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콘텐츠 활성화를 목표로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방송채널사용산업진흥협회(가칭)’ 추진이 유관기관 늘리기에 지나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방송계 안팎에서 속속 제기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4일 PP산업 발전전략 마련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연내 PP진흥협회 설립 추진 계획을 밝혔다.
PP진흥협회는 방송 사업자간 상생 기반 구축과 방송 콘텐츠 제값 받기, PP 분쟁 조정 등을 담당하는 사업자 자율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설립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래부는 이미 협회 설립을 위한 준비에 뛰어들었으며 이르면 내년 1월 협회가 설립된다.
현재 PP 관련 협단체로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내에 PP협의회가 있다. 이와 별도로 정부 산하의 유관 기관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PP가 케이블TV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IPTV나 위성방송 등 여러 플랫폼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설립 단계부터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나아가 출범 이후에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쏟아진다.■ 뜨거운 감자, PP협의회 기금
정부가 협회 설립을 강력하게 밀어부친다면 당장 출범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잡음과 걸림돌이 상당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PP협의회가 케이블TV방송협회에서 이탈할 경우 협회 내 기금을 둘러싼 부분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기금 규모는 약 150억원으로 PP협의회와 SO협의회로 구성된 협회 전체 기금의 절반에 해당한다.
당장 PP협의회 회원사들이 미래부 산하 협회로 이동하더라도 협회 내규에 따라 기금 이동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협회 내에서 이탈 가능성이 대두되는 회원사 수를 넓게 보더라도 규정상 기금을 뺄 수 있는 숫자에는 부족할 것이란 설명이다. 협회 규정 상 기금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전체 회원사의 3분의 2 동의를 얻어야 된다.
즉, PP진흥협회를 내세우는 미래부와 사단법인인 협회 간 갈등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돈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PP산업을 챙기기 위해 나선 것이라면, 관련 법 해석에 따라 방송통신발전기금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당장 회원사들이 공동 출자한 자본금을 우선으로 하는 미래부의 움직임이 문제가 되고 있다.
■ 단일 협회 내부의 층이 다른 여러 목소리
PP진흥협회가 설립됐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협회로 정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PP의 다양한 규모와 방송사업 방향, 각기 다른 고민 때문이다.
당장 방송사업 규모만 보고 따지면 홈쇼핑PP와 영세PP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종합편성채널PP과 다른 PP의 고민도 상이하다.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와 개별PP의 입장도 상반된다. 지상파계열PP와 보도PP 등 역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업자들의 집합이다.
단일 협회로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다. 미래부의 주장 대로 다양한 방송 플랫폼에 대응하기 위해 케이블TV협회 외부에서 IPTV에만 공급되는 PP까지 더해 여러 방송 플랫폼마다 단체 교섭 경쟁력을 갖출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점 외에는 하나의 이익단체로 각 회원사가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때문에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성격이 비슷한 PP들을 하나의 협의체로 모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각기 다른 고민을 청취하는게 산업 진흥에는 더욱 바람직하다”며 “정부 산하에 있다고 해서 전체 PP가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방송 플랫폼을 뛰어 넘은 PP 발전 지원이라고 해도 중소 영세 PP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어느 방송 플랫폼에 채널을 송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면서 “PP협의회의 기존 회원사들이 이탈하면 SO와 앙금이 생기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토론회에서 주로 제기된 중소PP를 굳이 보호하지 않고 경쟁 시장으로 열어야 한다는 주장과 수직계열화 폐해를 막기 위해 개별PP를 보호하는데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 등도 상반된다.
■ 종편을 위한 협회 변질 가능성 대두
최근 종편3사가 재승인을 받고 2기 종편 시대를 열었다. 종편은 이전까지 어떠한 협회나 단체의 소속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무부처 방송통신위원회의 소관으로 방송사업을 진행해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보도 기능과 여론 영향력을 내세워 일부 특혜를 누려온 종편은 각사 입장에 따른 주장 전달은 물론 시장 안착에는 일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종편들이 협회 내에 속하게 될 경우 자사 이기주의를 내세울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PP산업 발전전략 토론회 당시 김윤철 TV조선 부국장은 “방송 산업에는 후발 주자에 대한 보호 정책이 없다”며 종편에 대한 보호 정책을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주장이 향후 PP진흥협회에서 나올 경우 다른 PP의 반발이 예상된다. 동시에 반발이 있다고 하더라도 종편의 입김이 강하게 적용해 종편 위주로 협회가 운영될 수 있다.
종편은 출범 당시부터 방송 콘텐츠 제작과 보도를 넘어 송출(유통)까지 담당하는 지상파 수준의 광고 시장과 언론 기능을 염두에 뒀다. 광고 시장 축소에 따라 재정이 악화되며 승인 조건인 콘텐츠 제작 투자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의 PP 추진에 힘입어 자사 이익이 반영된 정책 제안에 더욱 힘을 기울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PP산업 근본 문제점 해결이 먼저
방송 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해서 CPND(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 생태계가 갖춰줘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국내 방송 산업은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는 세계 일류급이지만 콘텐츠가 유독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내년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행을 앞두고 콘텐츠 경쟁력 강화는 더욱 시급해진 상황이다.
정부는 이런 가운데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PP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 말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첫 방송정책인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의 첫 번째 액션 플랜 조치로 나온 것이 ‘PP산업 발전전략’이다. PP진흥협회 설립 추진 계획도 이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방송사업자간 상생 기반 구축, 콘텐츠 제값 받기, 분쟁조정 등을 이유로 새로운 정부 산하 유관기관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당장 공개된 것은 방송프로그램 불법유통 감시센터, 방송채널산업 해외진출 지원센터 등 뿐이다.
우선 토론회 발제에서 지적됐던 PP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협회를 만든다는 계획이 설득적이지 않다. ▲저가 수익의 시장구조 ▲불합리한 규제의 존치 ▲산업 발전을 위한 내부 자율적 노력 부족 등은 협회 활동 보다는 정부가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뒤 비전을 반영한 정책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다.
예컨대 유독 유료방송 수신료가 저가에 형성된 풍토와 방송이 결합상품으로 구성돼 PP에 돌아갈 몫이 적은 부분을 새로운 별도의 협회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즉, 줄곧 제기돼왔던 PP산업의 문제점 해소가 PP와 국내 방송 생태계의 선결 과제란 뜻이다.
■고위 공무원 일자리 알선 단체?
무엇보다 가장 우려를 사고 있는 부분은 미래부의 산업 발전 목표가 유관기관 하나 더 세우기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부터 정부 기관 외부에 기금 조성을 통한 협단체를 만들어 관련 현안을 담당케 한 뒤 유명무실해진 조직이 한 둘이 아니다.
본래 협회 설립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정부에 몰리게 될 비판의 목소리가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산업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하는 방송 생태계의 주축인 PP 산업에 득이 아니라 실이 될 수 있다.
스마트 미디어 확산과 TV 시청 행태 변화, FTA나 방송 콘텐츠 수출을 위한 주변국 관계의 급변 등 복잡해진 방송 시장에서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협회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가 주요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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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협회가 자칫 정부와 소통을 강화하고 밀착 관계를 통한 사업자 자율조직으로 나가기 위해 이른바 퇴임 고위 공무원의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회원사 공동이익 증진이나 회원 상호간의 업무협조 유지 등의 설립목적보다 자리 보존용 협회로 눈총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