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전기차’다.
전기차는 지난해 말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난 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평균 주행가능거리가 200km 내외라는 게 단점이지만, 정숙성과 가속성능이 뛰어나다. 또 매연가스 배출이 없는 순수 친환경차라는 점도 가장 큰 매력이다.
올해 전기차 업계는 여느 때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공개된 현대차 '아이오닉'에 이어 테슬라 '모델 3', GM 쉐볼레 '볼트(Bolt) EV' 등 주행 거리를 늘린 전기차가 잇달아 출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가장 활발하게 전기차 산업을 펼치고 있는 곳은 제주도다. 제주도가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카본 프리 섬(탄소 없는 섬)’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충전인프라 확대 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의 제주 진출 선언까지 이끌어냈다.
서울에서도 최근 전기차 시장 육성을 위한 여러 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다. 구로구 주변 일대에 전기차 카셰어링을 활성화 하는 G밸리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전기차가 얼마나 우리 생활에 다가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LG CNS 자회사 에버온에서 운영하는 씨티카 카셰어링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렌트비 4만7천400원을 지불한 후 SM3 Z.E. 전기차를 10시간(25일 오전 8시~오후 6시)동안 운행하며 수도권 일대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장단점 등을 살펴봤다.
10시간 동안 운행한 거리는 총 110km다. 역삼동 도곡로21길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에서 시작해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경기도 일산 고양종합운동장 주차장, 경기도 성남시청 주차장, 서울 이마트 양재점 등을 돈 거리다. 이 과정에서 씨티카 측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먼지만 쌓인 연세대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기
SM3 Z.E. 이용하기 전 지인으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지난해 10월 준공된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가 먼지로 가득쌓인 채 방치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해당 주차장을 찾았다. 제보 그대로 해당 전기차 충전기에는 먼지만 가득 쌓였다. 해당 충전기 사용 방법에 대한 어떠한 안내문도 보이지 않았다.
연세대학교는 백양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촌캠퍼스 내 백양로 주변을 새단장했다. 캠퍼스 위로는 자동차 없이 인도로만 꾸며졌고, 차량의 통행은 지하주차장으로 지나가도록 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전기차 충전기도 동시에 설치했다.
그렇다면 이 전기차 충전기는 5개월 넘도록 왜 먼지만 쌓여있는 것일까?
연세대 시설팀 관계자는 “해당 전기차 충전기는 환경영향평가 대응 차원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새롭게 짓는 건물이나 시설물 등에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설치한 후 연세대학교 교직원과 재학생들의 전기차 충전에 대한 수요를 전혀 찾아볼 수 없어 해당 전기차 충전기의 작동을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에 든 예산과 향후 활용 계획에 대해선 “알려 줄 수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전기차 충전에 대한 수요 예측 없이 단순한 환경영향 평가를 받기 위해 전기차 충전기 마련에 예산을 쓴 연세대학교의 결정이 아쉽다.
■‘전기차 충전소’ 이정표 없는 공영주차장
이날 주행한 씨티카의 SM3 Z.E. 내비게이션은 주변 전기차 충전소 위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2km부터 10km 이내에 위치한 전기차 충전소 위치도 알수가 없었다. 환경부 전기차 충전인프라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지하주차장을 출발해 고양종합운동장 주차장에 위치한 전기차 충전소를 찾았다.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출발 당시 SM3 Z.E. 계기반 주행가능거리는 104km로 표기됐다. 고양종합운동장으로 이동하자 주행가능거리는 86km대로 떨어졌다. 에어컨 사용과 급가속을 강화한 탓이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을 맞아 약 1시간 가량 충전을 하기로 했다.
고양종합운동장에 도착하자, 난관에 봉착했다. 환경부 충전인프라 시스템에 따르면 충전소는 주차장 내부에 자리잡았다고 표기됐지만, 막상 주차장에 들어오니 충전소 위치를 찾기 힘들었다. 주차장 규모가 워낙 넓었기 때문이다.
10여분쯤 주차장 내부를 뺑뺑 돈 후에야 겨우 해당 충전소를 찾아냈다.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제 마음 놓고 충전을 진행한 후 점심식사를 즐기면 된다.
충전소 위치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은 진짜 이유가 있다. 바로 전기차 충전소라는 이정표 자체가 주차장 내부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고양종합운동장 주차장 입구에는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크게 부착됐지만, 전기차 충전소가 위치해 있음을 알리는 문구는 없었다.
전기차 운전자를 위한 지자체의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서행 구간에 탁월한 SM3 Z.E.
점심 식사 후, SM3 Z.E.의 주행 가능거리를 살펴보니 126km로 표기됐다. 이 정도면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경기도 수원 및 성남 방향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운전 습관에 따라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충전을 마친 후 곧바로 다음 코스인 성남시청 주차장 전기차 급속 충전소로 향했다. 거리는 55km다.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 중 가장 길다. 최대한 주행가능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경제운전이 필요했다.
SM3 Z.E.에 탑재된 T맵 내비게이션은 차량을 강변북로, 청담대로, 동부간선도로 쪽으로 안내했다. 평균 90km 이내의 고속주행과 3~40km 내외의 서행 구간이 섞인 곳이다.
차량이 강변북로로 다다르자 주행가능거리는 106km로 줄었다.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강변북로 진입로까지 신호대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전기차 특유의 회생제동능력을 믿어야 할 때다.
강변북로 구간에서는 브레이크를 최대한 밟지 않고 가속페달 힘 조절에만 신경썼다. 100km 이상 속력을 낼 수 없는 ECO모드도 동시에 작동시켰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잘 통했다. 강변북로 10km 구간에서는 차량의 주행가능거리 표기가 104~106km를 맴돌았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빼자 동시에 배터리 충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SM3 Z.E.의 에너지 회생 기능의 진면목을 느껴본 순간이었다.
성남시청 전기차 급속충전소에 도착한 후, 남은 주행거리를 살펴봤다. 차량 계기반에는 주행가능거리가 98km로 표기됐다. 거리상으로 약 27km 정도 경제운전 했다는 증거다. 그래도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곳에서 충전을 진행했다.
■전기차 위한 배려 부족한 이마트 양재점
성남시청에서 약 30분간의 급속 충전을 마친 후 곧바로 이마트 양재점으로 향했다. 상점 시설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마트 양재점 지하주차장에는 총 3대의 전기차 충전기가 마련됐다. 하나는 환경부에서 마련한 충전기이며, 나머지 2개는 이마트와 BMW 코리아 등이 서로 협업해서 구축한 자체 충전기다.
이마트에 마련된 환경부 충전기 길이는 고양종합운동장, 성남시청 충전기 길이보다 짧았다. 특히 충전기는 왼쪽 기둥쪽으로 자리잡았고, SM3 Z.E. 충전구는 오른쪽 측면에 자리잡았다. 전진주차보다 후진 주차가 필요했다.
후진 주차하기 위해 차를 여러차례 움직였지만 쉽지 않았다. 바로 앞에 스타렉스 상용차가 충전소 반대방향 벽면쪽으로 평행주차됐기 때문이다. 특히 충전기 주변으로 건물을 지탱해야 하는 기둥도 충전소 주변에 마련돼 있었다. 전기차를 위한 배려가 부족해보였다. 어쩔 수 없이 예약 시간을 지키기 위해 역삼동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환경부는 전기차 보급 확산을 위해 보조금 대상 전기차를 지난해 3천대에서 올해 8천대로 늘리기로 했다. 완속충전기 설치비등도 지원해 부족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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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카 소유 SM3 Z.E.를 주행해본 결과, 주행성능과 정숙성에서는 크게 만족했지만 충전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전기차 운전자를 위한 통합형 전기충전 인프라 시스템이 차량 내비게이션에 구축됐다면, 보다 편리한 전기차 충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특히 전기차를 위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보급 대수나 보조금에만 집중하는 것 보단 보다 실질적인 전기차 관련 인프라 지원이 필요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