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 지분을 추가로 확보했다.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던 현대차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서 주요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경영상황이 악화된 범 현대가를 돕고 그룹 내 경영권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중 핵심 계열사의 지분이 미미했던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 확보는 향후 잡음없는 승계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차는 24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440만주 중 316만4천550주를 사들였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차 지분 중 일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현대차그룹에 매수 의사를 타진하면서 진행됐다.
우호 지분인 현대중공업 보유 현대차 지분이 제3자에게 매각될 경우 현대차의 안정적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지분이 시장에서 매각되면 주가에 영향을 주게 돼 주주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직접 인수를 결정했다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현행법상 신규순환출자 금지 규정에 따라 계열사간 지분 추가 취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현대차 지분을 인수한 불가피한 이유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거래는 장 마감 후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이뤄졌다. 매매대금은 4천999억9천890만원으로 주당 가격은 이날 현대차 종가인 15만8천원이다. 정 부회장은 기존 보유주식 6천445주와 이날 매입한 주식을 더해 현대차 주식 317만995주를 보유하게 됐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정 부회장이 순환출자 고리의 주요 계열사 중 지분을 보유한 곳은 기아차(1.75%)가 전부였다. 현대글로비스(31.88%) 등의 지분도 갖고 있지만 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계열사다. 이번 매입으로 사실상 0%에 가까웠던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1.44%로 늘어나며 핵심 계열사의 주요 주주로 단숨에 도약하게 됐다.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 인수가 향후 승계를 위한 그룹 지배권 강화의 포석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사실상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 매입은 지난 1년간 주력 계열사 지분을 잇따라 매각하면서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점을 감안하면 예고된 수순으로 여겨진다.
실제 이 기간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31.38%에서 23.29%로, 이노션 지분을 10%에서 2%로 낮추면서 1조원 이상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 부회장은 주식을 가진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시키면서 현대엔지니어링 주식 11.72%도 손에 쥐었다.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가치는 7천479억원에 달한다.
계열사 지분을 처분하면서 마련된 실탄은 이번 현대차를 신호탄으로 핵심 계열사의 지분 매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순환출자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수다. 정 부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 뒤 마련된 실탄 중 5천여억원은 이번 현대차 지분 인수에 사용됐다. 나머지 자금의 용처는 결국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고리인 현대모비스로 향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 매입을 그룹 지배구조 개편 관련 이슈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영호 KDB 대우증권 연구원은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 매입은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의 오너일가 지분 확보와 시장 매각시의 수급 부담 회피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의 현대모비스를 축으로 하는 지주회사체제 등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와는 연관관계가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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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역시 이번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 매입이 경영승계 수순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의 이번 현대차 지분매입은 순수하게 안정적 경영과 주주가치 훼손 방지를 위한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