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진도9에 이르는 강진이 일본 동북 해안을 강타했다. 이 사고로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1만8천명을 웃도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재산 피해는 1천8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재난이었다.
사상 유례가 없었던 재난. 하지만 이 재난은 유튜브에겐 새로운 기회를 열어줬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012년 발표한 ‘유튜브와 저널리즘’ 보고서는 이런 상황을 잘 요약해준다. 일본 쓰나미 사고 발생 직후 일주일 동안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영상은 전부 쓰나미 관련 내용이었다.
이 영상들은 총 9천600만회 이상 시청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런 수치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영상의 내용이었다. 인기 영상 대부분은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찍은 것이었다. 당시 퓨리서치센터는 유튜브가 시민 저널리즘 플랫폼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제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자. 때는 2005년 2월 14일. 결제 서비스업체로 유명한 페이팔 출신 세 명이 조용하게 한 사이트를 등록했다. 지금은 유명인사가 된 채드 헐리, 스티브 첸, 그리고 조드 카림이었다.
이들이 유튜브란 이름의 사이트를 등록하게 된 동기는 간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볼 수 있는 사이트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 소망이 당시엔 꿈 같은 일로 통했다.
이런 소망을 품게 된 건 창업자 중 한 명인 카림의 경험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당시 발생한 자넷 잭슨의 가슴노출 관련 동영상을 찾느라 너무나 고생했던 것. 말하자면 유튜브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이트였던 셈이다.
야심은 컸지만 출발은 미약했다. 출범 두 달 여 동안 동영상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던 것. 유튜브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것은 그로부터 2개월 쯤 뒤인 그 해 4월 23일이었다.
■ 우연히 사건 현장에 있던 아마추어도 이젠 저널리즘 경쟁자
여기서부터는 애틀랜틱 기사를 잠시 인용한다.
카림은 샌디에이고 동물원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19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에 올라온 첫 영상은 ‘셀프’였던 셈. 하지만 이 영상이 사고를 쳤다.
조회수 1천750만회를 웃돌면서 엄청난 바람몰이를 한 것. 이 사건 이후 유튜브는 승승장구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결국 2006년 16억5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구글에 인수됐다. 현재 유튜브는 400억 달러 가량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튜브 10년은 저널리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실제로 2011년 쓰나미 당시 가장 많이 본 동영상 20개의 누적 조회수는 1억 회에 육박했다. 이중 상당수가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들이 현장을 포착한 것이었다.
퓨리서치센터가 선보인 '유튜브와 저널리즘' 보고서는 이런 ‘유튜브 현상’을 잘 진단해줬다. 언론사들이 이용하는 동영상 중 39%는 일반인들이 촬영한 작품이었던 것. 동영상 저널리즘에서도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 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것이다.
그 뒤 유튜브는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권의 시민 봉기를 전해주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론이 철저하게 통제된 나라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면서 혁명의 불씨를 지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동안 언론사들은 매개자 역할을 독점했다. 적어도 인터넷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떤 전문가든 기자들의 펜을 통하지 않고는 일반 대중에게 자신들이 생각을 알릴 수 없었다. 언론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개인 플랫폼이 일반화되면서 ‘매개자의 힘’이 급속하게 붕괴됐다. 전문가들이 직접 메가폰을 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동영상 보도 영역에선 늦게까지 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동영상=전문 영역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그 인식을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유튜브였다.
최근 세탁기 분쟁 중인 LG전자가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 직접 올린 사례 역시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IS의 잔혹한 영상도 무차별 유포 '어두운 그림자'
유튜브는 2009년 29세 이란 청년 네다 솔탄이 시위 도중 사망하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이 영상은 이란 반정부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동유럽을 강타한 ’튤립 혁명’ 역시 유튜브 덕분에 기세를 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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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튜브 저널리즘이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요르단 조종사를 화형시키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 역시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다. 강력한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선전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이 저널리즘에 던진 메시지는 뭘까? 바로 중개자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세상. 유튜브가 저널리스트까지 대체하고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것. 그게 유튜브가 지난 10년 동안 세상에 던진 메시지인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