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드라마…운명의 5국 결과는?

알파고 버그와 이세돌 감정상태가 관건

인터넷입력 :2016/03/14 16:58    수정: 2016/03/14 17:23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우선 승부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 5국의 결과를 예단하기가 힘들어졌다. 회가 거듭될수록 관심을 더 끌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대결은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스포츠도 제공할 수 없었던 엄청난 화두를 인류에게 던졌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이상인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각본 없는 드라마’

대국이 시작되기 전 대체적인 의견은 ‘이세돌 우세’였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직 인간 최고의 프로기사를 넘어설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고 승패에 있어 인간의 직관도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이세돌 9단,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데이비드 실버 박사

판후이 2단과의 대국을 분석해본 결과 알파고의 수준이 이세돌 9단보다 낮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9단이 첫 판을 지고 두 번 째 판까지 불계패하자 알파고는 바둑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분석이 많았다. 예상대로 3국도 완패였다.

그러자 불공정 시비가 일고 인간이 기계한테 졌다는 절망감이 확산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기도 했다.

이 9단은 그러나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13일 벌어진 4국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승리를 따냈다. ‘신의 한 수’를 찾아냈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인공지능에도 허점이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환호가 빗발쳤다.

■알파고 버그와 이세돌 감정 상태가 관건 될 듯

5국에서는 서로의 강점보다 서로의 약점이 승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3국까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알파고의 약점은 4국에서 드러났다. 수가 복잡한 상태에서 집수가 모자란 것으로 보일 때 어이없는 패착을 한다는 게 바둑계의 일반적 분석이다. 아마 18급 수준의 형편없는(버그에 가까운) 착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

따라서 이 9단으로서는 4국의 패턴을 어떻게 되살릴 지가 5국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귀와 변에서 실리를 챙긴 뒤 알파고의 세력권을 침투하는 전략을 다시 쓸 지가 무엇보다 관심거리다.

인간인 이 9단의 약점은 컴퓨터인 알파고와 달리 신체적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수 계산을 위해 알파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고 이 탓에 중반 이후 초읽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때 자칫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4국에서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고 알파고의 약점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바둑을 떠나 인류에게 수많은 고민거리 던져

그러나 5국을 남겨 놓긴 했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신(神)에 가까운 알파고에 맞서 멋진 승부를 펼쳐준 이 9단의 투혼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의 매력이 그것 아니겠는가.

객관적인 열세임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도전 정신. 그 정신이 불타오르는 것을 확인할 때 인간은 져도 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결은 여느 스포츠와 달리 경기가 끝난 뒤에도 많은 고민거리를 인류, 특히 경기가 펼쳐진 한국과 한국인들에 남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SW를 푸대접해온 한국 경제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있을 것이다.

머신러닝, 딥러닝, AI,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그게 인간 사회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거의 모든 국민이 직접 목도한 상황이다. 특히 선진국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비해 우리의 경우 얼마나 초라한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SW에 대한 푸대접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장기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 고민은 그러나 IT와 SW 관계자로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강도와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인공지능이 지금의 경제 사회 구조를 충격적으로 뒤바꾸어놓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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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자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커다란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번 대결은 멀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주 가까워진 문제에 대해 우리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점에서 확실히 빅이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