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벽 허무느라 안쪽 벽은 못 본 미래부

[기자수첩]내부 협업 문화 확산에도 신경써야

기자수첩입력 :2015/08/13 15:19    수정: 2015/08/13 15:19

'부처 간(間) 칸막이는 더 이상 없다.' 현 정부가 출범 후 창조경제 및 국민행복 의제 확산을 위해 재작년부터 공을 들였던 국정운영 메시지 중 하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지면서 국민의 어려움도 어느 한 가지 정책이나 부처만의 노력으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부처 간 협업 시스템을 강조해 왔다. (☞정책브리핑 링크)

이에 박근혜 정부는 부처간 협업과제 업무보고를 해당 부처들이 함께 진행케 했고, 각 부처는 최근 2년간 복수 부처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을 심심찮게 입안해 내놨다. 특히 IT전담부처 대신 IT와 과학기술 연구개발육성 및 방송통신산업진흥 기능을 엮어 세운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런 협업과제 발굴, 입안, 추진, 홍보에 열심이다. 미래부는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단지 K-ICT 클라우드서비스 적용 시범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한다는 'K-ICT 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계획'도 내놨다.

지난달엔 교육부와 '소프트웨어(SW)중심사회를 위한 인재양성 추진계획'을 발표했고, 이달초엔 보건복지부와 함께 '글로벌 첨단바이오의약품 기술개발사업'을 공동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방부와는 작년부터 사이버보안 전문인력 육성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해 올해 '사이버전사' 양성을 추진 중이고, 기획재정부·행정자치부와는 10년 넘게 끌어 온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을 진행한다.

이쯤 되면 미래부가 정부 부처 가운데 협업 과제를 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곳을 꼽는 게 빠를 정도다. 얼핏 보기엔 박근혜 정권의 부처간 칸막이 없애기를 적극 실천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부의 국정 기조에 충실하느라 다른 부처와의 칸막이를 없애는 데 온통 신경을 집중한 탓일까. 미래부의 최근 정책 동향은 정작 부처 안의 '부서간 칸막이'는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긴다. 미래부의 부서간 칸막이가 드러난 정황은 대충 다음과 같다.

미래부는 앞서 국산ICT장비산업 육성 일환으로 공공부문 ICT인프라 국산화를 예고했는데, 최근 관련 정책 목표중 국산장비의 공공부문 우대 제도를 놓고 미래부 산하 두 단체가 대립 중이다. (☞관련기사) 국산ICT장비의 공공부문 우대를 요구하는 쪽은 작년 미래부 설립인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컴퓨팅산업협회'고, 반대하는 쪽은 미래부 정보통신공사업법 기반 특수법인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다.

우선 산업협회는 미래부 정보통신산업과 소관으로 작년부터 국산ICT장비산업 육성 정책에 동조해 온 관계다.

반면 공사협회는 미래부 통신정책기획과 소관으로 국산ICT장비 공공 우대와 관련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놨다.

요약하면 한 부처가 내놓은 정책 방향을 놓고 엇갈린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두 협회의 담당 부서들이 모두 한 부처 안에 있는 것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지금 상황은 두 협회간 마찰만으로 표현하기엔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물론 이 정책에 반대하는 곳은 공사협회뿐이 아니다. 외산장비제조업체, 그 국내 유통 및 솔루션 개발 파트너, 일부 오픈소스SW업체까지 저마다 다른 근거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관련기사)

미래부도 이런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산업계의 반대 여론 자체는 실제보다 문제가 부풀려졌거나, 큰 어려움 없이 해결 가능한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왔다. (☞관련기사)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문제는 이 다음이다. 정작 미래부는 다른 곳이 아닌 이번 공사협회의 반대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미래부 산하에 있는 두 협회가 엇갈린 이해관계로 문제를 제기했으니, 부처 안 소통의 부재가 심각하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지 싶다.

미래부는 작년 국산ICT장비산업 육성을 부르짖더니, 올핸 업무계획 보고자료(☞링크)에서 일자리와 시장창출을 위해 국산·외산을 안 가리는 제품 유통을 요구하는 '정보통신공사업' 역량 강화를 추진키로 했다. 이는 1년새 관련 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계획을 세워 나란히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부처 안에서 담당 부서간 논의, 업계 이해당사자간 최소한의 조율이 선행됐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관련기사

사실 얼마나 많은 부처와 협력하고, 얼마나 많은 정책을 입안해 추진하고, 얼마나 광범위한 산업계와 많은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은 지표는 해당 부처의 정책 역량이나 유능함과 무관하다.얼마나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 왔는지, 그 선후에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이런 드러나지 않는 노력을 통해 민간과 타 부처의 신뢰를 얻었는지, 이런 게 유·무능의 분수령이다.

미래부가 내부 부서간 칸막이를 걷어내지 못해 그간 공들여 온 부처간 칸막이 극복의 성과를 퇴색시키는건 기자도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국산 ICT장비 공공 우대 정책을 놓고 불거진 에피소드를 계기로 미래부가 내부 칸막이를 걷어내고 대한민국 정부부처들 사이에서 진정한 협업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