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족위-반올림 재해예방책 합의 의미는?

옴부즈만 위원회 설립 사회적 합의 이뤄

디지털경제입력 :2016/01/12 13:04    수정: 2016/01/12 14:28

정현정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 핵심 의제 중 하나였던 재해예방대책에 대한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 문제가 공론화 된 지 9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무엇보다 기업과 가족, 시민단체라는 우리 사회 핵심구성원이 오랜시간 동안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라는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만한 부분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가족위가 피해자들과 개별적인 보상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사실상 매듭 수순에 들어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또 다른 조정주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이번 합의가 재발방지대책에 국한된 '원포인트 합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동안 외부 감시기구 설립에 난색을 표하던 삼성전자가 핵심기술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업장내 직업병을 종합진단하고 감시하는 외부 독립기구인 옴부즈만 위원회 시스템을 전격 수용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큰 틀에서 사회적 타협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관련 3개 협상 주체(삼성전자,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반올림)는 12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 주재로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

조정위 발족 이후 3개 주체는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사과 ▲보상 ▲재해예방대책 등 세가지 핵심 조정 의제를 두고 논의를 계속해왔다. 이 중 재해예방대책 문제와 관련해 조정 3주체 교섭단의 대표자가 조정위 입회 아래 최종 합의를 이루게 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관련 조정위와 3개 협상 주체들이 12일 재해예방대책에 최종 합의했다.(사진=지디넷코리아)

이날 합의된 재해예방대책에 따라 삼성전자는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보건관리팀 조직 규모와 역할의 강화 ▲건강지킴이센타 신설 운영 ▲건강연구소를 통한 조사 및 연구활동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자료의 보존기간 연장 ▲지역사회 환경단체와 소통 확대 ▲건강검진 및 산업재해보상신청 지원 체제를 보강하기로 약속했다.

이와 함께 외부 독립기구인 옴부즈만 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옴부즈만 위원회는 위원장과 2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이철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맡는다. 두 명의 위원은 산업보건과 환경 등 분야 전문가 중에서 위원장이 선정하기로 했다. 옴부즈만 위원회는 올해부터 3년 간 활동하되 필요한 경우 추가 3년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삼성전자 백혈병 논란은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황 씨의 부친인 황상기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를 신청하면서 본격화된 이후 9년을 끌어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 2014년부터 권오현 대표이사와 협상 대표인 백수현 삼성전자 전무 등이 세 차례에 걸쳐 사과를 했고 현재 보상 심사가 진행 중인 만큼 지난 2007년 10월 처음 제기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문제가 사실상 일단락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조정위는 삼성전자가 1천억원을 기부해 보상금 지급을 위한 공익법인을 만들라는 권고안을 내놨지만 일부 조정권고안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진통을 거듭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대위가 보상 문제에 대해 당사자 간 직접 협상을 제안하면서 삼성전자와 가대위는 대신 개별적인 보상 협상을 진행해왔다.

이에 조정위가 조정 3의제 중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원포인트 협상을 제안했고 지난해 12월부터 실무자 간 집중 논의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실무 협의 대표자들 사이에 조정합의안을 도출하게 됐다.

보상 문제에 관련해서는 삼성전자가 지난 9월 18일 보상금 지급 절차를 공지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보상금 지급 신청 접수를 마감했다. 반도체 사업장 및 협력업체 퇴직자 150여명이 보상을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100명 넘는 인원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다. 또 이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올림은 이번 조정위 발표와 관련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합의만이 이뤄진 것일 뿐 여전히 사과와 보상 문제에 대한 세 주체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조정위가 끝난 후 반올림 측 교섭단 대표인 황상기 씨(故 황유미씨 부친)는 “세 가지 의제 중 재발방지 문제만 오늘 합의를 한 것으로 사과와 보상 문제는 아직 삼성이 거부해서 애기를 못 해봤다”면서 “사과와 보상 문제를 반올림과 얘기해서 풀어갈 때까지 삼성 본관 앞에서 농성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위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했다. 현재 사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조정 세 주체 사이에 입장 차이가 커서 현재 추가 조정 논의가 보류된 상태다.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세 주체의 정리된 입장을 들은 후추가 조정 방향 등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김지형 위원장은 “조정 절차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고심을 많이 했고 당사자 분들의 양보에 힘입어서 오늘 이렇게 재해 예방 대책에 관한 합의가 결과적으로는 원만하게 이뤄졌다”면서 “조정합의가 세 주체가 완전히 동의하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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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직도 완전한 타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재해예방대책에 관해 세 주체가 동의하는 합의가 이뤄진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런 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나머지 조정 의제에 대해서도 세 주체 사이에 계속적으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의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 협상단 대표를 맡고 있는 백수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전무는 “오랫동안 묵어왔던 문제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모든 당사자들이 합의 정신을 잘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