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은 '공공의 적'...힘받는 HP-SAP 동맹

컨버지드 시스템 공동 사업 확대

컴퓨팅입력 :2015/06/29 16:21    수정: 2015/06/29 17:43

HP와 SAP가 데이터센터 통합시스템 시장에서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와 플랫폼 소프트웨어(SW) 및 하드웨어 장비를 묶은 통합시스템 전략에 맞설 의지를 다졌다.

이는 HP와 SAP 각각 과거 파트너였던 오라클의 독자생존 전략을 의식한 결과다. 몇년간 꾸준히 DB 시장 영토 확대를 노리던 SAP는 올초 자사 HANA DB 전용으로 자체 ERP 최신판 S/4HANA를 내놓는 강수를 썼다. HP도 고성능 DB와 기업용SW 시장서 오라클 솔루션을 위한 하드웨어 공급 매출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SAP 솔루션 쪽에 특화된 모델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다음 분기 나올 신제품이 SAP의 DB 시장 입지와 HP의 서버 및 스토리지 업계 활로를 넓혀줄 지 주목된다.

HP와 SAP

한국HP와 SAP코리아는 최근 서울 여의도 한국HP 사무실에서 SAP HANA 구동에 특화된 HP 컨버지드시스템 사업 현황과 성과를 공개하는 소규모 세미나를 진행했다. 현장에선 양사가 3년전 출시한 어플라이언스 제품 'SAP HANA용 앱시스템'과, 그 후속 제품 성격의 'SAP HANA용 컨버지드시스템' 시리즈로 거둔 시장 성과와 자체 진단한 배경이 제시됐다.

김영채 한국HP 전무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SAP와 이를 위한 하드웨어를 뒷받침하는 HP가 상호 협력을 통해 좋은 제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한 만큼 여타 업계 협력사례에 비해 자신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라며 "향후에도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HP가 지난해부터 시장에 선보인 SAP HANA용 컨버지드시스템은 '컨버지드시스템500 포 SAP HANA'와 '컨버지듯시스템900 포 SAP HANA', 2가지 시리즈로 구성돼 있다.컨버지드시스템500 포 SAP HANA는 중소중견기업 및 대기업 중소부서에서 쓰는 데이터웨어하우스(DW) 용도를 지원한다. 노드당 1테라바이트(TB) 메모리를 제공하는 인텔 제온E7-4880 v2 기반 HP 프로라이언트 DL580 Gen8 서버와 3PAR 스토어서브 7400 스토리지를 결합한 모델로 2~16TB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오는 8월 제온E7 v3 프로세서를 탑재한 신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다.

8월 출시를 예고한 HP 컨버지드시스템500 포 SAP HANA의 제원

컨버지드시스템900 포 SAP HANA는 대기업 대용량 DW 및 온라인트랜잭션처리(OLTP)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모델이다. 인텔 제온E7-2890 v2또는 제온E7-2880 v2 프로세서를 품고 노드당 최대 12TB 메모리를 제공하는 HP 슈퍼돔X BL920s Gen8 서버와 3PAR 스토어서브7400 스토리지를 결합한 모델로 최대 확장시 96TB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이날 한국HP는 SAP HANA를 위한 HP 어플라이언스가 지난 2012년 '앱시스템'으로 처음 출시된 뒤 지난해 '컨버지드시스템'으로 이름을 바꾼 3년간 많은 도입 사례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한국HP 김규진 부장은 "지난달(5월) 기준 누적 판매된 SAP HANA 노드가 100대를 달성했고 6월 현재 110대를 돌파했다"며 "비즈니스 흐름이 (중소중견 시장 규모를 겨냥한) 컨버지드시스템500 모델 위주에서 (미션크리티컬, 대규모 인프라를 겨냥한) 컨버지드시스템900 모델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라클에 맞서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HP와 SAP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전략 제품 HP 컨버지드시스템900 포 SAP HANA.

이는 HP 통합시스템과 SAP HANA DB 사업의 중심이 중급 성능과 가격에 맞춘 제품에서 고급, 고성능 수요에 맞춰진 제품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긴밀한 파트너였던 오라클을 이제 공동의 적으로 상대하고 있는 두 회사 각각의 입장상 불가피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오라클은 HP에게 DB 및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제품 공급 파트너였고 SAP에게 전사적자원관리(ERP)와 맞물리는 DB 및 데이터센터 인프라 파트너였다. 그런데 오라클은 지난 2009년 썬을 인수해 확보한 하드웨어 기술과 제품을 기존 SW와 묶어 '엔지니어드시스템' 시리즈라는 통합시스템 브랜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오라클 엔지니어드시스템의 간판제품 '엑사데이터'는 DB머신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08년 HP 하드웨어 기반으로 선보였던 모델이다. 엑사데이터는 2009년 2세대 출시를 기점으로 썬의 서버와 스토리지 기술을 통합한 모델로 바뀌었다. 오라클이 엑사데이터에 탑재한 오라클DB를 OLTP와 DW라는 2가지 용도에 모두 알맞단 주장을 꺼내든 것도 이 무렵이다.오라클은 엑사데이터에 HP 하드웨어를 더이상 쓰지 않기로 했을뿐아니라, 인텔의 '아이태니엄' 프로세서 로드맵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HP 유닉스 시스템용 SW를 공급해 온 파트너 역할도 그만두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후 HP는 유닉스 사업에 40억달러 손실을 입었다며 오라클을 고소했고 2012년 1심, 2013년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이후에도 양사간 앙금은 온전히 가시지 않았다. (☞관련기사)오라클과 SAP의 관계 역시 악화됐다. 이들은 과거 SAP ERP와 오라클DB를 한묶음으로 인식하는 시장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일종의 신사협정 관계였다. 그런데 최근 오라클은 과거 동력이었던 DB 사업 정체기를 맞았다. (☞관련기사) 클라우드 기반으로 매출 구조를 전환 중이지만, 탄력이 붙기 전까진 기존 사업의 관성에 의존해야 한다. (☞관련기사)

시판중인 HP 컨버지드시스템900 포 SAP HANA 시스템 모델 제원

즉 오라클은 더 이상 ERP 및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SAP의 영역을 배려할 상황이 아니다.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부문에 속도를 내 클라우드 성장에 속도를 더하면서, 기존 DB 고객사에게 묶어 제안할 수 있는 데이터 관련 솔루션 및 애플리케이션 영업에도 적극 나서야 할 처지다.

SAP 역시 이전부터 ERP 및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사업만으로는 성장 한계치에 가까웠다. 관성적인 SW 유지보수 라이선스료 인상 계획도 악화된 사용자 여론에 조정됐다. (☞관련기사) SAP는 이후 꾸준히 OTLP 및 DW 시장 입지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이어 왔다. 지난 2010년 사이베이스 인수, 2011년 인메모리DB HANA 출시, 2012년부터 HANA DB 탑재 어플라이언스 출시 등이 그런 사례다.

이미 틀이 잡힌 오라클과의 맞대결 구도에 쐐기를 박은 건 올초 SAP의 ERP 새 버전 'SAP 비즈니스스위트4 SAP HANA(SAP S/4HANA)' 출시다. 그 이름처럼 SAP ERP 최신판을 HANA DB 기반으로만 구동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오라클DB를 비롯한 타사 솔루션 활용을 원천 차단했다. (☞관련기사)

SAP의 S/4HANA 출시는 SAP가 ERP같은 핵심 업무용 플랫폼 영업에서도 비 오라클 진영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한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파트너가운데 협력의 우선권은 서버 시장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HP가 유력하다. HP는 컨버지드시스템900 모델의 장점을 예로 들며 SAP와의 공조가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노하우에 기반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HP 김규진 부장

김규진 부장은 "HP는 SAP와 공고한 협력체제를 갖춰 유닉스기반 SAP ERP를 운영할 때부터 많은 전문 역량과 레퍼런스를 확보해 왔다"며 "그 노하우를 활용해 컨버지드시스템900 모델에도 (x86서버 기반) 리눅스시스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오류정정, 실패단일점(SPOF) 제거, 하드웨어파티션 등 차별화된 기술과 잘 통합된 'HP서비스가드 포 리눅스'같은 고가용성(HA) 솔루션으로 빠른 페일오버와 재해복구(DR) 구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HP가 말하는 하드웨어 역량은 제품 자체의 경쟁력 이상을 의미한다. 주문을 받은 통합시스템을 공급하는 방식을 예로 들면, HP는 구성요소의 결합과 케이블 연결, 사전 구성된 SW 설치 등을 모두 제조설비에서 마친 뒤 배송을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채널파트너가 부품단위 배송을 해서 현장에서 조립 및 SW 설치를 수행하는 타사의 공급 방식과 대단히 차별화된 서비스라는 게 한국HP의 설명이다.

김영채 전무는 "SAP 전략과 고객을 위한 방향성에 가장 알맞은 인프라, 소프트웨어, HP가 인정받는 유지보수 서비스가 집약돼 공고한 비즈니스로 연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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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 쪽에서도 HP의 인프라 사업 역량이 다른 HANA 파트너에 비해서 부각된다고 추켜세웠다.

김희배 SAP코리아 상무는 "시스템 안정성, 장애시 피해 보상 체계 및 기술적인 지원 역량 등 가격보다도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요소들을 살펴 보면 HP 체계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고, 다른 파트너들은 이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연내 S/4HANA 신규 ERP 패키지를 50곳에 공급하는 게 목표"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