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 마피아가 스타트업에게 던지는 메시지

피터 티엘이 쓴 제로투원을 읽고

일반입력 :2014/12/23 16:43

황치규 기자

페이팔 창업자이자 벤처 투자자인 피터 티엘이 쓴 '제로투원'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DNA를 가진 스타트업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조건을 담고 있다. 책 제목인 제로투원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회사를 상징한다.

저자에게 점진적 발전을 이뤄라, 가벼운 몸집에 유연한 조직을 유지하라, 경쟁자들보다 조금더 잘하라, 판매가 아니라 제품에 초점을 맞춰라는 제로투원 관점에서 보면 낡은 메시지일 뿐이다.

제로투원을 위해서는 사소한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또 나쁜 계획도 계획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경쟁자보다 조금 더 잘할 필요도 없다. 제로투원 스타트업은 경쟁이 없는 곳에서 뛸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심한 시장은 이윤을 파괴한다. 저자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성을 강조하는 에릭 리스의 린스타트업 방법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듯 하다. 민첩성보다는 새로운 것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기자에겐 제로투원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겐 가늘고 길게 보다는 큰거 한방이 중요하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제로투원이 위해서는 판매 역시 제품 판큼이나 중요하다. 제품만 잘 만든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판매, 다시 말해 영업 우습게 모든 스타트업들은 큰코 다치게 되어 있다.

피터 티엘은 스탠포드 대학 강의 등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스타트업은 독점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에게 자본주의와 경쟁은 서로 상극이다. 독점은 모든 성공한 기업의 형태다.

행복한 기업들은 다들 서로 다르다. 다들 독특한 문제를 해결해 독점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반면 실패한 기업들은 한결같다.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제로투원으로 가는 코스는 독자적인 기술을 갖고 네트워크 효과를 만든 뒤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러면 작게 시장에서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인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저자에게는 파괴적 혁신도 과대 평가된 말이다. 제로투원로 가는 스타트업은 파괴적 혁신이 아니라 창조적 독점을 추구해야 한다. 파괴에 초점을 맞추게되면 냅스터와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이다. 1년후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5년후, 10년후까지 생각하는 것은 스타트업에겐 무리라는 의견들도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로또가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은 대단히 아주 중요하다. 미래는 제멋대로 펼쳐질 거라고 보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훌륭하고 명확한 계획은 가진 회사가 과소평가될 수 밖에 없다.

10년후에도 이 회사가 존속할 것인가? 제로투원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라면 이렇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기업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각화된 위험 분산 전략에 적합한 회사인가?하는 금융적인 질문으로 넘어가는 순간 벤처투자는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고 만다.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 창업자들은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운다. 이들은 페이팔을 떠나서도 멤버들중 누가 기술 기업을 창업하거나 투자할 때 발벗고 나서 도와준다.

책속에서 피터 티엘은 마피아를 만들라고 적극 주문한다. 마피아의 핵심은 창업자들을 포함한 멤버들간 결속력이다. 기술이나 사업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코드가 맞는지도 그에 못지 않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팔 역시 처음부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무게를 뒀고 피터 티엘은 지금도 벤처투자를 할때 창업자들의 성향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의 공유를 강조하는 만큼, 저자는 단기 성과로 연결될만한 것들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다. 파트타임보다는 전업으로 뛸 사람을 뽑아야 하며, 현금 보너스보다는 주식을 제공해야 한다.

고정된 월급과 현금을 받아가는 사람은 가까운 시일내에 돈되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미래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게 만들기 보다는 회사가 이미 갖고 있는 가치를 뽑아 쓰게 만든다. 반면 주식이라는 형태의 보상은 사람들이 미래 가치를 창조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데 효과가 있다.

그린테크 산업의 부상과 몰락에 대한 피터 티엘의 냉정한 분석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제로투원에서 저자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다 지금은 조용한 그린 테크 산업에 왜 거품이 끼었는지에 대해서도 제로투원 관점에서 파헤친다. 그린테크 업계는 제로투원이 되기 위한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터 티엘의 눈에 제대로된 대표적인 그린테크 회사는 페이팔 출신의 엘론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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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티엘은 페이팔에서 나온 뒤 팔란티르라는 사기 방지 및 범죄 예방 소프트웨어 회사를 세웠다. 팔란티르는 언론을 통해 가끔 소개되기도 했는데, 여전히 베일속에 쌓인 회사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판란티르는 미국 정부가 빈 라덴을 추적하는데 활용한 SW 회사라는, 다소 으스스한 기술을 가진 회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제로투원에는 판란티르에 대한 창업자 당사자의 얘기도 꽤 나온다. 뉴스에서 접했던 것보다는 판란티르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에릭 리스가 쓴 린스타트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쉽게 읽힌다. 스타트업에 대한 실리콘밸리 고수의 관점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담없이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