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금융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꿀 것만 같았던 비트코인은 지난해 가장 큰 거래소였던 일본 마운트곡스가 무너지면서 회의론에 휩싸였다.
그러나 주위 우려속에도 비트코인 생태계는 나름 성장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보안도 강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인사이트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맡은 코인플러그 홍재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008년 10월 처음 비트코인이 등장한 뒤로 2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지만 5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많은 가상화폐가 등장했다면서 양적으로만 보면 6년 사이 700배 가량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550개 이상 회사들과 엔젤투자사들이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CTO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글로벌 IT업체 시스코시스템즈 출신이다. 비트코인 생태계에 입문하기전까지는 그 역시 비트코인에 대해 그저 알고만 있는 정도였다. 비전에 공감하기도 힘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은 입장이 확 달라졌다. 눈여겨볼만한 아이디어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게 홍 CTO 설명이다.
비트코인 생태계에서 등장하는 아이디어들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비탈릭 부테린과 동료들이 고안한 에테리움과 같이 분산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메일, SNS, 모바일메신저, 도메인네임시스템(DNS) 서비스 등을 제공하겠다는 일명 '비트코인2.0'에 대한 논의다.
비트코인 시스템을 구동하는 거대한 거래장부인 '블록체인'에서 아이디어를 딴 것이다. 별도로 시스템을 구현하는 대신 기존 비트코인 블록체인과 연동해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사이드체인' 역시 이러한 범위에 들어간다.
두번째는 그동안 줄곧 문제로 제기돼왔던 보안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비트코인 생태계는 마운트곡스 사태 이후로 시스템의 보안성을 높이는데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최근 표준처럼 통하는 아이디어는 '멀티시그니처'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기존 보안시스템에도 널리 적용된 공개키기반구조(PKI)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비트코인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공개된 가상계좌역할을 하는 비트코인 주소(공개키)와 이 계좌를 열 수 있는 본인만 아는 비밀번호인 개인키가 부여된다. 문제는 그동안 해커들이 사용자들 PC나 스마트폰에 방치된 개인키를 알아내 비트코인을 빼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는 점이다.
멀티시그니처는 여러 개의 개인키를 발행하고, 이들이 모두 있어야만 가상계좌에 저장된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개의 금고에 여러 개 자물쇠를 걸어놓고, 모든 자물쇠를 열어야만 금고를 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개인키가 유출되지 않도록 아예 스마트폰이나 PC 대신 보안성을 높인 전용 금고가 등장하기도 했다.
'파이퍼(Piper)'라고 불리는 이 금고에는 현금 대신 비트코인 가상계좌를 열 수 있는 개인키가 저장된다. 인터넷뱅킹의 보안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보안토큰처럼 한번 암호화돼 저장된 정보는 마음대로 빼내기 어렵다. 파이퍼는 비트코인을 이체하거나 실제 결제에 사용할 때마다 종이로 개인키를 프린트해서 쓸 수 있도록 했다.
비트코인 개발자로 유명한 게빈 안드레센은 비트코인 결제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BIP70'이라는 결제 프로토콜을 제안하기도 했다. 개발자 커뮤니티인 기트허브에 올라온 내용에 따르면 BIP70은 결제 과정에서 공격자가 스마트폰과 결제용 서버 사이에 오가는 정보를 가로채는 중간자 공격(Mitm)을 막기 위해 보안기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제로캐시는 비트코인을 보내는 주소, 받는 주소, 거래금액 자체가 아예 표시가 되지 않도록 기술을 구현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보안전문가가 차린 코인원, 사용자 단말기와 별도 클라우드 기반 서버에서 두 번 인증을 받아야만 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토록하는 비트코인 전자지갑을 개발한 클라우드월렛과 같은 회사들이 보안성을 무기로 비트코인 생태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에서는 코빗, 코인플러그 등 회사 외에도 '비트코인 밋업(meetup)'이라는 소모임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모임을 처음 만든 루벤 솜슨은 2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8개월만에 275명으로 늘었다며 비트코인을 부정적으로만 봤던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오해를 풀고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 번하는 모임에서는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사업 아이템, 시스템 자체를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을 테스트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인호 교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비트코인을 더 쉽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비트코인 커뮤니티와 함께 비트코인 재단 한국지부 설립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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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극복해야할 이슈들도 남아있다. 홍 CTO에 따르면 기존 신용카드가 초당 2천번의 거래를 처리하는 반면, 비트코인은 여전히 시스템 상 7번의 거래밖에 처리할 수 없다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높은 가격변동성 또한 태생적으로 풀어나가야할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는 더 많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새로운 흐름으로 읽힌다. 한양대 경영대학 경영학부 김일선 교수(인프라베이직 대표)는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을 경제1.0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를 경제2.0,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가 등장하고 있는 이후 시기를 경제3.0으로 보고 있다며 비트코인은 인터넷을 위한 새로운 화폐라기보다는 (경제3.0 환경에서) 돈을 거래하기 위한 새로운 인터넷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