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메이크어스’에는 밤잠을 잊은 20~30대 젊은 PD들의 신나서 일을 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영상 결과물을 공개하고 이용자들과 실시간 소통할 생각에 한껏 들떠 있는 분위기다.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스낵을 먹듯 간편하게 즐기는 ‘스낵 컬쳐’ 문화가 자리 잡았고, 동영상 역시 ‘짧지만 굵은’ 콘텐츠들이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고 소비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웹드라마 인기도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콘텐츠다.
메이크어스의 ‘핫바지’, ‘불량식품’ 팀 역시 요즘 유행하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당백 PD들로 구성돼 있다. 페이스북 등에서 히트를 친 대표작으로는 각각 '댓글조작단', '오늘도 중고나라는 평화롭습니다'(이하 오중평) 등이 있다.
댓글조작단은 첫 편을 공개하고 이용자들의 베스트 댓글을 선정해 다음 편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지하철 성추행범을 목격한 주인공의 행동을 이용자들이 결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알던 친구’와 ‘이상형’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주인공이 누구를 선택할지도 이용자가 선택했다. 일주일에 2편씩 제작하느라 핫바지 팀은 ‘쪽대본’은 기본, 소품을 퀵서비스로 받을 만큼 숨 가쁘게 총 8편의 영상물을 완성했다. 이 같은 노력에 ‘허정희’라는 무명 배우에 팬이 생겼고, 핫바지 팀 역시 입소문을 탔다.
“댓글을 받고 나서 시나리오를 쓰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 편집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댓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나갈 수 있는 부분만 미리 준비할 수 있었죠. 일주일에 2화씩 나갔는데 이동 중에도 시나리오를 쓸 정도였어요. 허정희 씨 경우 저희 작품으로 팔로워가 1천800명이나 늘었어요.”-핫바지
오중평도 ‘중고나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거래 사기를 재미있게 풀어내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이 겪은 조던 운동화, 자전거, 중고차 사기 등의 불운이 결국 최종편에 가서 해피엔딩으로 종결되는 치밀한 구성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남자 주인공 김윤배의 연기력도 보는 맛을 더한다. 김윤배 역시 대학로에서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데 부쩍 알아보는 여고생들이 늘었다고.
“촬영 전 날 배우가 교체되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중고나라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네티즌들이 사이다 같은 걸 원했는데 기획이 잘 맞아 떨어져서 좋았죠. 실제 경험담을 인터넷에서 수집했고, 5화부터는 창작된 내용을 많이 넣었습니다. 저희 작품에 출연한 김윤배 씨도 알아보는 팬들이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불량식품
메이크어스 팀은 기획, 각본, 콘티, 제작 모두를 2~3명으로 구성된 한 팀에서 해결한다. 실제 제작이 들어가면 미술, 소품, 의상 담당자 지원이 이뤄지지만 그래도 최대 5명의 인력이 전부다. 한마디로 일당백이다. 하지만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메이크어스 팀의 최대 강점이다. 기성 방송사에서 온 ‘낙하산’ 인사가 없다는 점도 빠른 기획과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메이크어스가 보유한 다양한 채널도 제작팀에게 큰 힘이 된다. 그 만큼 많은 독자들이 보고, 피드백을 주기 때문이다.
“SNS 트래픽이 높다는 점, 창구가 되는 채널이 많다는 게 메이크어스의 강점이에요. 제작자 입장에서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드백을 직설적으로 받아 다음 제작물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죠. 회사도 기획만 괜찮으면 무조건 밀어주고, 또 PD들의 성장도 함께 고민해주는 점도 좋고요.” -핫바지
현재 두 팀은 새로운 시리즈 기획물을 구상 중이다. 핫바지 팀은 댓글조작단의 인기를 잇는 시즌2 작품을 이어갈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영상물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다. 불량식품 팀은 ‘인생극장’처럼 두 가지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주인공이 판단을 시청자들에게 묻는 방식의 영상물을 생각하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유행이지만 무조건 짧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짧아진 만큼 내용의 밀도가 더 높아져야 합니다. 한 번 누르면 끌 수 없는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잘 만들어진 영상 아닐까요. 새로운 시리즈에서도 이 같은 꼼꼼한 구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 불량식품
메이크어스에 소속된 여러 팀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상대 팀의 성과를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한데”, “어떻게 하는 거지?”라고 우러러 본다고. 또 노하우를 거리낌 없이 묻고 공유하는 문화다. 더 안다고 우쭐대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중파와 같은 기성 방송 제작 시스템이나 환경을 마냥 부러워하지만도 않는다.
앞으로 핫바지 팀은 ‘스타워즈’와 같이 마니아층으로부터 꾸준히 인기를 얻는, 불량식품 팀은 젊은층에게 열정과 자극을 줄 수 있는 영상물을 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불량식품 같이 가볍지만 중독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불량식품 아폴로처럼요. 불량식품이 만들었으면 믿고 본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도 주고 싶습니다.” -불량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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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층이 생길 수 있는 시리즈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캐릭터를 좋아해서 보게 되는 스타워즈처럼 마니아층으로부터 꾸준히 인기를 얻는 그런 영상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핫바지
핫바지, 불량식품은 기성 방송을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 모바일에 최적화된 스낵 컬쳐 방송 콘텐츠를 ‘뜨는 배’에 비유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긴 여정의 끝이 기성 방송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기성 방송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조직과 환경에 더 큰 만족감과 기대를 표했다. 큰 배의 한 부속품이 되는 것보다 “우리가 만든다”는 현재에 눈빛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