖춰 대기수요가 발생한 탓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충전요금 유료화와 보조금 감소 등 소비자들에게 구매 욕구를 저하시키는 정부 정책이 악수(惡手)로 작용한듯 싶다.

올해 전기차 생산에 본격 시동을 걸고, 판매전략을 고심 중인 완성차업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에서는 기아차(쏘울·레이 EV) 한국GM(스파크 EV) 르노삼성(SM3 Z.E) BMW(i3) 닛산(리프) 등 국산차 3곳과 수입차 2곳이 총 6종의 전기차를 판매한다.

새로운 모델들도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EV를 오는 6월부터 판매한다. 한국GM은 주행거리 확장 전기차 볼트 2세대를 올 2분기께 출시할 예정이다. 기아차도 내년께 하이브리드 SUV 니로의 전기차 모델을 선보인다. 쌍용차도 티볼리 전기차 모델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산업 현장을 역행하는 정책과 말뿐인 독려는 업계와 소비자들을 설득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제 곧 세계를 뒤흔들 전기차 혁명에서 한국만 도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들이 당장 구매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게 없는 '현실'의 전기차보다는 1천달러의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미래'의 전기차를 예약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조만간 충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국내 도로를 현재의 전기차보다 성능이 좋은 모델로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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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국내 전기차 생태계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작금의 테슬라 열풍도 미래의 한국에서는 그저 '찻잔 속 태풍'으로 추억할 수밖에 없다.

겉모습이 다는 아니겠지만 국내 전기차 보급 정책을 총괄해야 하는 환경부 수장(首長)이 전임자가 기껏 바꿔놓은 친환경 관용차를 배기량이 두 배 이상 큰 3천800cc 가솔린 대형세단으로 바꿔 타고 다니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