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진행한 대규모 감청 활동에 질린 시스코시스템즈 수장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부 감시 활동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최근 시스코는 자사 네트워크 장비에 미국 정부의 감청을 위한 백도어가 탑재되지 않았다고 밝혀 왔지만, 그간 NSA는 실제로 시스코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 회사 라우터 제품 수출 과정에 백도어 장비를 심어 출하시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18일(현지시각) 존 챔버스 시스코 최고경영자(CEO)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사 제품에 무단으로 감청 기술까지 집어넣는 NSA 활동 때문에 미국 기술업계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는 경고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챔버스 CEO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시스코같은 회사가 세계 기술업계를 선도하는데 방해를 놓지 말라며 이런 식으로는 우리가 고객들의 높은 통합성과 보안 기준에 들어맞는 제품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걸 고객들에게 믿게할 수 없다고 썼다.
서한은 지난 15일 시스코 제품에 대한 NSA의 감청 활동을 구체적으로 담은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돼 미국 지디넷을 비롯한 다수 외신을 통해 확산된 직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NSA와 중앙정보국(CIA)에서 컴퓨터엔지니어로 일했던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제보를 보도한 전직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월드의 책 '숨을 곳이 없다(No Place to Hide)'에 인용된 문건으로, NSA 특수목적접근작전실(TAO)의 기법을 소개한 자료다.
문건에 담긴 사진에는 NSA 직원이 출하 대기중인 시스코 장비의 포장을 뜯고 있는 모습과, 그 제품이 최종 사용자에게 전달된 이후 그 인터넷 트래픽을 감시할 수 있게 된 장면이 담겼다. 시스코가 수출할 라우터와 서버, 기타 네트워크 장비 등 제품을 NSA가 말 그대로 '가로채' 조작하는 과정이다.
당시 NSA는 사진에 찍힌 장면이 실제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자 NSA의 국외 정보 수집은 임의적이며, (사진처럼) 강제적인 활동은 거짓이라고 밝혔지만, 감청의 대상이 되는 범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시스코 법률 고문 마크 챈들러는 이보다 앞선 지난 13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자사가 제품을 취약하게 만들기 위해 미국 정부를 포함한 어떤 정부와도 협력하는 일은 없다며 정부는 고객 주문에 따라 합법적으로 인터넷 인프라를 제공하려는 회사의 능력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스코는 인터넷트래픽을 처리하는 장비를 만들기 때문에 고객들이 해당 제품의 보안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다른 종류의 기술업체보다 더 큰 위기를 떠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챔버스 CEO는 지난주 2014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을 공개하며 NSA 활동이 일부 신흥시장 고객들의 제품 구입을 늦추는 요인이 돼 왔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서한에서 시스코 제품에 대한 NSA의 활동이 (인터넷에 유포된 사진처럼) 사실이라면 이같은 행위는 우리 산업의 신뢰와 세계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기술업체의 능력을 훼손하게 된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영국 IT미디어 더레지스터는 19일(현지시각) (NSA의 활동은) 세계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국면에서 수출 실적을 높이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에 도움이 되진 않을 듯하다며 챔버스 CEO의 지적은 경제적 이익에 해를 끼쳐서 국익 증진을 막는 감청 활동에 제동을 걸어달라는 얘기인 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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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는 실제로 NSA의 감청 활동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NSA가 자사 네트워크 장비에 백도어를 뚫어 놨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이를 정면 부인하는 입장을 연말께 공식 블로그에 직접 밝힌 바 있다.
한편 미국내 민간 사업자들이 NSA의 감청 활동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선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AOL, 야후, 링크드인, 8곳이 '정부감시활동개혁그룹'을 결성해 정부의 감청 활동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미국 대통령과 의회 앞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