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 '블록체인' 투자 가속...한국은?

컴퓨팅입력 :2015/12/07 08:09

손경호 기자

지난 10월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머니20/20' 컨퍼런스에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블록체인에 대해 2가지 흥미로운 사례들이 발표됐다.

나스닥이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운영해 왔던 플랫폼인 '링크(Linq)'에 블록체인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 첫번째다. 비자는 도큐사인이라는 회사와 함께 자동차 리스 거래에 필요한 계약문서 등을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공개했다.

그동안 '해커들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 '가격 변동폭이 커서 기존 통화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등 논란에 휩싸였던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은 관련된 거래내역을 안전하게 기록하는 분산네트워크 기반 인프라 역할을 하는 블록체인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비자, 나스닥 외에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레이스, JP모건, UBS 등 25개 은행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R3CEV라는 스타트업과 개발 중인 블록체인 기반 프레임워크는 은행들 간 어음, 채권 등을 발행한 뒤에 이를 청산, 결제하는 용도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JP모건 글로벌 상품 담당 총괄 임원으로 월스트리트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블리체 마스터스는 R3CEV와 유사한 디지털에셋홀딩스라는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겼다. 블록체인이 가진 잠재력이 금융권에서도 시나리오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새로운 금융 비즈니스를 위한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블록체인이 뭐길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핵심은 수많은 거래장부를 복잡한 절차없이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은행 등이 자체적으로 운영해왔던 시스템처럼 별도의 유지보수나 백업이 필요없다는 점도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게 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1년에 22조원에 달하는 금융IT시스템 구축 및 유지보수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 전문회사인 코인플러그 어준선 대표는 "장부에 기록된 거래 내용이 위변조됐는지 여부를 항상 감시할 수 있고, 365일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쉽다는 점, 블록체인 상에 기록된 정보 자체가 법적 분쟁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 화폐를 안전하게 쓰기 위해 고안된 플랫폼인 만큼 비트코인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분산화된 거래장부로서 뿐만 아니라 각종 계약서나 어음, 수표 발행 내역, 공공문서 등에 대해서까지 위변조됐는지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ICT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90%에 육박한다. 그만큼 IT기반 금융서비스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금융당국에서는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에 대한 스터디만 진행하고 있을 뿐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일 금융감독원 주최로 금융기관 및 ICT기업 핀테크 관련 실무책임자들을 초청해 개최된 '핀테크 해외진출 원탁회의'에 참석했었던 어 대표는 "블록체인이 좋은 것은 알지만 결국 국내서 금융이 규제산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트코인, 블록체인 등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을 디지털 화폐 혹은 자산이나 상품으로 규정하면서 이와 관련된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서는 용어에 대한 정의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검토하기 힘들다'는 얘기만 들린다는 것이다. 핀테크이노베이션랩을 운영하고 있는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는 지난달 "아태 지역 금융사들이 서둘러 블록체인 전략을 개발해야한다"고 평가했다. 아태 지역 핀테크 투자 규모는 지난해 1조원에서 올해 4조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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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는 이제 블록체인을 금융권에 활용해 보려는 시도를 시작하는 단계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새로운 금융 플랫폼으로 주도권 잡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국내서도 보다 발빠른 움직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 대표는 "여러 나라들이 블록체인을 중심으로 한 금융 플랫폼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내서 먼저 레퍼런스를 만들면서 아태 지역 진출을 위한 주도권을 잡아야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