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권을 중심으로 디지털 상에서 모든 거래내역을 분산네트워크에 기록해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면서도 종이문서를 대체하는 비용절감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영국 정부에서도 자국 공공 서비스에 이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보다 진지한 검토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한국은행이 지난 12일 '중장기 지급결제업무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통화, 분산원장 기술이 전 세계 지급결제시스템, 금융산업 등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판단에 이와 관련된 연구를 강화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주목하고 있는 분산원장은 본래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 거래 내역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인프라인 블록체인을 다른 영역에도 활용하려는 시도다. 블록체인이 비트코인이 어디서 어디로 송금됐는지에 대한 내역을 기록하는 용도로 쓰였다면 분산원장은 오프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계약문서, 혹은 거래내역을 담은 문서들을 블록체인과 같은 인프라에 옮겨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기술을 다른 용도로 확장해서 쓰겠다는 것이다.
■공공 서비스, 안전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어
영국 과학부에서 최고과학고문(Chief Science Advisor)인 마크 월포트는 최근 '분산원장기술:블록체인을 너머(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Beyond block chain)'라는 88쪽짜리 보고서를 통해 분산원장이 정부의 공공 서비스를 혁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관련링크)
예를들어 세금을 징수할 때, 공공 서비스와 관련 혜택을 제공하거나 여권을 발급하고, 토지 등기 내역을 기록하는 등 정부가 관리하는 기록이나 서비스들을 분산원장에 기록해 안전하면서 투명하게 통합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또한 전 세계에서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되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도 이러한 분산원장을 활용해 각종 의료서비스들이 제대로 제공됐는지 검증하고, 진료기록들을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들 역시 누가 자신의 개인기록에 접근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오남용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면 국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일괄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맞춤형으로 선택해서 지원받을 수 있게 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해진다.
월포트 고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데이터베이스(DB)들이 대형 레거시 IT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한 번 장애가 나거나 사이버 공격 등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면 전체 서비스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데이터가 변경될 경우 실시간으로 이러한 내용이 DB에 반영되지 못하고, 기록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보고서는 "분산원장은 태생적으로 단일한 DB를 통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이버 공격 자체가 어렵고, 같은 DB에 대해 여러 개의 복사본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사이버 공격자가 모든 복사본들을 동시에 노려야지만 공격에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암호화한 정보들의 묶음을 말하는 '블록(block)'을 서로 연결(chain)시켜 놓은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러한 거래내역을 조작하려고 하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팅 자원을 통해 구축한 분산네트워크를 모두 바꿀 수 있는 정도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 비트코인 전문가들은 이러한 작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블록체인 개념을 적용한 분산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밖에도 월포트는 분산원장 개념을 위변조 여부를 검증하는 등 다른 용도로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관리하는 핵심 인프라에 활용 중인 운영체제(OS), 펌웨어 등에 대한 정보를 분산원장에 올려 놓은 뒤 이를 원래 시스템 정보와 비교해 공격자들이 조작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분산원장은 소프트웨어에 불법적인 변경이 없었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월포트는 "영국 정부가 분산원장 기술을 시도하고, 이를 여러 분야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투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중심 연구활발, 에스토니아는 정부서비스에 이미 도입
각국 정부들은 이미 분산원장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수년 전부터 가드타임이라는 회사가 고안해 낸 '키 없는 전자서명 인프라스트럭처(Keyless Signature Infrastructure, KSI)'를 자국 서비스에 도입하는 중이다.
KSI는 시민들이 정부가 관리하는 DB에 기록한 자신들에 대한 기록이 잘못된 것이 없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권한있는 내부 관리자가 불법적으로 정부 네트워크에 침입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기능은 시민들이 전자 상거래 등록, 전자세금계산서와 같은 디지털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국의 경우 비상장 주식을 거래하기 위한 플랫폼인 링크(Linq)에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을 적용했다고 밝혔으며, 골드만삭스 등 주요 은행들은 R3CEV라는 스타트업과 함께 타행 송금 등 분야에 분산원장을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에버렛저는 다이아몬드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분산원장을 사용한다. 디지털 상에 다이아몬드를 어디서 캐냈는지 어떤 경로로 유통됐는지 등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에라리온, 콩도 등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불법거래되는 일명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유통도 막을 수 있다.
■비트코인은 위험하다는 선입견 버려야
분산원장은 기술 자체만 놓고보면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만 정책입안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우려섞인 시선으로 보는 것도 사실이다.
비트코인이 마약거래상이나 지금은 폐쇄된 실크로드와 같은 온라인 암거래 시장, 데이터를 인질삼아 댓가를 요구하는 랜섬웨어를 악용하는 사이버 범죄조직들이 자금을 거래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고서는 분산원장 기술을 정부 서비스에 도입할 수 있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정책입안자들, 공공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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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분산원장 기술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정부와 민간 영역이 각각의 목적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기술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안과 중앙통제 사이에 균형을 이루면서도 각 조직과 개인들 사이에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