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파업이라니"...속타는 현대차

3일 파업 2천억 손실...기아차도 파업 초읽기

카테크입력 :2015/09/24 15:50    수정: 2015/09/25 10:31

정기수 기자

국내외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가 환율 수혜와 폭스바겐 사태 등 모처럼 찾아온 실적 반등의 호재를 제발로 걷어차는 모양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내세운 올해 연간판매 목표 달성을 위해 하반기 연이어 신차를 내놓고 판매량 반전을 기대했지만, 노조의 파업 돌입으로 오히려 생산 차질에 따른 국내외 공급난을 우려해야 할 처지다. 사태가 연말까지 장기화 될 경우 예년보다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내수시장에서 판매 부진에 직면한 현대차에 노조의 파업은 불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 노조는 지난 23일에 이어 24일 이틀째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2012년 이후 4년 연속 파업이다.

노사 양측은 올해 29차례에 걸친 교섭에도 임금 인상과 임금피크제 도입·통상임금 확대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파업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됐다.

전날 오전(1)·오후(2)조 조합원이 4시간씩 총 8시간 파업을 진행한 데 이어 이날은 파업 수위를 높여 각각 6시간씩 파업에 들어간다. 추석 연휴 전날인 25일에도 1조가 6시간 파업한다.

23일 하루 부분파업으로 자동차 3천300여대, 총 730여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사측은 추산했다. 오는 25일까지 3일 연속 파업으로 차량 1만여대 이상의 생산차질과 2천억원을 웃도는 손실이 예상된다.

공교롭게도 25일은 현대차그룹이 작년 노조의 거센 반발로 파업의 단초를 제공하며 우여곡절 끝에 인수한 10조여원짜리 한전부지의 마지막 잔금을 치르고 진짜 주인이 되는 날이다.

■협상 장기화 악재 속출...기아차 동반파업 관측도

노조가 당장 전면 파업보다 부분파업에 나선 것은 수위를 조절하며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유리한 카드를 손에 들고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노조는 다음달 1일 2차 중앙대책위원회를 열고 향후 파업일정과 교섭 재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조는 임단협이 조합원들의 자금 지출이 많은 추석 연휴를 넘기게 된 만큼, 사측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 23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노조가 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사진=현대차 노조)

일단 파업이 시작된 이상 자칫 연말까지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현대차의 교섭이 최종 타결되기까지는 8~9월 두 달간 총 6차례에 걸쳐 2~4시간씩 부분파업이 진행됐다.

연휴 직후 노조가 새 집행부를 꾸리기 위한 선거 준비에 돌입하게 되는 점도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이달 말로 임기가 종료되는 현 집행부가 임기 연장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임기가 종료된 집행부와 교섭해 합의하더라도 이후 효력의 문제가 발생돼 혼란이 불가피하다.

사측 입장에서는 새 노조 집행부가 꾸리는 교섭대표와 임단협을 다시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12월이나 돼야 교섭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아차 노조 역시 지난 21일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 중지' 결정을 받으면서 합법적인 파업 조건을 갖췄다. 통상 기아차 노조가 현대차 노조와 거의 유사한 파업 행보를 보인 점을 감안하면 '동반파업'이라는 파행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기아차는 앞서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현대·기아차는 안방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수입차 공세로 내수 점유율은 추락하고 있고 유로화·엔화 약세를 등에 업은 경쟁 업체들의 부활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힘에 부친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부상한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어든 점도 치명적이다.

최근 잇따른 신차 출시로 하반기 실적 회복에 사활을 걸고 나섰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파업 악재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현대·기아차 노사는 노조 설립 이후 각각 네 차례, 두 차례를 제외하고 매년 줄파업을 치러왔다. 현대차는 작년에도 8~9월 이어진 노조의 부분파업 및 잔업·특근 거부로 차량 4만2천200여대를 생산하지 못해 약 9천100억여원의 손실을 입었다. 같은 기간 기아차 역시 2만7천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어 4천600여억원의 피해를 떠안았다.

■MK 내건 820만대 달성...공염불 되나

앞서 연초 정몽구 회장은 올해 글로벌 판매대수 목표를 820만대(현대차 505만대, 기아차 315만대)로 밝힌 바 있다. 현대·기아차는 올 1~8월 국내외 시장에서 총 510만2천649대를 판매, 전년동기(526만2천741대) 대비 약 3.0% 감소했다.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은 4개월 동안 310만여대를 더 팔아치워야 한다.

일단 달러화 강세 등 환율 호재와 신형 아반떼·스포티지 등의 초반 흥행으로 목표 달성에 기대를 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 등으로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의 반사이익도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임단협이 불발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게 됐다. 정 회장이 직접 내건 목표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도 커졌다.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데다, 하반기 실적을 좌우하는 10월 성수기를 코 앞에 두고 연이어 신차가 출시된 시점에 치러지는 올해 파업은 여느 해보다 충격파가 더 커질 전망이다.

신형 아반떼(사진=지디넷코리아)

지난 9일 출시된 신형 아반떼는 9일 만에 계약대수가 1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26일부터 출시 전까지 일평균 500대씩 5천대의 사전계약량을 기록했고, 출시 이후에는 30%가량 늘어난 일평균 650대의 계약건수를 올리고 있다. 신형 스포티지 역시 이달 2일 사전계약 접수 이후 영업일수 기준 14일 만인 지난 22일 현재 7천여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노조 파업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신차는 출시 초반에 가장 많은 주문이 몰리는데, 파업으로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매출 손실로 직결된다.

신형 아반떼·스포티지의 경우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생산 차질에 따른 수급 불균형으로 경쟁 차종 이탈도 우려된다. 여전히 대기수요가 많은 투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주문이 밀려있는 차종의 경우 고객 불편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영업일선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파업의 여파가 감지된다.

현대차 판매지점 관계자는 "차량 계약을 한 고객들로부터 이미 출고 지연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인도 하락에 노조 파업까지...브랜드 이미지 추락

노조의 파업은 생산차질과 고객 피해 외에도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최근 현대차는 쏘나타·아반떼 등 주력 차종의 충돌 시연을 펼치며 국내 시장에서의 소비자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내수용과 수출용 차량의 역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였으나 아직까지는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도 나온다. 여기에 '배부른 귀족 노조'라는 여론의 지탄을 받는 노조의 파업 돌입은 '안티(Anti)-현대차'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 파업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쏘나타의 충돌 이벤트가 실시된 지난달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은 36.7%로 전년동월 대비 2.4%p 하락했다.

현대·기아차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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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노조의 파업은 글로벌 시장의 경쟁 심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입장에서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생산 차질에 따른 내수·해외물량 공급난은 물론 한 번 떨어진 브랜드 이미지는 회복이 쉽지 않아 대외 신인도 하락이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내수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만 개의 협력업체에게도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