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우선 승부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 5국의 결과를 예단하기가 힘들어졌다. 회가 거듭될수록 관심을 더 끌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대결은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스포츠도 제공할 수 없었던 엄청난 화두를 인류에게 던졌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이상인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각본 없는 드라마’
대국이 시작되기 전 대체적인 의견은 ‘이세돌 우세’였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직 인간 최고의 프로기사를 넘어설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고 승패에 있어 인간의 직관도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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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후이 2단과의 대국을 분석해본 결과 알파고의 수준이 이세돌 9단보다 낮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9단이 첫 판을 지고 두 번 째 판까지 불계패하자 알파고는 바둑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분석이 많았다. 예상대로 3국도 완패였다.
그러자 불공정 시비가 일고 인간이 기계한테 졌다는 절망감이 확산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기도 했다.
이 9단은 그러나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13일 벌어진 4국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승리를 따냈다. ‘신의 한 수’를 찾아냈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인공지능에도 허점이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환호가 빗발쳤다.
■알파고 버그와 이세돌 감정 상태가 관건 될 듯
5국에서는 서로의 강점보다 서로의 약점이 승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3국까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알파고의 약점은 4국에서 드러났다. 수가 복잡한 상태에서 집수가 모자란 것으로 보일 때 어이없는 패착을 한다는 게 바둑계의 일반적 분석이다. 아마 18급 수준의 형편없는(버그에 가까운) 착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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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9단으로서는 4국의 패턴을 어떻게 되살릴 지가 5국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귀와 변에서 실리를 챙긴 뒤 알파고의 세력권을 침투하는 전략을 다시 쓸 지가 무엇보다 관심거리다.
인간인 이 9단의 약점은 컴퓨터인 알파고와 달리 신체적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수 계산을 위해 알파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고 이 탓에 중반 이후 초읽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때 자칫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4국에서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고 알파고의 약점을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바둑을 떠나 인류에게 수많은 고민거리 던져
그러나 5국을 남겨 놓긴 했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신(神)에 가까운 알파고에 맞서 멋진 승부를 펼쳐준 이 9단의 투혼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의 매력이 그것 아니겠는가.
객관적인 열세임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도전 정신. 그 정신이 불타오르는 것을 확인할 때 인간은 져도 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결은 여느 스포츠와 달리 경기가 끝난 뒤에도 많은 고민거리를 인류, 특히 경기가 펼쳐진 한국과 한국인들에 남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SW를 푸대접해온 한국 경제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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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그게 인간 사회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거의 모든 국민이 직접 목도한 상황이다. 특히 선진국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비해 우리의 경우 얼마나 초라한 상황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SW에 대한 푸대접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장기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 고민은 그러나 IT와 SW 관계자로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강도와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인공지능이 지금의 경제 사회 구조를 충격적으로 뒤바꾸어놓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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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자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커다란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번 대결은 멀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주 가까워진 문제에 대해 우리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점에서 확실히 빅이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