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장에서 국산 통신장비를 우대하는 정부 정책을 놓고 업계 단체 간 찬반 공방이 치열하다. 찬성쪽은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 반대쪽에는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공사협회)가 섰다.
협동조합은 2016~2018년 3년간 공공기관에서 대기업과 외국업체 입찰을 배제하고 국산 중소기업 제품 입찰만 허용하는 중소기업자간경쟁제품(이하 '경쟁제품')에 통신장비 품목 지정을 신청한 상태.
경쟁제품 지정품목은 오는 12월 중소기업청 공고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지금은 중소기업중앙회 중재로 신청자와 반대자가 각자 근거와 논리를 세우고 이해관계를 조율할 '조정회의' 기간이다.
우대정책에 대해 협동조합이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통신장비 중 '전화·교환기 네트워크 연결장치' 품목의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구내단자함, 국선단자함, 본배선반, 중간배선반)'에 대한 지정을 공사협회에서 반대 중이다. (☞관련기사) 이에 대해 협동조합은 공사협회의 주장을 아전인수식이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공사협회 측 반대 의견에 담긴 핵심 주장을 풀어 보면 다음 3가지다.
첫째, 이 품목을 경쟁제품 지정시 해당 제품을 직접 제조하는 소수 업체만 사업기회를 독점한다. 정보통신공사업자 누구나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 설치 사업에 입찰할 수 있어야 한다.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 전체 정보통신공사업자 1% 정도인 직접 생산 업체만 입찰할 수 있다.
둘째, 이미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2항의 기획재정부장관 고시 기준으로 중소기업들이 보호되고 있다. 2억1천만원 미만의 물품 및 용역 입찰에 대기업 참여가 제한된다.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 설치 발주 규모는 고시금액 미만이라, 경쟁제품으로 지정할 필요가 없다.
셋째, 수요기관들이 '중소기업제품 구매목표비율' 제도 실적을 맞추느라 경쟁제품 이외 품목까지 통합발주를 하는 부작용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장비 품목들을 현행대로 경쟁제품에 다시 포함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이 3가지 주장은 지난 12일 중기중앙회에서 조정회의에 앞서 공개한 경쟁제품 지정 신청 품목별 반대의견 접수내용 자료에도 다소 거칠게 요약돼 있었다. (☞링크)
그런데 협동조합 측은 공사협회가 이런 주장을 펴기 위해 제도를 당초 취지와 다르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보통신공사업법', 경쟁제품 지정제도의 '직접생산확인기준', 판로지원법에 연계된 기재부장관 고시기준 등 법률상의 핵심 개념을 실제와 다른 의미로 곡해했다는 지적이다.
협동조합의 김영호 본부장은 지난 24일 열린 조정회의에서 공사협회 측에 다음과 같은 반박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공사협회가 각각의 주장이 근거한 제도와 법률적 내용을 실제와 다른 의미로 곡해하고 있을뿐아니라, 발주기관의 편법행위에 해당하는 통합발주 건을 오히려 경쟁제품 지정제도 부작용 사례로 제시한 것은 공사협회 측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보통신공사업자도 '설치' 입찰 가능해야" vs "공사업법 개념 무시한 것"
협동조합 측은 어떤 정보통신공사업자든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 설치 사업에 입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사협회 주장이 '정보통신공사업법'에서 정한 업무의 개념적 범주를 넘어선다고 꼬집었다.
협동조합 설명에 따르면 정보통신공사업법 제2조2항 상 공사업자의 역할은 통신구설비, 관로설비, 케이블설비 등을 갖추고 유지보수하는 '공사' 업무에 한정된다. 경쟁제품 지정제도 혜택을 보는 업체들이 입찰하는 '설치'은 납품 장비의 가동 및 운영을 위한 검수와 초기화 업무를 뜻하기 때문에, 공사협회에서 공사업자들의 사업 참여 기회를 요구하는 건 공사업자의 역할을 정의한 공사업법 제2조2항을 오인했거나 그 범위를 구체화한 관련 시행령을 무시한 결과란 설명이다.
앞서 공사협회는 통신장비 설치 사업에 입찰하는 경쟁제품 지정제도 수혜 업체들을 '1%의 정보통신공사업자'라 묘사했는데 이건 무슨 얘기일까.
경쟁제품 지정제도상, 지정된 품목을 만드는 중소기업들은 '직접생산 확인기준'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 품목의 직접생산 확인기준에 '정보통신공사업등록증'이 포함돼 있어, 제품을 직접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공사업자 자격까지 갖춰야 경쟁제품 지정 품목을 납품 가능한 것이다.
김 본부장은 "(협동조합 회원사들은 직접생산 제조업체로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직접생산 확인기준에 부합한 시설, 기술, 인력을 갖추고 직접생산 확인을 받는다"며 "이런 일련의 절차를 무시(직접생산 지정 반대를 통한 동등 입찰 기회 요구)한다는 것은 정부의 선진 조달정책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기업 입찰제한으로 이미 중기 보호" vs "경쟁제품·직접생산 非해당 업체용"
협동조합 측은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시에 따라 일정 규모 미만의 사업에 대기업이 입찰할 수 없게 돼 있어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 품목을 경쟁제품으로 지정할 필요가 없다는 공사협회 측 주장이 역시 관련법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일단 공사협회가 중소기업들이 경쟁제품 지정제도 없이도 대기업 입찰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조항은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2항의 "공공기관들이 기획재정부장관 고시에 따라 중소기업과 우선 조달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링크)
공사협회가 고시에서 물품 및 용역 입찰 사업의 대기업 참여 하한선으로 인용한 금액은 2억1천만원이다. 대다수 동보장치 및 통합배선반 설치 사업 규모가 이 대기업 참여 제한 금액에 해당하므로, 경쟁제품 지정제도 없이도 대기업의 참여로부터 중소기업들이 공공시장에서 보호받고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기재부 장관이 고시한 금액 미만의 물품 및 용역 중에서도 '경쟁제품을 제외한' 입찰 건에 대해 중소기업과 우선 조달계약을 체결하라고 쓰여 있다. 이는 경쟁제품 지정 품목을 생산하지 않는 중소기업의 입찰 기회를 보호하는 내용이라, 경쟁제품 생산업체가 다른 수단으로 이미 보호되고 공사협회의 주장과 어긋난다. 협동조합 측은 이를 지적하고 있다.
■"중기 구매실적 때문에 非경쟁제품도 통합발주" vs "수요기관 편법발주 대표사례"
협동조합 측은 수요기관들이 중소기업제품 구매실적을 채우기 위해 분리해야 할 경쟁제품과 비 경쟁제품을 통합해 발주한 사례를 인용해 중소기업 보호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는 공사협회 측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공사협회가 인용한 사례는 국군재정관리단에서 지난해 6월 '2014년 LAN/인터넷 장비 도입'이란 사업명으로 진행한 통합배선반 발주 건이다.
협동조합 측은 해당 사례가 오히려 경쟁제품 공급업체들의 입찰 기회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잘못된 관행을 드러낸다는 입장이다.
당시 협동조합은 공고 내역 확인 결과 약 3억원 규모의 통합배선반 설계 건이 포함돼 있어 수요기관에 분리발주를 요구했으나, 수요기관은 입찰참가자격만 변경해 주계약자를 SI업체로 삼고 통합배선반 제조업체는 공동수급 형태로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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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본부장은 "해당 제조업체는 이후 SI업체에 원가 가까운 수준으로 하도급계약을 체결해 물품을 공급했는데 이는 SI업체들의 턴키수주 방식으로 제조업체가 하청업체로 전락한 사례"라며 "국군재정관리단에서 동일 사례가 계속됐는데 공사협회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계속 주장하는 것에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사협회의 공대진 제도개선국장은 지난 24일 조정회의를 통해 통신장비 품목의 경쟁제품 지정 여부를 놓고 협동조합과 논의한 점, 위 3가지 주장을 들어 반대 논지를 편 점은 인정했다. 다만 이후 협동조합 측에서 내놓은 반박 내용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 질의에는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