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은 1년 전까지만 해도 포성이 울려퍼졌다. 삼성과 애플,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기업들이 한 치 양보없는 특허 소송을 벌인 때문이다.
하지만 분쟁과 공격이 난무하던 IT 시장에 평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삼성과 애플이 지난 해 미국 이외 지역에서 진행 중인 특허 소송을 일괄 취하한 데 이어 분쟁의 또 다른 축인 구글과 MS가 전격 화해했다.
구글과 MS가 미국과 독일 지역에서 진행 중인 20건 가량의 특허 소송을 상호 취하하기로 했다고 블룸버그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30일(현지 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두 회사는 이날 공동 합의문을 통해 “특허 문제에 대해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면서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고객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함께 작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구글과 MS는 여러 분야에서 공동 보조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다운로드 속도를 높여줄 수 있는 동영상 압축 기술을 개발해 로열티 없이 제공하는 방안 등도 추진할 것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와 함께 두 회사는 유럽 전역에서 통합 특허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안 제정을 위한 로비 활동도 함께 할 계획이다.
■ 2010년 모토로라 제소 이후 5년 째 공방
구글과 MS는 지난 2010년부터 한치 양보 없는 특허 전쟁을 벌여왔다.
두 회사간 소송의 시발점이 된 것은 모토로라였다. 모토로라는 2010년 MS의 X박스 콘솔 게임이 자사 특허권을 침해했다면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모토로라는 MS가 H.264 동영상 표준 및 802.11 와이파이 기술 관련 특허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선제 공격을 당한 MS도 보고만 있진 않았다. 곧바로 연방법원에 계약 위반 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모토로라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특허 기술을 라이선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소송 이유였다.
이 소송은 2011년 8월 모토로라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규모가 더 커졌다. MS 측이 모토로라와 공방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안드로이드 업체를 상대로 특허 공세를 퍼부은 때문이다. MS가 안드로이드 진영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액태브싱크(ActiveSync) 기능과 관련이 있다. 액티브싱크란 스마트폰과 데스크톱PC의 캘린더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다.
MS의 공격을 받은 삼성, HTC 등 몇몇 안드로이드업체들은 로열티를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구글은 안드로이드 라이선스를 거부하고 표준 특허 관련 소송을 계속 진행했다.
물밑에서 신경전을 벌이던 MS와 구글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재판을 시작했다. 사건을 접수받은 법원은 모토로라의 특허 침해주장과 MS의 계약 위반 주장을 별도 소송을 분리했다.
■ 나델라-피차이가 두 회사 CEO 되면서 분위기 호전
특허 침해 소송에선 모토로라가 일부 승소했다. 2013년 5월 배심원 없이 진행된 소송에서 시애틀지역법원 판사는 MS가 모토로라에 18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배상금 규모는 모토로라가 요구했던 40억 달러에는 턱 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별도로 진행된 계약 위반 소송에선 MS가 승리했다. 2013년 9월 역시 시애틀 지역법원 배심원들이 MS의 손을 들어주면서 모토로라에 1천400만 달러 배상금을 부과했다.
한치 양보 없는 싸움을 계속하던 구글과 MS가 전격 화해를 하는데는 경영진 교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시작 당시 스티브 발머와 래리 페이지였던 두 회사 CEO는 사티아 나델라와 순다 피차이로 바뀌었다. 사티아 나델라는 지난 해 초 MS CEO로 전격 임명됐으며, 피차이는 지난 8월 구글이 알파벳이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새끼 구글’ CEO로 임명됐다.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8월 10일 나델라는 구글 CEO로 임명된 피차이에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well deserved)”는 내용의 축하 트윗을 보냈다.
FBR 캐피털 마켓의 대니얼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 축하 메시지가 구글과 MS 간의 파트너 관계 수립을 위한 문을 연 셈이다”고 강조했다.
구글과 MS가 전격 화해를 하면서 이제 IT 시장에선 삼성과 애플에겐 대형 특허 소송이 대부분 마무리됐다. 구글과 오라클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두 회사 소송의 핵심은 저작권이다.
■ 삼성-애플, 극적 대타협 실마리될까
삼성과 애플은 미국에서만 1, 2차 소송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2012년 1심 평결이 나온 1차 소송은 지난 5월 항소심까지 마무리했다.
1차 특허 소송은 삼성이 대법원 상고를 검토 중인 가운데 항소심 판결 중 배상금 부분에 대해서는 내년 초 1심 법원에서 별도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해 1심 평결이 나온 2차 특허 소송은 현재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현재 상황으론 삼성과 애플이 미국 내 특허 소송을 일괄 취하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양측 모두 한 치 양보 없는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적 타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1심 평결이 시작될 당시만 해도 애플의 압승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두 회사가 서로 주고 받을 부분이 꽤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특히 최근 들어 애플의 특허들이 연이어 무효 판결을 받은 데다 미국 정부와 대법원이 ‘특허권 남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 있는 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과 MS가 특허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함에 따라 삼성과 애플 역시 3년 전 같은 진흙탕 싸움을 벌일 명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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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초기 ‘친 애플 성향’이 강했던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조차 최근 들어선 애플의 과도한 욕심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실을 정도다.
구글과 MS의 특허 소송 합의 취하는 삼성과 애플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특허권 남용 바람을 끊고 IT 시장에 ‘혁신과 개혁’의 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