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거대 은행들, 왜 블록체인에 열광하나

R3 컨소시엄 참여 회사 확산

컴퓨팅입력 :2015/12/23 11:02

손경호 기자

온라인 상에서만 거래되는 암호화 화폐의 보안성과 거래 투명성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인 '블록체인'을 금융거래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전 세계 은행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블록체인으로 거대 은행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스타트업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R3CEV가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스, JP모건, 등 9개 은행들과 함께 블록체인 관련 글로벌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은 최근 12개 은행 등 금융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전 세계 42개 주요 은행들이 참여하는 규모로 커졌다.

R3CEV는 전 세계 42개 은행 등 금융사들과 함께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금융거래에 활용할 수 있는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번에 추가로 참여하는 금융사들은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 덴마크 단스케방크, 이탈리아 인테사상파올로, 프랑스 나티시스, 일본 노무라 증권과 SMBC, 미국 자산운용사인 노던트러스트, US뱅코프, 핀란드 OP파이낸셜그룹, 캐나다 스코샤뱅크, BMO파이낸셜그룹, 호주 웨스트팩 은행이다. R3는 초기 회원사들 모집은 끝냈으나 내년부터는 비금융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분산원장이 거둘 비용절감 효과에 주목

블록체인이 뭐길래 전 세계 은행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은행들이 엄청난 비용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을 주고 받은 거래 내역을 분산네트워크 상에 기록한 거대한 거래장부를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이 장부는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들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거래내역이 맞는지를 점검한다.

또한 해당 내역은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부정거래를 일으키기 어렵다. 블록체인 상에는 비트코인 거래 내역 외에도 적은 용량의 정보를 올리는 일이 가능하다. 이를 두고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이라고 부른다. 이를 활용하면 각종 계약서나 어음, 수표 발행 내역, 공공문서 등에 대한 정보를 블록체인 상에 올려 위변조여부를 검증하면서도 각종 거래를 확인해 처리하는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비트코인 거래기록을 담기 위해 고안된 블록체인은 각종 계약서, 어음 및 수표 발행 내역, 공공문서 등에 대한 정보를 올려 위변조 여부를 검증하면서도 실시간 거래를 위한 인프라로 활용될 수 있다.

기존에 은행들은 저마다 개별적으로 데이터센터를 갖추고, 전용망을 구성해 각종 거래기록들을 관리, 운영해왔다. 이런 중앙집중적인 네트워크 대신 여러 은행들 혹은 개별 참여자들의 컴퓨팅 자원을 공유하는 분산네트워크를 활용해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은 그동안 금융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들여야했던 주요 은행들에게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비용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한다.

■R3, 기술-금융-비트코인 전문가들 연합체

거대 은행들은 왜 미국의 작은 핀테크 스타트업과 손을 잡으려 하는 걸까?

비트코인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R3의 데이비드 루터 최고경영자(CEO)는 컨소시엄을 통해 도입하게 될 블록체인 기반 애플리케이션이 "현금,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말하는 자산집단(asset classes)과 시장 참여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했던 베테랑으로 은행, 증권회사들 간 채권매매를 중개하는 인터딜러 브로커 전문회사인 ICAP에서 일렉트로닉 브로킹이라는 회사 CEO를 맡았다.

이밖에도 R3에는 기술, 금융, 비트코인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IBM 책임 아키텍트였던 리차드 젠달 브라운, 오픈 머스타드 시드의 책임 아키텍트였던 패트릭 디건, 비트코인 개발자로 유명한 팀 스완슨,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은행, 웰스파고 등에서 근무했던 라자 라마찬드란 등이 합류하고 있다.

루터 CEO는 "이런 기술들이 금융서비스회사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객과 일반 사용자들에게까지 혜택을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금융사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최근 새롭게 R3의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된 산탄데르은행은 "이 컨소시엄은 암호화 화폐와 분산 원장(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금융기술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달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금융서비스 그룹인 ING의 마크 부이텐헥은 코인데스크와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모든 비즈니스 라인이 R3 컨소시엄이 연관된다"며 "금융거래서비스 조직, 금융시장, 대출 서비스 일부 등이 여기에 연관돠며, IT종사자들부터 운영책임자, 고객지원 담당직원 등까지 여기에 해당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스닥은 이미 비상장 기업 주식거래 플랫폼인 '링크(Linq)'에 블록체인, 분산원장 개념을 도입하는 중이다.

부이텐헥에 따르면 은행들은 블록체인 기반 애플리케이션의 잠재력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거래에서부터 내부 거래, 신원확인, 서로 연결된 금융거래용 기기들의 백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매우 큰 변화가 될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가 시간과 자금을 들이고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EMV, PCI-DSS 같은 금융권 공동 분산원장 표준 만드나

아직까지 블록체인과 이를 활용하는 분산원장 개념이 월스트리트를 포함한 전 세계 금융회사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3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여러 은행들이 공동으로 일종의 테스트베드로서 블록체인, 분산원장에 대한 각종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실제로 R3는 구체적으로 월가와 금융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른 시점이며, 다만 관심있는 은행들 간에 논의를 주선하는 역할을 하고, 여러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한 초기 개념증명(POC)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글로벌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블록체인, 분산원장에 대해 내부적으로 워킹그룹을 만들고, 필요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R3 컨소시엄이 은행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에 비해 리스크 부담을 줄이면서도 여러 은행들과 공동으로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R3 연구 책임자 중 하나인 팀 스완슨은 "분산원장으로 컨소시엄 회원사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이르면 1년 내에 활성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글로벌 은행들이 R3 컨소시엄을 통해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기존 금융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일종의 글로벌 표준을 구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유로페이, 비자, 마스터카드가 공통적으로 IC칩을 탑재한 신용카드 표준규격인 EMV를 만들어 낸 것이나 미국 내에서 비자, 마스터카드와 함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이 신용카드결제에 필요한 보안 표준인 PCI-DSS를 고안해 낸 것과 마찬가지다. 42개 은행들이 모두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라면 일종의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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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은 이미 비상장 기업들의 주식을 거래하는 플랫폼인 '링크(Linq)'에 실제 블록체인을 도입하기로 했다. 각종 은행들 간 외환송금도 이전까지 은행들 간 연동되는 스위프트망을 활용하면 수일이 걸렸던 것에 비해 분산원장을 도입해 실시간에 가까운 송금을 가능케하는 아이디어가 적용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주식거래에 일명 '세틀코인'이라 불리는 암호화 화폐를 활용하기 위해 관련 특허를 미국 특허청에 등록했다.

대부분의 금융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되는 시대에 블록체인과 분산원장은 비용절감, 이전에 불가능했던 실시간 거래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업계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