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폭스바겐...날개 꺾이나

브랜드 실추...국내법인 늑장 대응도 '도마'

카테크입력 :2015/09/23 14:07    수정: 2015/09/24 10:20

정기수 기자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파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독일어로 '국민 차'라는 뜻이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 1위에 등극한 폭스바겐이 창사 78년 만에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국내 시장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폭스바겐 그룹은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 조치를 받은 데 이어 적극적인 사과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반면 국내 법인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본사 측 방침만 기다리고 있다"는 다소 안일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폭스바겐 코리아의 성장세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친환경과 고효율의 대명사로 평가받던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골프 2.0 TDI 모델(사진=폭스바겐 코리아)

■미국서는 리콜, 국내 판매 차종은?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환경보호청(EPA)은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디젤 승용차 48만여대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렸다.

폭스바겐은 2.0 TDI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차량에 배기가스 배출량을 속이는 소프트웨어를 설치, 미국 환경기준의 40배를 초과하는데도 이를 숨겨왔다. 시험소 배기가스 검사 시 배출 통제 시스템을 최대로 가동시키고, 실제 도로 주행 때는 시스템 작동을 중지시키는 방식으로 조작했다. 폭스바겐 역시 이를 인정한 상태다.

해당 모델은 2009~2015년 생산된 폭스바겐 제타·비틀·골프, 2014~2015년형 파사트, 2009~2014년 생산된 아우디 A3다. EPA의 발표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폭스바겐 그룹은 차단 장치 소프트웨어로 인해 최대 180억달러(약 21조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EPA는 현재 포르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엔과 아우디 Q5, A6, A7, A8 등 모델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폭스바겐은 EPA 발표를 전후해 즉각 사과하고 올 3분기 배기가스 조작 등 검사 과정에서의 부정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65억유로(약 8조6천100억원)에 달하는 충당금을 쌓기로 결정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비디오로 매연 조작 스캔들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사진=폭스바겐 그룹)

사퇴설이 불거지고 있는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22일 2분 33초 분량의 비디오를 통해 "폭스바겐 브랜드를 신뢰하고 있는 전 세계 수백만명의 고객들에게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단계적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마이클 혼 폭스바겐 미국법인 CEO도 22일 신형 파사트 신차 발표회에서 "우리 폭스바겐은 모든 분들과 정부 규제 당국으로부터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며 "솔직히 말씀드리면 내부적으로 혼란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전 세계적으로 1천100만대의 디젤 차량에 별도 배출가스 차단 장치가 장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폭스바겐은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에 이 장치가 장착됐는지에 대한 언급은 피해 미국 이외 지역에서도 배기가스 조작 우려를 시사했다. 독일 정부 역시 폭스바겐 디젤 차량 전량에 대한 광범위한 특별조사를 지시한 상태다. 이외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 스웨덴, 체코, 네덜란드 당국 등도 잇따라 관련 수사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해당 차량에 대한 재검사와 리콜 여부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내 리콜 차량은 모두 유로 6 환경기준에 맞춰 제작된 차량으로 국내에는 지난달까지 골프·제타·A3 등 3개 차종 6천387대가 판매됐다. 골프 789대, 제타 2천524대, A3 3천74대 등 모두 6천387대 등이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전 세계적으로 판매된 디젤차량 배출가스 차단장치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인정함에 따라 국내 대상 차량 역시 2009년부터 판매된 해당 차종 전체가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가 된 차종은 2009년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약 6만745대가 팔려나간 상태다. 폭스바겐 골프가 2만6천518대로 가장 많고, 파사트 1만7천919대, 제타 1만393대, 비틀 2천841대 순이다. 아우디 A3는 3천47대가 판매됐다.

논란이 확산 일로에 접어들자 정부는 해당 차종의 연비 재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초 환경부는 세관을 통관해 판매 대기 중인 신차를 대상으로만 장치 조작 여부를 파악할 계획이었으나, 파문이 확산되자 문제 차종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미국과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문제가 된 차종의 배출가스가 어느 정도인지 국내에서도 검사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우선 다음달 미국 내 리콜 차량 기준에 맞춰 폭스바겐 골프와 제타, 아우디 A3 등 3개 차종의 배출가스를 검증할 계획이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이 국내에서도 확인될 경우에도 리콜이나 판매중지 명령이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유럽과 체결한 FTA(자유무역협정)이 최대 걸림돌이다.

우리나라가 EU와 체결한 FTA 규정에는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관련 기준은 EU 기준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EU는 주행 중인 디젤차의 배출가스 규제를 오는 2017년 9월 이후 판매되는 신차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국내 현행법에 따르면 차량을 국내에 처음 도입할 때 실시하는 인증검사에서 배출가스 기준에서 벗어나면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을 EU 기준에 맞추게 돼 있어 제재를 내릴 근거가 없다. 즉 검사를 통과한 차량에 대해서는 실제 주행시 배출가스 규제가 없는 셈이다. 미국에서 문제가 된 장치 조작은 실제 주행검사시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다.

결국 폭스바겐은 국내 대기환경보전법을 어긴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최대 40억원의 과징금만 납부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장 판매량 꺾이나...고객 배신감이 더 큰 문제

이처럼 리콜 등 행정제재는 피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태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동반되는 판매 하락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폭스바겐그룹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국내 수입차시장 점유율 28%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각각 15.61%, 12.56%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정작 폭스바겐코리아의 대응은 본사의 발빠른 대처와는 달리 안이한 상황이다.

폭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에서 판매된 차량의 배출가스 조작 여부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본사의 지침이 내려오는대로 공식 발표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에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폭스바겐그룹이 국내 수입차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사수하는 데 악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이번 사태의 해당 모델인 파사트 2.0 TDI(854대), 골프 2.0 TDI(740대) 등은 지난달 수입차 디젤 모델 중 최다 판매 차종에 올라있는 상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높은 디젤 엔진 기술력이 폭스바겐 브랜드 인지도의 근간인 만큼 이번 이슈로 브랜드 가치의 하락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장문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디젤 엔진의 배기가스 검사 회피와 연비 과장 이슈로 폭스바겐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미국 외 타지역으로 이슈가 확산될 경우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8월 베스트셀링카로 등극한 폭스바겐 파사트(사진=폭스바겐 코리아)

폭스바겐 사태의 여파는 영업 현장 일선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폭스바겐과 아우디 매장에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현저히 줄어들고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들의 항의 전화도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연비 조작 파문으로 해당 디젤 차량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확산되는 상황"이라며 "단 기간 내 판매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자사 디젤 엔진의 친환경과 효율성 등을 앞세워 국내에서 판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이라며 "과거의 명성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산 완성차업체들의 경우 반사이익보다는 역풍을 염려하는 분위기다.

국산차들의 경우 내수시장에서 수입차 성장세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혹여나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는 디젤차량 판매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수입차와 국산차의 수요 고객층이 확연히 나뉘어져 있는 것도 판매 확대에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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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해외판매 비중이 높은 현대·기아차의 경우에는 유럽 등 경쟁시장에서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장문수 연구원은 "폭스바겐의 리콜대상이 배기가스 규제가 심한 디젤엔진이고, 판매가 중국과 유럽에 집중돼 있다"며 "현대·기아차는 가솔린 모델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중국 매출비중이 높아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