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16MB에 2만원, 32MB에 4만원 하는 식으로 ‘귀하신 몸’ 취급을 받았던 USB 플래시 드라이브(이하 USB 메모리)다. 하지만 요즘은 16GB 제품도 만원이 채 안되는 값에 살 수 있고 그나마도 제 돈 내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기념품으로 흔히 뿌리는 4GB짜리는 단돈 3천원에 살 수 있다. 두고 나오거나 잃어버릴 염려가 있는 USB 메모리 대신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를 쓰는 사람도 많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플로피디스켓처럼 USB 메모리도 시장에서 잊혀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USB 메모리는 여전히 휴대가 간편하고 PC를 포함한 여러 기기에서 꽂기만 하면 바로 인식한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USB 메모리는 좀 더 빠른 전송속도와 더 많은 저장공간이다. 아무리 휴대성이 좋다고 해도 넉넉한 저장공간을 가진 외장 HDD와 활용성 측면에서 경쟁이 어렵다. 최근에는 USB 3.0을 지원하는 외장 HDD 제품이 많아지면서 속도 측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과연 USB 메모리가 생존하기 위한 차별화된 강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샌디스크가 지난 20일 출시한 USB 메모리, 익스트림 프로 USB 3.0(이하 익스트림 프로)은 말 그대로 용량과 속도를 끌어 올렸다. 쓰기 속도는 초당 최대 240MB, 읽기 속도는 초당 최대 260MB이고 용량도 128GB로 넉넉하다. 이름에 ‘프로’라는 말이 붙어 있듯이 전문가나 특수한 용도로 USB 메모리를 써야 하는 사람을 위한 제품이다.
■단순하지만 튼튼한 외관
익스트림 프로는 단순한 외관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충격에서 본체를 보호하기 위해 알루미늄 재질로 메모리 부분을 감싸다 보니 슬림한 요즘 USB 메모리와 달리 부피가 좀 커졌다. 다른 USB 3.0 주변기기나 케이블이 꽂혀 있다면 간격이나 부피에 따라 끼우기 힘들 수 있다. USB 단자는 슬라이드 식으로 만들었고 가볍게 밀어주면 툭 튀어 나온다. 본체 뒤에는 열쇠고리나 끈을 달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용량은 128GB 모델 하나만 나와 있다. USB 메모리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고 어지간한 울트라북에 들어가는 SSD와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로 쓸 수 있는 용량은 암호화 프로그램인 시큐어액세스가 들어간 상태에서 119GB 정도다. 9GB 정도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인데 제조사와 윈도 운영체제, 혹은 OS X 사이에 용량계산법이 달라서 일어나는 일이며 제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파일 형식은 여러 기기에서 널리 읽히고 호환성이 높은 FAT32 방식으로 포맷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NTFS나 exFAT로 포맷해서 써도 좋다.
■70GB 복사? “8분이면 충분해”
먼저 읽고 쓰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봤다.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크리스탈디스크마크로 확인한 읽고 쓰는 속도는 읽기가 초당 최대 260.6MB, 쓰기 속도는 초당 242.2MB다. 윈도 태블릿에 흔히 쓰이는 저장장치인 eMMC의 두 배 이상이다.
USB 메모리는 파일을 읽어오는 원본 저장장치의 속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먼저 데스크톱 PC에 흔히 쓰이는 7200rpm 하드디스크에서 파일을 복사하고 다시 써 봤다. 동영상 파일 259개, 76.3GB 분량을 하드디스크에서 익스트림 프로로 복사했더니 8분 59초 걸렸다. 전송률로 따지자면 초당 141MB나 썼다. 24분짜리 720p 영상을 복사해도 5초가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복사를 끝낼 수 있는 수준이다. 반대로 익스트림 프로에 저장된 파일을 읽어와 다시 하드디스크로 복사할 때 걸린 시간은 7분, 초당 181MB를 읽어왔다.
같은 영상 파일을 SSD로 읽고 쓰는 테스트도 해 봤다. SSD에서 파일을 복사할 때는 7분 40초(167MB/s), 반대로 익스트림 프로에서 SSD로 파일을 복사할때는 5분 49초(221.8MB/s) 걸렸다. 윈도 8.1 설치 파일(3.63GB)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USB 복사 프로그램으로 복사해보니 USB 메모리 포맷부터 파일 복사가 끝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USB 메모리를 포맷하는 데 걸린 4초를 포함해 36.75초다. 원본 파일을 읽어오거나 복사할 저장장치에 따라 속도 차이는 있지만 기존 USB 2.0 메모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윈도 운영체제를 직접 설치한 다음 들고 다니면서 써도 될 수준이다.
■중요한 파일은 128비트로 암호화
USB 메모리를 쓰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안에 담긴 중요한 파일이다. 보안카드나 여권 등 신분증 사본일 수도 있고, 회사 연락망을 담은 문서 파일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곤란하거나 유출되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파일을 USB 메모리에 넣어 다니자니 불안하고 클라우드 서비스에 올리기에도 마땅찮다.
익스트림 프로에 기본 제공되는 프로그램, 시큐어액세스를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중요한 파일을 USB 메모리 안에 128비트로 암호화해 저장하기 때문에 USB 메모리를 잃어버려도 안에 든 내용물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 윈도 운영체제에서는 USB 메모리에 내장된 파일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되고 OS X용 프로그램은 무료로 다운로드해 설치하면 된다. 다만 OS X용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영어가 아닌 한글 자판이면 비밀번호를 올바르게 입력해도 틀린 것으로 인식하는 버그가 있다.
관련기사
- 샌디스크, 기업용 SSD 신제품 출시2014.03.02
- 샌디스크, 64GB 마이크로SDXC 카드 출시2014.03.02
- WD 5mm 초박형 SSHD 비밀은 '샌디스크'2014.03.02
- 샌디스크, 화이트데이 한정판 USB 출시2014.03.02
시큐어액세스를 실행하면 암호화된 파일을 한꺼번에 보여주며 윈도 탐색기처럼 생긴 공간에 파일을 드래그하면 자동으로 암호화해 저장한다. 파일을 읽어들이며 암호화한 다음 복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단순한 파일 복사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며 PC 성능이 높을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진다. 탐색기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파일을 더블클릭해서 바로 열어보거나 실행할 수는 없고 한 번 바깥으로 꺼내야 한다. 말 그대로 ‘금고’다. 약간 불편하지만 개인정보나 중요한 데이터를 도둑맞는 것보다는 낫다.
익스트림 프로 USB 3.0은 USB 메모리에서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던 속도와 용량을 모두 잡았다. 부피는 줄였지만 알루미늄으로 본체를 튼튼하게 만들어 조금 험하게 가지고 다녀도 걱정이 없다. 음악이나 영화, 혹은 용량이 10GB를 가볍게 넘는 파일을 수시로 옮겨야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제품이다. 가격은 32만원 내외로 일반적인 128GB USB 메모리의 세 배 정도다. 하지만 읽고 쓰는 속도가 현재 시장에 나온 USB 메모리 중 최고 수준이고 평생 보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싸다고는 할 수 없다. 돈으로 좀처럼 살 수 없는 시간과 업무 효율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